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멀티플렉스가 있지만, 이제 동네 극장은 없어요
“동네 극장이요? 그러면 구로CGV에 대해 써도 되나요?”
물론 나도 ‘동네 극장’을 이야기할 때 보통 소환되는 단관극장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부천 중앙극장 2층(확실하지 않다)에서 본 <라이온 킹 The Lion King>(로저 알러스?롭 민코프, 1994)은 최초의 극장 경험으로 기억하는데, 사자들이 화염 속에서 싸우는 장면에서 느낀 엄청난 공포감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압도적인 첫인상이었다. 이제 이렇게 큰 영화관은 없어진다며 온 가족이 단성사에서 본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데이비드 린, 1962)는 어렵고 지루했을뿐더러 내가 지금 어떤 현장의 마지막을 보고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해 무덤덤했다. 이런 기억은 극장의 멀고 가까움을 떠나 자발적인 영화 관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년 시절의 이벤트 정도로만 기억될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동네극장’은 구로CGV라고 말해야겠다.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에 멀티플렉스(어려운 영어!) 극장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학교에 파다하게 퍼졌다. 10개관이나 되고, 최신 시설로 지어져서 엄청나게 화려할 거라고 했다. 극장이 오픈하는 날에는 전관에서 최신 개봉작을 선착순 무료 상영한다고도 했다. 나는 학원에 가야 해서 공짜 영화를 볼 수 없었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차 창에 기대 극장 건물을 아련하게 바라보던 슬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CGV구로는 나의 극장 경험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이 시작되는 날의 이벤트였던 영화 관람은 점차 매주 주말의 일상적인 취미가 되었다. 극장은 기꺼이 문턱을 낮추어 내 일상이 돼주었고, 자연스럽게 나의 삶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그곳은 잦은 방문에도 언제나 새로웠다. 골라 볼 수 있는 영화가 너무나 많았고 시간대마다 다른 영화가 상영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많은 동네극장이 그러하듯 한산한 심야 상영의 혜택도 누렸다. 영화가 끝나는 새벽, 한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조금 전에 본 영화를 곱씹는 시간을 영화만큼이나 아꼈다.
동네극장에 대한 애정을 한 문단 정도 덧붙여야겠지만, 거짓말을 하지는 않겠다. 나는 이제 구로CGV에 가지 않는다. 언제부터라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 상영 시설에 대해 알게 되면서 더 멀리 있는 멀티플렉스라고 해도 스크린과 음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특별관을 찾기 시작했다. 예술?독립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그 영화를 틀어주는 극장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10개의 스크린이 그만큼 다양한 영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 빠른 회전을 위해 마스킹을 하지 않거나 크레디트가 시작되자마자 불을 켜는 정책, 근로자의 성차별적인 복장 규정에 대한 뉴스 같은 것들이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우연히 내가 사는 동네라서 예시가 되었을 뿐 구로CGV만의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지역과 상관없는 균일한 브랜드 경험은 프랜차이즈의 기본 전략이니 불평하는 것도 새삼스럽다.
자주 방문하며 친밀한 애정을 갖게 된 예술영화 극장들이 있다. 마스킹을 하고, 심한 냄새나 먹을 때 소리가 나는 음식물의 반입을 제한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끝날 때까지 암전을 지켜주는 곳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문화를 존중하는 공간의 마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시간과 거리를 생각할 때 그들을 나의 동네극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과격하게 점프해서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현재 극장 구조는 상영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바뀌면서 동네극장이라는 개념과도 작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글을 쓰고 읽는 우리는 동네극장이라는 추억을 가진 마지막 세대일까? (이미 IPTV 디지털 개봉(?!)의 시대인걸.) 나는 여기까지 쓰고 나서야 이 칼럼이 실리는 코너 이름이 이미 회고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러스트레이터 손민정
by.오세범(디자인&독립출판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