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호
Choi Kil-ho / 崔吉鎬 / 1936  ~  2007
대표분야
배우
데뷔작품
산너머 바다건너(라디오 성우),오발탄(유현목감독) 1956
활동년대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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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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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
까불지마 (오지명, 2004) 보스
선영의 편지 (문홍식, 2001) 단장
깡패수업 3 (조성구, 2000) 경찰1
해적 (박성배, 1994) 특별출연
어허 어이 어이가리 (강문수, 1991) 황사장
여로 (김주희, 1986)
나와 너를 위하여 (김재웅, 1980)
야행 (김수용, 1977) 최사장
작은 별 (강문수, 1975) 승호(아빠의 친구)
마지막 날의 언약 (조관수, 1974) 신회장

주요경력

KBS TV 극회 창설-초대 회장 역임(1962,박병호, 최정훈씨와 함께)
TV 연기자 협회 창설(1967,초대 회장-이순재)
TV 연기자 협회 2대, 3대 회장 역임(1968-69)
연예인 축구단 창설(1981)-초대 회장 역임
연예인 봉사대 창설-초대 회장 역임

기타정보

기타이름
어윤길, 魚允吉
영화계 입문배경
대학 때부터 영화를 하려고 마음먹었고, 기초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TV에 먼저 들어갔다. KBS 라디오 성우 시험 공채로 들어가 성우로 활동을 시작해서, 5년 반 후에 TV 개국과 동시에 TV 탤런트로 전향했다. TV 탤런트 활동을 하다가 영화감독 아는 분들도 있고 영화더빙을 하면서 인연이 돼서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주요 영화작품
오발탄(1961,유현목)
흑맥(1965,이만희))
산유화(1966, 박종호)
내몫까지 살아주(1967,정소영)
학사며느리(1967,박종호)
흑녀(1973,정소영)
여로(1986,김주희)
어허 어이 어이가리(1991,강문수)
주요기타작품
■ 주요작품(연극)
<수양대군> , <맹진사댁 경사>, <왕교수의 직업>, <리어왕>

■ 주요작품(TV)
<아내와 아들>, <춘향전>, <안내의 얼굴>, <꿈나무>, <꽃지미>, <연가>
1971년 심청전 (KBS)
1973년 억순네 (KBS)
1978년 모란꽃 (KBS)
1979년 34인, 차씨마을, 문예극장-감청, KBS무대-봄이 오는 소리, 생명의 줄기 (KBS)
1980년 문예극장-흰종이 수염, 100분 드라마-붉은 왕조 (KBS)
1981년 소망-갈등 (KBS)
1984년 전쟁 6.25 (KBS)
애착작품 및 사유
TV 드라마 "아버지와 아들"(1969-70)-당시 시청자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장관들에게 금일봉을 받기도 했다. 대강의 줄거리- 왜정시대 경기도 수원 근방의 돈 많은 지주가 일제 시대에 갖은 압박을 받아가면서도 지주로서 많은 농민(소작인)들을 위해서 투쟁하고, 아들들을 훌륭히 잘 키워서 판검사, 국회의원으로 만든다는 얘기. 대한민국 정부와 함께 농촌을 구해 나간다는 줄거리이다. 최길호-주인공 '팽영감'(호랑이 같이 무서운 아버지 역할), 최정훈-팽영감의 아들역, 고은아-팽영감의 며느리역
연극 "맹진사댁 경사"(75), "왕교수의 직업"(78)
영화 "학사며느리"(66)-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마음에 들었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후 사업 경영을 하는 부유한 집 아들로서, 많은 여자들과의 관계를 잘 헤쳐나가는 착한 사나이 역할
하고싶은 말
한 사람이 대사가 막히면 그 상대방이 바로 막아주어야 했다. 당시엔 수화기가 없었기 때문에 전화받는 장면에서는 시청자에게 안 보이도록 뒤돌아서서 전화를 받는 척 했다. 그 당시에는 작가가 주인공 위주로 대사를 썼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연결된 두 씬에 바로 출연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과거씬에서는 형무소에서 죄수복을 입고 있어야 하고, 현재 씬에서는 넥타이를 매고 있어야 했는데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으므로 죄수복 속에 넥타이를 안 보이게 매고 있다가 죄수복을 벗으며 다시 연기를 시작해야 했다. 우유를 마시는 장면에서 소품 담당자가 준비를 하지 못한 경우가 생기면 시멘트 백색가루를 물에 타서 우유대신 마시기도 했다. 1961년 KBS 개국 후 6년 반만인 1967년 후반에 녹화 방송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전에는 모든 방송을 생방송으로 진행해야 했다.
영화속 명소
영화 "산유화"(66) 소양강- 강가에서 촬영을 많이 왔다.
TV 드라마 "흉어"(63) 강원도 갯벌- 강원도 갯벌에서 찍은 영화필름을 내보내고, 덕수궁 등 현지에서 생방송으로 연기를 하고, 그 연기자들이 다시 방송국에 와서 연기를 하여, 한 드라마를 '삼원 생방송'으로 만들어 내보냈다.(1967년 후반부터 녹화 방송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당시 드라마는 모두 생방송으로 제작되었다.)
추구하는 스타일/배역
연기 스타일-TV에서는 24살 때부터 노역을 많이 했는데, 특히 "아버지와 아들"(69) 작품 후 노역을 더 많이 맡게 되었고, "춘향전"(71)에서 변사또 역을 맡고 나서는 악역이 많이 들어왔다.
앞으로 하고 싶은 배역-현재 건강이 좋지 않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건강이 좋아지면 연극을 하고 싶다. 어떤 역할이든 소화해내야겠지만, 무게있고 신중한 작품의 역할을 맡고싶다.
자기소개 및 취미
1981년 연예인 축구단을 창설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축구를 열심히 하였고, 현재는 등산과 실내운동을 즐겨하고 있다. 예전부터 '경로잔치'를 많이 하다보니 노래를 자주 부를기회가 생긴다. 지금도 불우한 노인들을 위로하고 돕기 위해서 서울, 경기도일대, 지방, 외국 등에서 경로잔치를 많이 열고 있다.
수상내역(기타)
■ 수상내역(TV)
후회는 없다-동아연극상(1965) TV 부문 주연상 수상/아버지와 아들-TV 연기상(1970)/수양대군-한국일보사주최(1974) 연극대상 수상/KBS연기대상(1995) TV 연기공로상

영화인 정보조사

출처 : 한국영화인 정보조사
1955년 KBS 라디오 성우 공채에 합격해서 성우로 활동을 시작한다. 1961년 KBS TV가 개국하면서 탤런트로도 활동했으며(한국영상자료원), 1960년대 중반부터 조연, 단역으로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도 데뷔하여 <돌아가는 삼각지>(1970), <30년만의 대결>(1971), <증언>(1973), <야행>(1977) 등의 영화에 출연한다. 1971년에는 TBC의 이순재, MBC 최불암 등과 함께 KBS, TBC, MBC 등 TV 소속 탤런트 4백여 명을 아우르는 TV탤런트협회를 만들어 탤런트들의 친목도모, 권익옹호 등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경향신문). 2007년 타계한다.

* 참고문헌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설문조사, 2001

[작성: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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