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명
Chun Jo-myuong / 田朝明 / 1933  ~ 
대표분야
촬영
데뷔작품
<삼인의 신부> 1959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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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비호상쟁 (전조명,노순, 1978)
만원 (전조명, 1977)
신혼소동 (전조명, 1976)
서산대사 (전조명, 1972)
가슴이 터지도록 (전조명, 1971)
여창 (전조명, 1971)
세 남매 (전조명, 1971)
돌아온 선창 (전조명, 1969)
신검마검 (전조명, 1969)
자랑스런 젊은이들 (전조명, 1969)

주요경력

1942년 개천군우초등학교 입학
1947년 개천중학교 입학
1949년 6월 중학교 3학년이던 당시 월남. 용산고등학교 4학년 편입
1950~51년 부산과 대구에서 피난 생활
1951년 서울의 잔류대학훈육소에서 1년간 수학
1952~53년 미공병 79대대 본부 부관실에서 2년간 비서로 근무
1953년 9월에 개교한 서라벌예술대학 1기로 연극영화학과 진학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기독교방송국에서 6개월간 음향효과
1956~57년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 PIO 근무
1958년 <공처가> 조감독으로 영화계 입문
1959년 <삼인의 신부>로 촬영감독 데뷔
1973~75년 영화진흥공사 기술과장으로 입사. 제작 제2부장 역임
1997~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촬영 강의
2005년 원로영화인모임 "충무로시대" 회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고향(평남 개천)에 당시 소련군이 들어와 있을 때 소련영화를 많이 볼 기회가 있었고 사진관을 운영하시던 부모님에게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하고 싶었다. 군복무시절 (57년도) 국방부 정훈국 영화과에서 당시 대령이었던 김수영 감독과 같이 일을 했으며, 후에 김수영 감독의 작품인 <공처가>의 조감독으로 시작하였고 <삼인의 신부>로 촬영감동 데뷔를 하였다.
주요 영화작품
삼인의 신부(1959,김수용감독)
무지개(1960,유두연감독)
일편단심(1961,김수용감독)
상한 갈대를 꺾지마라(1962,강대진감독)
혈맥(1963,김수용감독)
아편전쟁(1964,김수용감독)
월급봉투(1964,김수용감독)
저 하늘에도 슬픔이(1965,김수용감독)
갯마을(1965,김수용감독)
유정(1966,김수용감독)
망향(1966,김수용감독)
잘 있거라 일본땅(1966,김수용감독)
종야(1967,유현목감독)
첫경험(1970,황혜미감독)
앙케의 영웅들(1973,김 묵감독)
증언(1973,임권택감독)
아라비아 열풍(1976,김수용감독)
오양의 아파트(1978,변장호감독)
달려라 만석아(1979,김수용감독)
불새(1980,이경태감독)
가고파(1984,곽정환감독)
밤의 열기속으로(1985,장길수감독)
레테의 연가(1987,장길수감독)
잃어버린 너(1991,원정수감독)
김의 전쟁(1992,김영빈감독)
비상구가 없다(1993,김영빈감독)
휘모리(1994,이일목감독)
영원한 제국(1995,박종원감독)
카루나(1996,이일목감독)
큐(1996,원정수감독)
불새(1997,김영빈감독)
창(1997,임권택감독)
약속(1998,김유진감독)
내마음의 풍금(1999,이영재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물론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지만, 특히 <삼인의 신부> :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이라서, <갯마을> : 이작품으로 인해 상을 받기 시작해서, <영원한 제국> : 고생을 너무 많이 했던 작품, <약속> : 재미있고 즐겁게 일을 했던 작품
영화속 명소
영화명 : 휘모리, 장소 : 전라남도 해남 두륜산(대흥사), 장면설명 : 여준인공이 새벽에 창을 연습하는 장면 (새벽 일출고 일몰시 산과 바다의 배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감독이 제시하는 콘티, 즉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충실하게 영상화하는 것이 작품에 임하는 기본 태도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종합예술로 감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서슴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협조자로 감독을 중심으로 모든 스텝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협력할 수 있도록 앞장서 나가는 역할을 다하고자 지금까지 노력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런 태도로 작품에 임한 것이다.
수상내역(영화)
▣기타 영화관련 수상내역/
1966년 제1회 백마영화상 촬영상 (갯마을)/
1966년 제13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흑백촬영상 (갯마을)/
1967년 제3회 영화예술상 : 촬영상 (잘 있거라 일본땅)/
1968년 제4회 영화예술상 : 신인감독상/
1974년 제20회 아시아영화제 촬영상 (증언)/
1994년 제37회 아시아태평양영화제 촬영상 (휘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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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4년 평안남도 개천에서 태어났다. 소련이 신탁통치하던 시기, 러시아 영화를 많이 보았고, 사진관을 운영하던 부모의 영향을 받아 영화계에서 일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무비위크). 집안이 사상범으로 몰리는 바람에 한국전쟁 이전에 홀로 월남하여, 한양대학교 화공학과에 진학하였다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서라벌 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촬영을 공부한다. 국방부 영화과에서 군복무를 하게 되는데, 서라벌 예술대학 재학 시절, 친하게 지내던 장석준 촬영감독을 선임으로, 당시 대위로 근무하던 김수용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된다(무비위크). 군 제대 후, 김수용 감독의 1959년작 <삼인의 신부>의 촬영을 맡아 촬영 감독으로 데뷔한다. 1966년 <갯마을>의 촬영으로 대종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아시아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으며 1960년대 대표적인 촬영감독 중 한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며, 이후 <혈맥>(1963), <잘 있거라 일본땅>(1966), <증언>(1973), (1978), <레테의 연가>(1987), <김의 전쟁>(1992), <창>(1997), <약속>(1998), <아홉살 인생>(2004) 등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촬영감독으로 활동한다. 1967년 김영수의 단편 소설을 동명영화화한 <소복>, 황순원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잃어버린 사람들> 등 문예영화를 만들며 감독으로도 데뷔하고, <찬란한 슬픔>(1968), <가슴이 터지도록>(1971) 등의 멜로드라마, <신검마검>(1970), <비호상쟁>(1978) 등의 액션, 무협 영화를 연출하는데, 그 가운데 <서산대사>(1972)는 서산대사와 일본의 현장이 도술 대결 펼치는 장면을 특수촬영으로 처리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동아일보).

* 참고문헌
동아일보 1972년 12월 26일 8면
"[특집 촬영감독①]한국적 찰나의 모습을 렌즈에 담다!", 무비위크 2009년 3월 13일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황미요조]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4년 생. 평남 개천 출신. 서라벌예술 대학 연영과 졸업.
전조명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베테랑 촬영감독 출신이다.
감독 데뷔작은 소복(素服)으로 1967년에 감독했다. 원작은 김영수. 김진규 고은하 박노식 출연
어느 고을의 표구사인 양서방은 용녀라는 젊은 미모의 여인을 재취로 맞아 드린다. 그 후 그녀는 밤이면 공공연히 밖에 나가서 반찬가게 주인인 공서방과 놀아난다. 그 눈치를 챈 양서방이 그들의 밀회장소인 꼽추집을 찾아간다. 허지만 그는 오히려 찍 소리도 못하고 맞아 죽고야 만다. 용녀는 죽은 남편을 깜쪽같이 밀매장하고 공서방과의 통정을 계속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공서방이 여자 꼽추와 정을 통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제서야 용녀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양서방 무덤위에 찾아 가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전감독은 그 후 <잃어버린 사람들 67년> <찬란한 슬픔 68년> <절망은 없다 68년> <괴담 68년> <돌아 온 선창 69년> <신검마검 70년> <가슴이 터지도록 71년> <여창 71년> <세남매 71년> <서산대사 72년> <신혼소동 76년> <만원 77년> <비호상쟁 78년> 등 총 16편 감독.
조용하고 평상시 별로 말이 없는 매우 신중한 신사다. 전감독은 카메라 맨으로서 정일성 서정민 등과 더불어 현역에서 뛰는 최고 삼인방 중의 한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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