이영일
Lee Young-il / 李英一 / 1932  ~  2001
대표분야
평론, 시나리오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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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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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 :
반노 (이영실, 1982)
태풍을 일으킨 사나이 (이정호, 1975)
정형미인 (장일호, 1975)
그대의 찬손 (박종호, 1974)
환녀 (김호선, 1974)
행운 (주동진, 1974)
광화사 (주동진, 1974)
무녀도 (최하원, 1972)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이성구, 1971)
떡국 (주동진, 1971)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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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 주요경력
1957-60: 평화신문사 문화부장
1958-96: 전문지 영화예술사 主幹
1960-98: 한양대, 동국대, 중앙대, 同신방대학원, 청주대, 서울예전, 선문대 연극영화과 講師
1965-77: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창립초대회장
1967-69: 한국영화인협회 시나리오위원장 겸 부이사장
1984-85: 대한민국예술원 한국예술사, 한국예술사전 편집위원 및 筆著
1988-91: 공연윤리위원회 윤리위원 및 심사위원
1994-98: 국제비평가연맹, FIPRESCI(뮌헨) 한국본부회장
■ 주력분야
영화비평에는 작품비평, 작가연구 등을 통해서 영화사를 정립하고 한국영화의 온전한 위상을 조명한다.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했다. 1950년대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영화비평분야가 황무지였다. 좋은 영화비평 없이는 좋은 영화의 창작이 어렵다는 판단하에 이땅에도 영화비평이 확립되어야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의 시작은 문학평론을 상당히 많이 했다. 그리고 영화평론도 겸해서 하게 됐다.
하고싶은 말
요약해서 말하면 쉬지않고 공부하고 피땀흘려 예술가의 정신에 철저하라.(한국영화인들은 공부를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주목하는 영화인
영화감독마다 개성이 다양하기 때문에 중요성도 각자 다르고 해서 특정인을 선택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한국영화 발전방안
■ 한국영화의 돌파구
본인은 주어진 제도와 환경은 그만하면 충분하다. 창작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내의 제도와 환경이므로 문제는 지성이 있는 양식과 창작능력의 개발과 향상에 있다.
본인 작업의 의의
"나의 글을 정확하게 읽고 이해를 해주길 바랄 뿐이다"라고 생각한다. 제가 하는 일 가운데에서 중요한 몇가지 비평활동으로서- 첫째는 집필활동(논문 및 저서), 둘째는 대학강단에서 교수로서 후배교육(1961년부터 40년간)을 했다. 영화사, 영화비평, 시나리오, 영화이론을 40년동안 교수로서 후배들에게 가르쳐 왔다. 셋째는 한국의 영화평단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영화비평 및 시나리오 전문지 '영화예술'을 월간잡지로 발행했다. (1958년부터 1997년까지 40년동안을 발행하였음). 넷째는 한국영화의 세계화를 위해서 국제비평가연맹 한국본부를 창설하여 세계의 영화평론계에 진출하였다. 다섯째는 1965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창설하고 한국의 영화평단형성을 이룩했다.
한국영화 발전의 장애물
지성과 양식의 결여, 그리고 개인적, 단체적 이기주의
저술내역
시나리오: 지하실의 7인(1967)
무녀도(1972)
땡볕(1984) 등 외 30편
著書 시집-현대의 온도(1957, (共)도시문화사 刊)
譯書 희극의 천재, 채플린(1962,셀머 니콜라스 著. 신구문화사 刊)
著書 '영화개론'(한국 최초의 영화이론서로 국내 각 대학 영화전공 교재로 쓰임,1965 ,상구문화사 刊)
著書 '한국영화全史'(1969,국내 최초로 한국영화의 역사를 정립함,삼애사 刊)
譯編 '세계명작 시나리오 선집'(1973,신영사 刊)
著解 '사진으로 보는 한국영화 60년' (1979,영화진흥공사 刊)
著書 '평전. 한국영화인열전' (1982,영화진흥공사 刊)
증보판 '영화개론' (1984,한진출판사 刊)
著書 'The History of KOREAN Cinema'(영문판)(1988,영화진흥공사 刊)
1988 著書 '韓國映畵主潮史' 'The History of KOREAN Cinema'에 對譯刊行됨
1990 著書 '한국영화입문(일본어)
著書 한글 증보판 '영화개론' (1997 집문당 刊)
著書 '한국영화감독론'(1998, 집문당 刊)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2년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나, 이런 시절 중국 천진으로 이주하여 소학교를 다녔다.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경복 중학교를 졸업하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 공군에 입대한다(씨네21). 공군 복무 시절, 공군본부 정훈감실에서 발행한 잡지 『코메트』에 시 '1950년'을 발표한다. 휴전 이후, 청구대학교(현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이때 시작(詩作), 문학평론, 영화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인다. 그 중 시작의 경우, 1956년 이칠범, 최일수,허만하, 김윤환 등과 동인지 『시와 비평』을 발행하며, 평론을 발표하고(현대시), 1957년 공동시집 『현대의 온도』를 발간한다. 문학비평의 경우, 1959년 김용권, 이철범, 유종호, 이어령, 선우휘 등과 함께 현대문학비평가 협회를 결성하고 『문학평론』을 발행하기도 한다. 영화평론은 1957년 평화신문사에 입사하여 문화부장으로 지내며 시작되었고, 1959년에는 영화지 『영화예술』을 창간한다. 『영화예술』은 이후 4.19 때 휴간되고, 1965년 재창간, 또 1972년 유신을 맞아 휴간, 1989년 복간 등 세 차례나 휴간과 복간을 거듭하며 1997년 2월까지 발간된다(시사저널). 또한 1960년 김정옥, 노만, 김종원, 정우영 등의 함께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발족하고, 대표간사를 맡기도 하나, 5.16 이후 기존 문화단체 해산 방침에 따라 해체된 이후, 1965년 재창립시키는 주역중 한명이기도 하다(한국영화평론가협회). 2001년 숙환으로 별세할 때까지 영화예술의 발행인으로서, 영화평론가로서, 『영화개론』, 『한국영화전사』, 『평전 한국영화인열전』, 『한국영화주조사』, 『한국영화감독론』 등 후일 영화연구자에게 있어 소중한 자료가 되는 영화서적들을 집필하였다. 그와 함께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하며 <피묻은 대결>(1960),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1962), <구름이 흩어질 때>(1962), <수라문의 혈투>(1967), <무녀도>(1972), <환녀>(1974), <정형미인>(1975), <땡볕>(1984) 등의 30여 편의 시나리오를 작업했고, 특히 <땡볕>의 경우는 제2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특별상(각색부문)을 수상하기도 한다.

* 참고문헌
‘커버스토리-허만하’, 『현대시』, 1999년 7월호
‘초대석-전 영화예술 발행인 이영일씨’, 『시사저널』, 540호(2000년 3월 2일)
‘창작과 비평의 행복한 동행’, 『씨네21』, 290호 (2001년 3월 8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http://fca.kr/kafc/page02.htm)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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