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봉한
Rha Bong-han / 羅奉漢 / 1934  ~ 
대표분야
감독, 시나리오
데뷔작품
청산별곡 1965
활동년대
1960, 1970,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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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우리는 자랑스러운 기아가족 (나봉한, 1988)
쥬바일 주택단지 (나봉한, 1983)
여자정신대 (나봉한, 1974)
제3편 꼬마신랑 (나봉한, 1971)
돌아온 아기신랑 (나봉한, 1970)
원님댁 (나봉한, 1969)
후취댁 (나봉한, 1969)
독수공방 (나봉한, 1968)
방울대감 (나봉한, 1968)
낭자망나니 (나봉한, 1967)

주요경력

1960년 '신필름'에 입사하여 장일호감독의 데뷔작인 <일지매>의 조감독으로 입문함. 이후 신상옥감독의 <상록수>,<연산군>,<폭군연산>에서 조감독을 하였고, 1965년 1월 임원식 감독과 함께 <청일전쟁과 여걸민비>를 공동감독하였다.1965년 9월 <청산별곡>의 감독으로 데뷔한 후, 이어서 <꽃가마>('65),<문정왕후>('66),<인조반정>('67),<종군위안부>('73),등의 사극영화와 교육영화7편, 60여편의 문화홍보영화를 감독하였다. 90년 이후에는 1990년에 독립기념관 원형극장용 써클비젼 제작과 93년 대전 EXPO정부관의 멀티비젼을 제작하였다.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부친 나운규 선생으로부터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기회가 없었지만,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라벌예대에 입학하였다. 각 대학의 연극의 연출을 맡아하였고, 졸업후 을지로 입구에 있던 원각사극장의 '원방각'전속극단에 입단하여, 이광래선생과 기규대 선생 밑에서 각각 연극의 조연출을 하였다. 친구 임원식의 권유로 '신필름'에 입사, 장일호 감독의 데뷔작인 <일지매>의 조감독을 하며 영화계로 방향전환하였다. 당시 '신필름'은 성춘향의 흥행으로 성장시기에 있었으며, 최경옥, 전응주, 김용덕, 최인현 등 여러 감독을 배출하였었다. 그리고 신상옥 감독의 <상록수>,<연산군>,<폭군연산>의 조감독을 하고 '65년 임원식과 공동감독으로 <청일전쟁과 여걸민비>를 제작하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청산별곡(1965,나봉한)
꽃가마(1966,나봉한)
화촉신방(1966,나봉한)
문정왕후(1967,나봉한)
낭자망나니(1967,나봉한)
인조반정(1967,나봉한)
방울대감(1968,나봉한)
독수공방(1968,나봉한)
후취댁(1969,나봉한)
원님댁(1969,나봉한)
돌아온 아기신랑(1970,나봉한)
꼬마신랑 제3편(1971,나봉한)
여자정신대(1974,나봉한)
애착작품 및 사유
<청산별곡>은 감독 데뷔작품이라 애착을 갖고 있으며. <문정왕후>는 매우 공들여 만들었던 작품이라 특히 애정을 갖는다.
영화속 명소
너무 오래되어 구체적 장소와 영화를 기억할 수 없으나, 서울근교의 고분들, 능에서 수많은 촬영을 하였고, 동구능에서도 영하 18도에서 밤샘촬영한 적이 있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사극 위주로 작업을 해왔으나, 특정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는 ,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90년대 이후부터는 써클비전용 카메라 촬영이나 십자스크린의 멀티비젼을 연출하는 특수영상작업을 해왔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나봉한은 한국영화의 선구자 나운규 감독의 2남 2녀 중 차남이다. 세살 되던 해 부친을 잃어 선친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은 받진 못했으나(경향신문a), 그럼에도 연극에 뜻을 두고 서라벌예술대학에 들어가 연극수업을 받았다. 졸업 후 을지로 입구에 있던 원각사극장의 전속 극단인 ‘원방각’에 입단하여 이광래 선생과 김규대 선생 밑에서 조연출을 하였고 연극「서학란」(1960)에서는 연출을 맡기도 했다(한국영화감독사전, 한국영상자료원, 카톨릭대학교).
친구인 임원식 감독의 권유로 1960년 신필름에 입사하여, 장일호 감독의 데뷔작인 <의적 일지매>(1961)에서 조연출을 맡았다(한국영화감독사전). 이후 신상옥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다가 임원식과 함께 <청일전쟁과 여걸민비>(1965)를 공동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경향신문b). 그러나 이장호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청일전쟁과 여걸민비>는 신상옥이 감독한 작품으로 조감독을 감독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조감독 이름을 감독 이름에 넣은 것이라고 한다. <무쇠탈>이 나봉한의 첫 연출 작품이었지만 완성되지는 못했다는 이장호 감독의 회고에 따른다면 <청산별곡>(1965)이 나봉한의 첫 연출 작품이다(씨네21).
<문정왕후>(1967)와 같은 사극을 주로 연출하였기에 사극전문 감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사극에 국한되는 것을 경계하였고 젊은이들의 고민을 파헤치는 현대 애정물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경향신문b).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극영화보다는 문화영화 제작에 집중하게 되면서 그 뜻을 펴지는 못했다. 1970년부터 1971년까지는 <해 돋는 언덕> 등의 교육영화를 7편 만들었고, 1980년대에는 <어촌에서 온 편지> 등의 문화홍보영화를 60편 가량 만들었다. 1990년 이후에는 독립기념관 원형극장용 서클비전 영화 <내 사랑 금수강산>을 제작했다. 1993년에는 대전 EXPO 정부관의 멀티비전 영화 <전통의 뿌리에서 미래의 열매>를 제작하기도 하는 등 특수영상작업에도 관심을 가졌다(한국영화감독사전, 한국영상자료원). 취미는 야구와 바둑이다(경향신문b).

* 참고문헌
경향신문a 1990년 2월 28일자 16면.
경향신문b 1967년 2월 25일자 8면.
“신필름 ‘불가능 없음’ 신화를 위하여”, 씨네21, 1999년 02월 02일 제187호.
(http://www.hani.co.kr/c21/data/L990118/1qb21i01.html)
카톨릭대학교 성의교정 성의연극회 홈페이지
(http://bbs.freechal.com/ComService/Activity/ABBS/CsBBSContent.asp?GrpId=571476&ObjSeq=1&PageNo=9&DocId=7545978)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김성희]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1934년 4월15일 함경북도 회령 출생. 나운규 감독의 자제인 그는 부친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기회는 없었지만,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영화에의 꿈을 키웠다. 졸업 후 을지로 입구에 있던 원각사극장의 ‘원방각’전속극단에 입단하여 연극연출 수업을 쌓았다. 감독은 친구인 임원식 감독의 권유로 1960년 ‘신필름’에 입사하여 장일호 감독의 데뷔작인 <일지매>에서 조연출을 맡으면서 본격 영화수업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신상옥 감독의 <상록수> <연산군> <폭군연산>에서 조감독을 하였고, 1965년 1월 임원식 감독과 함께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를 공동 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감독은 같은 해 9월 단독으로 <청산별곡>을 연출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출활동에 뛰어들게 된다. 이어서 <꽃가마>(1966년) <화촉신방>(1966년) <문정왕후>(1967년) <낭자망나니>(1967년) <인조반정>(1967년) <방울대감>(1968년) <독수공방>(1968년) <후취댁>(1969년) <원님댁>(1969년) <돌아온 아기신랑>(1970년) <꼬마신랑> 제3편(1971년) <종군위안부>(1974년) 등 주로 사극영화를 만들었다. 사극을 전문으로 연출해 온 감독의 대표작은 역시 1967년도에 만든 <문정왕후>인데, 조선의 제12대 왕인 인종이 문정왕후 소생의 이복동생인 명종에게 양위하기까지의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궁중비화를 다루고 있다. 이밖에 그는 1970년부터 71년까지 <해 돋는 언덕>같은 교육영화 7편을 만들었고, 80년대 들어서는 <어촌에서 온 편지> 등과 같은 문화홍보영화를 60여 편 가량 만들었다. 1990년 이후에는 독립기념관 원형극장용인 서클비전 <내 사랑 금수강산>을 제작했고, 93년 대전 EXPO 정부관의 멀티비전 <전통의 뿌리에서 미래의 열매를>의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첨단 영상에 관심과 열정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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