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 초반 무렵 영상자료원에서 처음 영화를 보았다. 고루할 것이라는 선입관과 함께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옛 영화들은 의외로 신선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를 관람하는 환경 역시 낯설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과 함께 <피아골>을 보면서, 그리고 <자유만세>를 보면서 전에 알지 못하던 경외감을 느꼈는데, 한국영화사를 허투루 봐서는 안 된다는 것과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영화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젊은이들이 주로 모이는 씨네마테크의 경험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때 그 장면을 회상하는 어르신들의 커다란 속삭임과 극장 안의 은밀한 사교 행위들. 물론 영화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됐지만, 난생처음 보는 영화들에 대한 기억을 그들은 분명히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나처럼 영화를 갈구하거나 소비했던 시절이 존재했다는 느낌(사실)은 묘한 자극을 주었다. 하지만 낮 시간을 중심으로 짜인 시간표는 부지런함을 요구했기에 영화를 자주 보지는 못 했다. 그럼에도 난 옛날 한국영화를 보면서 신선한 자극을 느꼈고, 어느새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자극을 한국 독립영화에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자료원에서 옛 영화들뿐만 아니라 당대의 독립영화들을 상영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 막연한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매달 한 번씩 ‘해피투게더, 독립영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낯익은 독립영화 감독과 새로운 관객을 만나면서,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동거하며, 젊음과 연륜이 만나는 영상자료원을 경험하고 있다. 독립영화를 감상하는 어르신들은 많지 않지만, 감독과의 대화까지 경청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을 만나면, 처음 영상자료원에서 느꼈던 경외감을 갖게 된다. 그분들은 독립영화를 어떻게 보셨을까? 과거의 영화들과 어떻게 다를까? 이런 궁금증 속에서 과연 나는 수십 년이 지난 후 ‘해피투게더, 독립영화’에서 상영됐던 영화들을 다시 보면서,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즐거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 영상자료원이 수용하는 영화의 폭이 좀 더 넓어지고, 관객층도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영화에 대한 열정도 식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