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백규
Song Back-kyu / 宋佰圭 / 1927  ~  2006
대표분야
미술
데뷔작품
지옥화 1963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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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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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1984)
불의 딸 (임권택, 1983)
인생극장 (최현민, 1983)
불새의 늪 (고응호, 1983)
무녀의 밤 (변장호, 1982)

주요경력

1936년 서수 신상소학교 입학
1939년 광주 해성학원 전학
1942년 광주 해성학원 졸업. 화가 김원용 문하생으로 약 6년간 미술 수학
1949년 임명선 선생과 만남. 상경. 수도화방 개업. 무대미술계 입문
1955년 임명선, 정우택과 함께 영화미술계 입문
1963년 신필름 전속으로 입사. <강화도령>으로 영화미술 데뷔
신필름에서 8년 활동한 뒤 세기상사에서 4년 활동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어려서 화가인 김호형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4년동안 활동하면서 미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무대미술을 하는 임명선씨와 같이 일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미술을 하게 되었다.
애착작품 및 사유
아주 많은 작품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이다. 주로 고생을 많이 했던 작품이 기억이 남는데 그 중에 하나가 "빨간마후라"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공군사격장에서 촬영했었는데 북한탱크를 직접 제작하느라고 밤까지 무척 고생했었다.
영화속 명소
많은 작품을 했었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는 작품은 없지만, 경상남도에 있는 욕지도 섬에서 본 풍경이 아주 볼 만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영화미술을 한참 활동하던 시기는 TV도 없던 시절이여서 영화가 아주 부흥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일에만 파묻혀 살 정도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주로 신상옥 감독과 같이 많은 작업을 한 편이며, 감독의 의도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27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광주 해성학원을 졸업할 무렵인 열여섯의 나이에 화방에 걸린 그림에 매료되어 화가 김원용의 문하로 들어가 6년을 공부한다. 문하생 시절, 서양화를 배우는 한편, 가미시바이(紙芝居, 종이그림 연극) 작업을 하며 이야기와 필요한 커트 나누는 방식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즈음 순회 공연의 무대장치를 맡아 광주에 내려와 있던 임명선의 눈에 띠어 함께 수학하던 처남 정우택과 서울에 올라오게 된다. 서울에 올라와서 수도화방이라는 화방을 내고, 거기서 무대미술, 영화미술을 하며 이봉선, 강성범, 갈이준 등 1950년대 한국 영화 초기의 미술 스탭들과 한데 모여 작업을 하게 된다. 1950년대 후반 한국영화가 성장함에 따라 안정적인 세트가 필요하게 되었고, 여기서 함께 일했던 미술 스탭들이 그 세트의 초기 작업들을 담당해서 창고를 빌리고, 전기를 끌어오고, 세트를 만들고 부수며 초창기의 촬영소의 형태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처음으로 미술을 맡은 작품은 신상옥 감독의 1963년작 <강화도령>으로, 이 작품 이후 신필름에 들어가 <빨간 마후라>(1964)의 러시아제 북한군 탱크를 실물 크기의 모형으로 만들거나, <진시황제와 만리장성>(1962)에서의 만리장성을 세트로 만들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 30여 년 동안 많은 한국 영화에서 미술 작업을 맡아 하며, 2006년 가을 별세한다. (한국영상자료원)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를 말한다 : 한국영화의 르네상스1』, 도서출판 이채, 2005

[작성: 황미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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