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복
An Chang-bok / 安昌福 / 1937  ~ 
대표분야
촬영
데뷔작품
딸이면 어때 196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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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협동하는 도시와 농촌 (안창복, 1972)
배우 :
춘색한녀 (임원식, 1971) 사나이 B

주요경력

1944 함경남도 이원군 안천에서 국민학교 입학
1945 서울 효창동 금양국민학교 2학년부터 다니기 시작
1950 서울 금양국민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입학
1952 피난지 부산 구포에서 중학 3년을 마침
1953 서울 용산고등학교 입학
1956 용산고등학교 졸업,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입학
1959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1960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입학, 충무로 활동과 군입대로 2학년을 마치고 휴학
1953~1956 용산고등학교 연극반 활동. 제1회 전국 고등학교 연극경연대회에서 유치진 원작 <사육신>의 조연출
1957 서라벌예술대학 재학당시 <김삿갓>(이만흥, 1957)에서 김광열 촬영감독의 제3조수로 참여
1958 부산에서 제작 중이던 <제이의 애정>(안낙원, 1959)에서 홍수현 촬영감독의 제1조수로 참여. 부산에서 촬영 중이던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58)에서는 스틸기사로 참여. 서울로 올라와 배우 김정옥의 소개로 임병호 촬영감독의 문하로 들어감. <사람팔자 알 수 없다>(김화랑, 1958)를 시작으로 임병호 촬영감독의 제1조수로 일함
1959 <홀쭉이 뚱뚱이 논산훈련소에 가다>(김화랑, 1959), <나비부인>(박성호, 1959), <흥부와 놀부>(김화랑, 1959), <청춘의 윤리>(김화랑, 1960), <딸>(김화랑, 1960), <울려고 내가 왔던가>(김화랑, 1960) 등 임병호 촬영감독의 작품에 참여. 이 시기 아리플렉스 카메라를 구입하여 렌탈을 시작
1960 임병호 촬영감독의 동생 임진환 촬영감독의 문하로 옮겨가 <양산도>(안현철, 1961), <원술랑>(장일호, 1961), <원효대사>(장일호, 1962) 등의 작품에서 촬영 제1조수로 참여
1961 5.16 뒤 징집되어 원주통신학교를 거쳐 대구 50사단 통신병으로 복무. 이후 육국본부 보도부로 옮겨가 김정호와 민기식 대령의 활동을 정사진과 아이모로 촬영
1963 제대 후 세기상사에 촬영전속으로 입사
1966 <딸이면 어때>(장일호)로 촬영감독 데뷔
1987 제9대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부회장
1989 촬영감독 자녀들의 교육을 지원하는 벽파장학회 설립 및 이사장 역임
1993 제11대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회장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용산고에 다니던 시절 연극반이었던 난 친구 유덕형(지금 용산고 교장)씨와 연극에 대한 이야기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연극에 대한 애정이 매우 높던 고교시절에 대학교로 잔학하려고 하니 연극계가 너무나 척박한 시대라 영화쪽으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특히 정사진 카메라를 가지고다니며 사진 찍는걸 좋아했던 것이 촬영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제일 처음 서라벌 예대를 들어갔지만 그당시 촬영에 대한 특별한 과가 없었던 터라 연출에 대해서만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서라벌 예대를 졸업하고 다시 한양대 영연과 촬영전공을 하게되었다. 그당시 35mm아리프랙스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가지고 있기힘든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여러작품을 찍어서 촬영하는데 공부가 많이 되었다. 그당시에 부모님의 형편이 좋은 편이라 카메라를 개인적으로 산 사람은 나 혼자뿐일정도였다. 그정도로 촬영이라는 것에 미쳐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촬영장비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지금도 카메라를 10대나 보유하고 있다. 제일 처음 연극을 접하게 된 것은 정일몽 감독님이 학교에서 연극부 선생님으로 오시게 되면서부터다.
주요 영화작품
딸이면 어때(1966,장일호감독)
산유화(1966,박종호감독)
환희(1967,박종호감독)
미워도 다시한번(1968,정소영감독)
형(1969,이상언감독)
저것이 서울의 하늘이다(1970,김수용감독)
흐느끼는 두 여인(1971,이상언감독)
모정(1972,권영순감독)
특별수사본부와 기생 김소산(1973,설태호감독)
수선화(1973,최 훈감독)
비련의 벙어리 삼용(1973,변장호감독)
토요일밤에(1974,이성구감독)
무장해제(1975,이두용감독)
캘리포니아 90006(1976,홍의봉감독)
아메리카 방문객(1976,이두용감독)
뉴욕 44번가(1976,이두용감독)
비색(1979,최하원감독)
물보라(1980,김수용감독)
두 아들(1981,조문진감독)
사랑하는 사람아 3(1984,장일호감독)
손오공 대전 홍해아(1985,김종성감독)
공포의 축제(1986,김인수감독)
엄마는 외출중(1987,박용준감독)
변금련(1991,엄종선감독)
나는 너를 천사라고 부른다(1992,김인수감독)
째즈바 히로시마(1992,강구택감독)
금병풍월(1993,남 훈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미워도 다시한번]정소영감독의 [미워도 다시한번]은 매우 제작여건이 좋질 못했다. 특히 정소영감독의 부도와 제작비의 부재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영화를 만들어서 많은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특히 부모님들의 친구분들을 통해 제작비를 대는 바람에 엄청난 책임을 떠맏은 난 오로지 영화밖에 없다는 생각하에 죽음도 불사하고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 바로 이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작품이다. 매일 촬영장으로 찾아오는 빚쟁이들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던 그 때의 촬영여건은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컬하다. 그런 작품이 엄청난 히트를 치고나자 지금까지의 모든 수모가 훨훨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제작여건 쪽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 당시 촬영쪽은 줌 렌즈가 들어오고 그런 줌렌즈를 가지고 활용을 많이 하던 시대라 빠른 줌인이나 줌 아웃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요즘처럼 마스터렌즈를 위주로 찍는 시대와는 생각하는 것이 좀 틀렸다. 좀 더 많은 시각적으로 보여줄 것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바로 촬영감독들 아니냐. 그런 볼거리 제공차원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었다. 그리고 미워도 다시한번의 아역탈렌트 김정훈은 친구의 아들이었다. 그당시 비가 오는 장면을 찍고 완전편집이 끝난 프린트를 보는데 편집본이 감정이 확 올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 그 부분만 비오는 부분만 다시 찍었다. 그 비오는 씬을 애가 물벼락 맞아가면서 찍는데 너무나 연기력이 좋아 사람들이 다 좋아했다. 나를 정상에 이끌어준 작품이었기에 인상에 많이 남는 작품이다. 특히 문희씨도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유치원 선생님을 열연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당시 연기력이 부자연스러운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 당시 생활환경, 국가적인 정책에 매우 많은 사회적 생활성을 가지고 있기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생각이 든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영화는 아름다워야 한다. 연기의 아름다움보다 배우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줄줄 아는 촬영감독이 되어야 한다. 특히 나같은 경우 멜로라는 많은 작품을 해 왔지만 아무리 촬영하기 힘든 배우라 하더라도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매번 시도되어야 한다. 그리고 되도록 문법적으로 움직이는 촬영감독을 좋아한다. 물론 연출의 의도에 의해서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영상언어문법에 준한 촬영을 해주길 바란다. 너무 많은 핸드핼드로 인해 관객에게 어지러움을 주는 것이나 도무지 왜 저런 그림이 나왔는지 이해가 않되는 그림들을 많이 절제해 주길 바란다. 아무리 촬영감독이 자신의 열정을 가지고 찍었다 하더라도 그 작품과 연결성, 즉 작품분석력이 없는 감독은 말짤 도로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영화를 찍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어느정도 이론이 겸비되었다고 해도 현장경험과 제대로된 한국사회를 모른다면 영화인으로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면을 두루 겸비한 사람이 바로 촬영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의 스타일이고.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 연극에 대한 관심으로 연극반 활동을 하나, 당시의 척박한 연극계에 대한 염려로 서바벌 예술대학에 들어가 연출을 공부하고, 이후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하여 촬영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한양대 재학 시절, 자비로 35mm 아리플렉스 카메라를 마련하여 많은 작품을 촬영하며 촬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된다. 1966년 <딸이면 어때>의 촬영을 맡아 영화계에 입문하여, 2000년대 <도마 안중근>(2004)에 이르기까지 40여년 동안 현역 촬영 감독으로 활동해왔다. <풍운의 검객>(1967), <맹수>(1969), <명동잔혹사>(1972) 등의 액션 장르나 <망령의 곡>(1980), <미녀 공동묘지>(1985) 등의 공포 장르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였으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1968년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한국 영화사상 공전의 히트작인 이 영화는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무려 4편까지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1,2,3 편의 촬영을 맡아한다. 1986년에는 홍콩에서 개발된 편광 방식 3D 촬영기를 들여와 촬영한 <공포의 축제>의 촬영을 맡아하는 등 촬영 기술적 측면에서도 큰 관심을 기울였다(경향신문).

*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6년 8월 22일 7면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전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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