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상
Park Woo-sang / 朴祐相 / 1946  ~ 
본명
박규열 (Park Gyu-yeol)
대표분야
감독, 시나리오
데뷔작품
맹인 대협객 1971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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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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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무등산 타잔, 박흥숙 (박우상, 2005)
(박우상, 2003)
KK훼미리 리스트 (박우상, 1997)
차이나타운 2 (박우상, 1993)
나를 보라 아메리카 (박우상, 1991)
마이애미 커넥션 (박우상, 1986)
사대소림사 (박우상, 1984)
차이나타운 (박우상, 1984)
광동관소화자 (박우상, 1983)
소림관 지배인 (박우상, 1982)

수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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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경력

1963년 대학 재학 중 임권택 감독의 권유로 <망부석>에 참여한 이후 7년 간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으로 활동
1971년 <맹인 대협객>으로 감독 데뷔
1977년 미국으로 이주하여 태권도 사범으로 정착
1984년 <차이나타운>이 콜럼비아 영화사 배급으로 전미 개봉
2005년 <무등산 타잔, 박흥숙> 감독

기타정보

기타이름
리차드 박, Richard Park, Richard W. Park
영화계 입문배경
임감독과 7년이상 함께 작업을 하였으며,70년대초 <죽음의 승부>라는 영화로 데뷔하여 액션 영화로 내나름대로의 색깔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헐리우드식 액션 영화는 홍콩과 동남아시아에 초청을 받을 정도로 흥행을 하였으며 나의 액션 스타일이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70년대 초 군사 정권의 검열로<대련의 해당화>와<내 갈길을 묻지마>란 작품이 상영 불가 판정을 받고 결국 구치소에 수감되는 등의 모욕적인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일의 충격으로 더 이상 국내에서 영화를 제작할 수 없음을 깨닫고 77년 도미를 결심하였다. 태권도 실력은 외국 사범으로 자격까지 주어졌기 때문에 세인트 루이스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였으며, 80년<돌아온용쟁호투>라는 영화를 찍고, 1984년에는 태권도 액션 영화 일인자로 오디션에 합격하여<킬더드레곤>을 만들었다. 이 후 끊임없는 헐리우드 액션영화제작에의 연출력을 인정받고 콜롬비아나 미락맥스 등의 배급망을 타 미국1200여개 극장에서 나의 영화가 개봉되는 등 현재 한국계 중견 액션영화감독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주요 영화작품
맹인 대협객(1971,박우상)
죽음의 승부(1975,박우상)
파라문(1975,박우상)
대련의 해당화(1976,박우상)
내갈길을 묻지마(1976,박우상)
대의(1976,박우상)
귀문의 왼발잽이(1977,박우상)
대적수(1977,박우상)
돌아온 용쟁호투(1977,박우상)
내이름 쌍다리(1981,박우상)
소림관 지배인(1982,박우상)
광동관소화자(1983,박우상)
사대소림사(1984,박우상)
차이나타운(1984,박우상)
나를 보라 아메리카(1991,박우상)
차이나타운 2(1993,박우상)
K.K훼미리리스트(1997,박우상)
킬 더 드레곤(1984)
닌자터프(1987)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데뷔작부터 현재 준비 중인 영화<제이슨 리2000>에 이르기까지 작품세계는 뚜렷한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태권도 실력으로 사실적이고 파워풀하게 드러나는 액션은 단일한 나만의 색으로 작품에 드러난다. 특히 20년간 생활하고 익힌 헐리우드식 액션 영화는 지금까지 추구하는 작품의 축이다. 데뷔 시절부터 항상 영화의 수출을 염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세계의 공통 소재인 액션을 얼마만큼 동양적으로 만드는가에 중점을 두어 왔다. 1997년 작<k.k훼미리 리스트>는 이러한 작품경향과 추구하는 스타일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데L.A를 근거로 한국 갱조직과 중국 갱단과의 치열한 대립과 그 안에 민족 차별과 인종 차별로 핍박 받는 한국인이라는 소재를 헐리우드식 액션으로 풀어가고 있다. 캐스팅에 있어서도 큰 키와 뚜렷한 마스크,동양적 신비감등으로 세계 시장에서도 통할 만한 헐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배우들을 작품에 참여 시켰다.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6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임권택 감독의 권유로 <망부석>(1963)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하여(한국영화감독사전), 이후 7년여 동안 임권택 감독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연출을 공부했다고 한다(한국영상자료원), 데뷔작인 <맹인대협객>(1971) 이후, <죽음의 승부>(1975), <내 갈 길을 묻지마>(1976), <대련의 해당화>(1976), <귀문의 왼발잽이>(1977) 등 권격물을 연출하던 중, 검열의 문제에 염증을 느끼고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한다. 태권도 5단 실력 덕택에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머물며 태권도장을 열고, 워싱턴에서 태권도장을 열고 있던 이준과 친분을 쌓아, 그가 주연하는 1980년작 <돌아온 용쟁호투>를 연출하며 한국 영화계로 돌아온다(씨네21). 이후 <내 이름 쌍다리>(1981), <소림관 지배인>(1982), <광동관 소화자>(1983), <사대소림사>(1984) 등 1980년대 초반 유행했던 한국식 쿵푸 영화들을 연출하고,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에서 리차드 W. 박이라는 영어이름으로 활동하며 <킬 더 닌자(KIll the Ninja, 다른 제목: Kill the Dragon)>(1984), <로스앤젤리스 스트리트파이터(Los Angeles Streetfighter, 다른 제목 : Ninja Turf, 터프가이)>(1985), <마이애미 커넥션(Miami Connection)>(1987) 등 미국에서 제작되는 쿵푸 영화들을 연출한다. 1997년 LA 기반의 한국계 갱스터들의 이야기 를 연출했고, 이어 2000년에 <제이슨 리 2000>, 2005년에 <무등산 타잔 박흥식> 등을 연출하지만 두 편 모두 순조롭지 못한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지는 못한다.

* 참고문헌
김종원, 『한국영화감독사전』, 국학자료원, 2004
인터뷰-액션영화감독 박우상, 『씨네21』, 113호 (1997년 8월 5일)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전민성]
출처 : 한국영화감독사전
본명 박규열. 1943년 1월 2일 전남 광주 출생. 조선대 국문학과졸업. 한국 액션영화의 개척자이자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영웅의 일대기와 전쟁물 서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대학 3학년 재학 중 고향 선배인 임권택 감독을 만나 영화계 진출을 권유받았다. 임권택 감독의 <망부석>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약 40여 편의 작품에서 함께 활동하며 감독으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익혔으며 특히 당시 임감독의 장기였던 사극과 액션물의 내용과 스타일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1972년 <맹인 대협객>으로 데뷔한 후 태창영화사에서 제작을 맡은 <죽음의 승부>(1975)로 두 번째 메가폰을 잡았다. 당시 태창영화사는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으로 수출하기 위해 '방화를 세계로‘라는 슬로건을 걸고 해외진출을 모색하면서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이 이 영화였다. 거액의 돈을 숨긴 불상을 차지하려는 세 남자가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면서 죽음에 이르지만 정작 불상은 이미 용광로에서 녹아버렸다는 내용의 본격적인 권격 영화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모으던 액션스타 권영문, 바비 킴, 안길원이 함께 출연해 주목을 끌었다. 70년대 단순한 액션물의 범람 속에서 싸움에 그치는 액션이 아니라 드라마와 연관되어 펼쳐지면서 스케일이 크고 리얼한 액션영화를 지향했다.
이후 <내 갈 길을 묻지 마>(1976), <대련의 해당화>(1976), <귀문의 왼발잡이>(1977), <대적수>(1977) 등의 액션영화를 연출하며 한국 권격 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액션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남달랐던 박우상은 계속해서 무술과 액션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한국 영화의 해외수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박우상의 액션영화 스타일은 홍콩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그를 모방한 많은 아류작들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그가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1970년대 군사 정권이 점차 강화되며 영화에 대한 검열과 탄압이 심해지자 한국 영화계는 깊은 침체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많은 영화인들이 수난을 받았다. 그 역시 1976년 <대련의 해당화>와 <내 갈 길을 묻지 마>가 상영 불가 판정을 받고 감독은 구치소에 수감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에 충격에 휩싸인 박우상은 결국 1977년 이민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실제 태권도 5단의 유단자이며 외국사범의 자격까지 갖추고 있었던 그는 그곳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늘 보다 화려하고 진지한 액션영화 감독의 꿈을 잃지 않았다. 결국 <돌아온 용쟁호투>(1980)를 시작으로 탁월한 태권도 실력을 인정받아 <킬 더 드래곤>(1984), <닌자 터프>(1987) 등을 연출, 한국영화 감독 중 할리우드 진출 1호의 영광을 얻으며 액션영화 감독으로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이룩해낸다. <닌자 터프>의 경우 콜럼비아에 의해 미국 1,650여개 극장에 배급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97년 는 LA를 배경으로 중국계 갱 조직과 이에 맞서는 한국계 갱 조직의 갈등과 대립을 통해 이민 세대들의 힘겨운 삶을 그린 영화. 이민 3세대 착실한 청년 태웅(신현준)을 둘러싼 한국계, 중국계의 범죄조직의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싹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뤘다. 미라맥스가 배급을 맡아 미국 1천 5백여개의 극장에서 개봉했다. 최근작 <형>(2003)은 무등산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던 직원들을 망치로 때려 목숨을 잃게 한 충격적인 실제 사건의 주인공 박흥숙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대중적 소재와 남성적이면서 세련된 액션, 영화적 재미의 추구 등은 그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영화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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