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배
Park Seung-bae / 朴承培 / 1939  ~ 
대표분야
촬영
데뷔작품
폭로 1967
활동년대
1960, 1970, 1980, 1990, 200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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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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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써클 (박승배, 2003)
촬영 :
그놈은 멋있었다 (이환경, 2004)
런투유 (강정수, 2003)
광시곡 (장훈, 2000)
세븐틴 (정병각, 1998)
인연 (이황림, 1997)
넘버 3 (송능한, 1997)
축제 (임권택, 1996)
꼬리치는 남자 (허동우, 1995)
금홍아 금홍아 (김유진, 1995)

주요경력

1967-1999년 현재 100여편의 촬영감독
1973-1975년 영화진흥공사 기술부 참사
1978년~1980년 현대 자동차 (주) 홍보실
1991-1999년 선우 광고(주)기술이사
1986년 제 10회 아시안 게임 공식 기록 영화촬영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공식기록영화 촬영
1993-1996년 영화기술지[영상기술]편집장
현재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 학술위원,사단법인 한국광고영상제작사협회 감사 MOUVIE-CAM대표,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강

기타정보

영화계 입문배경
촬영기사 출신감독인 한형모씨와의 친분으로 영화를 시작하였다.한형모씨는 당시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많은 기자제를 보유하고 있었기때문에 영화의 모든 일괄작업이 가능했다. 일찍부터 영화계에입문(1960)하여 한형모씨 밑에서 촬영부터 조명, 편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현장실습외에서 당시드물게 한양대 영화과에 진학하여 이론상의 체계적인 학습까지 겸했다. 대학에서 이론을 굳이 공부하기로 결심한데에는 대부분의 영화용어가 일본식이라 영화를이해하고 작품활동을 하는데 많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영화작품
폭로(1967,정진우감독)
고향무정(1968,박종호감독)
영시의 부르스(1968,전우열감독)
상해의 방랑자(1970,전우열감독)
그림자(1970,전우열감독)
나는 참을 수 없다(1970,전우열감독)
황혼의 제3부두(1971,전우열감독)
남매는 단둘이다(1971,문상훈감독)
목소리(1972,김영걸감독)
석회촌(1972,정진우감독)
그 얼굴에 햇살을(1973,전우열감독)
울지 않으리(1974,임권택감독)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1976,최 훈감독)
엄마없는 하늘아래(1977,이원세감독)
산불(1977,김수용감독)
땅콩껍질 속의 연가(1979,이원세감독)
팔불출(1980,고응호감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81,이원세감독)
삼일낮 삼일밤(1983,이원세감독)
그 여름의 마지막 날(1984,이원세감독)
어우동(1985,이장호감독)
달빛 사냥꾼(1986,신승수감독)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이장호감독)
와이의 체험(1987,이장호감독)
성야(1988,신승수감독)
추억의 이름으로(1989,유영진감독)
아그네스를 위하여(1991,유영진감독)
걸어서 하늘까지(1992,장현수감독)
우리시대의 사랑(1994,박철수감독)
금홍아 금홍아(1995,김유진감독)
축제(1996,임권택감독)
넘버3(1997,송능한감독)
세븐틴(1998,정병각감독)
애착작품 및 사유
1981년 이원세감독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은80년대 독재 정권에 반하는 사회성 영화였다. 당시 이영화는 시나라오 심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짖않아 모든 스텝들이 마음을 졸이며 어렵게 촬영을 해야했다. 제도권의 눈을 피해 지방에서 장기 촬영을 해야했고, 낮 촬영 역시 불가능해 해질무렵과 새벽에몇시간만에 촬영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루의 단 몇 시간을 촬영하기 위해 오랜시간 은둔하며 기다림의 반복을 했고, 81년 대종상 전 분야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시상식 3시간 전에 취소되어 모든 스텝에게 큰 아쉬움을 남긴 영화였다. 그외 <어우동>,<축제>가 기억에 남는다.
영화속 명소
기억에 남는 장소는 멋지고 예쁜장소가아니다. 영화의 특성이나 작품 분위기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곳이 영화속의 명소이다. 그런 의미에서<난장이가쏘아올린 작은공>의 배경이었던 경기도 군자의 한 염전은 일그러진 사회로 인해 상처받은 소시민들의 공간을 그대로 담은 장소였다. 이 후 염전은 시화공단으로 변모했고 영화의 내용과 유사한 스토리를 갖게 되었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추구하는 스타일은 항상 작품의도에 맞는 영상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아 보니 기술적인 차원과 미학적인 차원으로 새로운 시도와개발을 끊임없이 하게된다고 한다. 1985년 이장호감독의 <어우동>촬영당시에는 주인공이 나염으로 된 반짝이는 옷을 입어 촬영을 하는데 애를먹었다. 그 상황에서 한국영화 최초바운스 반사광을 사용해 강렬한 빛이 색감을 줄이고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60,70년 흑백영화의 양분된 존 시스템에서는 중간의 하프톤으로 도입해 화면의 질감과 무게감을 살렸고,칼라영화시대에는 색온도와 광소스에 신경을 써 색발란스를 맞추는데 주력했다. 추구하는 스타일의 대부분이 작품의도와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결정되지만 30년 영화인생에서 촬영감독으로 영화안에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시도와 역량을 아끼지 않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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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전쟁이 끝나고, 스물쯤 될 무렵 고모부가 일하던 삼성영화사에서 일을 시작하며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 때 한형모 감독을 만나, 촬영, 조명, 편집 등 영화제작에 있어 다양한 분야에 경험을 쌓는다(경향신문, 씨네21). 그리고 바로 그해 한양대학교에 영화과가 생기자, 거기 입학해서 이론을 공부한다. 1965년 졸업할 때까지 학업을 하는 한편, 현장에서 줄잡아 60편의 영화에서 조수 일을 하며 경험을 쌓았고, 1967년 한형모 프로덕션에서 정진우 감독의 <폭로>라는 작품으로 촬영감독 데뷔한다. 이후 전우열 감독과 10여 편의 영화에서 작업하고, 임권택, 하길종, 김수용 감독등과도 함께 작업 한다. 그러던 1973년 말, 일본으로 파견하여 기술연수를 시켜준다는 제안에 영화진흥공사에 입사하지만, 예산 문제로 파견 계획은 중단된다(매일경제). 그렇게 입사한 영화진흥공사에서 주로 하게 된 촬영은 국책으로 지원되는 반공영화와 계몽영화들이었으며, <증언>(1973), <전쟁의 얼굴>(1973),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태백산맥>(1975) 등이 영화진흥공사 시절 촬영했던 영화들이다. 1976년 영화진흥공사를 그만두고, 1977년 이원세 감독과 <엄마없는 하늘 아래>, <엄마없는 하늘 아래(속)> 등을 함께 작업하고, 1978년에는 현대자동차에 입사하여, 기업 홍보 영화 작업을 한다. 이어 1980년대 후반부터는 광고사에 입사하여 카메라 테크닉과 특수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시험한다. 1980년대 그렇게 영화계를 잠시 떠나있던 중에도 이장호 감독과 <어우동>(1985), <이장호의 외인구단>(1986),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와 같은 문제작들을 촬영한다. 1990년대 다시 영화계로 돌아와 <걸어서 하늘까지>(1992), <증발>(1994), <축제>(1996), <넘버 3>(1997) 등의 작품을 촬영하고, 2003년에는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하여 <써클>이라는 작품을 내놓는다.

* 참고문헌
매일경제 1974년 2월 20일 8면
경향신문 2003년 3월 14일
"카메라는 늙지 않는다", 『씨네21』, 286호 (2001년 2월 7일)

[작성: 전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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