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베르트 베버 필름 컬렉션

▶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OSB, 1870~1956)는 1909년부터 조선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교육과 사회사업 중심의 선교 활동을 전개하며 만주까지 선교지를 넓힌 독일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Erzabtai St. Ottilien)’의 총아빠스(Archiabbas, 수도원의 대표)로, 1911년과 1925년 두 차례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필름 컬렉션은 그가 두 번째 조선 방문 때 촬영한 오리지널 필름을 2015년 발굴해 디지털 스캔·수집한 것으로, 장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외에도 <한국의 결혼식> 등의 단편 4편 그리고 편집에 사용되지 않은 5,000m에 달하는 35mm 촬영본 네거티브 필름을 망라합니다. 필름 종류로 보면 촬영 원본인 질산염 네거티브 필름과 당대 극장 상영에서 사용한 프린트 필름도 포함합니다. 이는 1925년이라는 시기적 희소성을 감안할 때 규모와 구성 면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실제로 현존하는 1925년 이전 조선을 기록한 영상은 버튼 홈즈 등 여행가들의 단편적인 기록에 그칩니다. 이에 반해 베버 필름은 사전 기획과 치밀한 준비를 거쳐, 선교지역 사람들이 직접 재현하는 장면들을 여행 기록과 함께 구성한 장편 다큐멘터리와 마을사람들이 출연한 단편 극영화를 포함합니다.
 
<한국의 결혼식> 촬영 당시 베버 총아빠스(좌)와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우)

그렇다면 왜 베버는 조선에서 영화를 찍었을까요? 베버는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총아빠스이기 전에 인류학자였고 예술가였습니다. 영화를 통해 수도원의 선교 활동을 홍보하고자 했고, 동시에 일제강점기 조선 고유의 풍습과 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민족지적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습니다. 때문에 독특한 종교영화가 탄생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1927년 뮌헨 민족학박물관의 첫 상영을 시작으로 독일 전역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1930년대까지 상영됐습니다. 선교 활동의 홍보와 민족지적 기록에 대한 강연이 곁들여졌던 베버 필름의 상영을 위해서 공식 심의를 받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와 <한국의 결혼식> 두 편이 활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오리지널 프린트에는 많은 상영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베버의 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가 국내에 소개된 역사는 아카이빙에 대한 인식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1979년 MBC가 처음 소개한 베버 필름은 1985년 또 다른 버전의 TV 방영본과 이어지는 VHS 출시에 이르기까지, 영구 보존되어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원본 필름은 그 어느 기관에서도 보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 편의 영화로서 온전하게 보여지기 보다는 단편적인 기록 영상으로 소개되었습니다. 2009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한국 선교 100주년 기념 베네딕토 미디어가 출시한 DVD에 이르러서야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원 제목이 사용되었고, 한 편의 영화로 선보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DVD 화질의 한계 외에도 여전히 프레임 잘림이나 지나친 콘트라스트 등 기술적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의 노르베르트 베버 필름 컬렉션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닙니다. 4K 수준의 화질로 베버 필름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오리지널 필름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정보들이 제작 과정에 대해 귀중한 사실들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무성영화와 기행필름의 특성상 많은 장면이 유실되었거나 일부 커트는 여러 세대를 거친 저화질의 상태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영상자료원은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수집한 노르베르트 베버 필름 컬렉션을 바탕으로 2020년, 이들을 원본에 가장 가까운 형태의 편집본으로 복원하는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복원 버전은 이미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베버 연구를 위한 중요한 기초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한 편의 영화로서 새롭게 조명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 조사·연구: 최소원(소원씨아카이빙)
- 기획·진행: 이지윤(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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