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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에 관한 로드무비
장선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본 사람이 거의 없는 영화 한 편이 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시사회를 했지만 극장에 개봉된 적이 없는 영화, 한국영상자료원조차 잊고 있다가 2011년에야 겨우 찾아낸 영화, 비평 대상이 되지 못한 영화, 그의 유일한 다큐멘터리. <한국영화 씻김>(이하 <씻김>)은 BFI(British Film Institute)가 기획한 영화 탄생 백주년 기념 프로젝트로 제작된 장선우 감독의 중편 다큐멘터리다.
극장에 가지 못한 영화
어쩌다보니 이 영화를 누구보다 많이 보게 되었다. 1990년대 말인가 2000년대 초 즈음, ‘한국영화사’ 수업을 맡아놓고서는 막막해하던 나는 첫 주 수업을 이 영화로 시작하곤 했다. 별다른 수가 없었다. 한국영화사를 가르치기는커녕 나부터 공부해야 할 처지인지라 난망한 안개 속인 한국영화 역사로 진입하는 친근한 길잡이 역할을 이 영화에 떠넘긴 것이다. 한국영화사 책이라고는 세로쓰기에 한자투성이인 이영일 선생의 <한국영화전사>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이 영화를 보아도 한국영화사의 흐름에 대해 거의 파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의 역사가 어찌하여 그리도 빈곤할 수밖에 없었는지, 영화가 이 땅에 도래한 후 우리의 삶이 어떤 사회정치적 환경에 놓여 있었는지를 환기시키고, 그것이 곧 한국영화의 운명이었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으로 그 역할은 충분하다고 믿었다. 한국영화사의 걸작들을 소개할 때도 비극적인 드라마의 변사처럼 자꾸만 비감해지곤 하던 시절이었다.
한국영화에 관한 영화
1995년 영화 탄생 백주년을 기념해 18개국의 감독들에게 자국의 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안할 때, BFI는 교육용으로 쓸 만한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영화사 기술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실은 정반대였다. ‘한국영화 역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시피한’ 장선우는 ‘주관적일수록 좋다’는 BFI 측의 말에 설득되었다. 2개월여의 촬영에서 엄청나게 많은 필름을 쓰고 2개월의 편집을 거쳐 나온 영화는 결과적으로 한국영화를 모티프로 한 사적 에세이에 가까웠다. 마틴 스콜세지(미국), 장 뤽 고다르(프랑스), 베르나르도 베르툴루치(이탈리아), 오시마 나기사(일본), 크쥐쉬토프 키에슬롭스키(폴란드), 스티븐 프리어즈(영국), 니키타 미할코프(구 소련) 등의 감독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995년 칸 국제영화제는 그중 7편을 공식 초청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내가 본 10여 편 중 장선우의 영화는 세계적인 거장들의 그것에 못지않은, 혹은 그를 넘어서는 개성 있고 흥미로운 결과물로 보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가 한국영화사를 잘 모른다는 게 결과적으로 단점만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세계적인 시네필들 사이에서도 대장 격이 될 만한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영화사에 대해 할말이 너무나 많아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청해 들을 틈이 없다(<미국영화를 횡단하는 마틴 스콜세지의 사적 여행>). 또한 영화 백주년에서 뭘 축하해야 하는지 반문하는 장 뤽 고다르는 그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로 길에서 만난 관객들에게 르누아르와 멜빌의 영화를 보았는지를 추궁할 뿐 그들의 얘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프랑스영화 2×50년>). 반면 <씻김>의 모든 영화 이야기는 당대 동료 감독들과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이때 장선우는 목소리를 유도하고 채집하는 친근한 중계자이자 예민한 기록자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임권택, 박광수, 여균동 등 여러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그들 사이의 친밀도와 영화관의 차이에서 빚어진 미묘한 기운과 온도 차를 굳이 지우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임권택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난 검열에 크게 다친 감독이 아니에요. 어떤 체계에 대해서 거스르면 안 된다는 뿌리 깊은 생각을 하고 주눅든 삶을 살았기 때문에…”라며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이어간 그의 고백은 검열에 대한 그 어떤 비판보다 통렬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반면에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영화 이야기는 좀 더 직설적이고 유쾌하다. 이 영화를 나와 함께 보았던 10여 년 전 학생들은 “<클리프행어>를 본 후에 (그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다른 영화를 볼 생각이 없어졌다”고 무심하게 단언하던 극장 간판 화가와 좋아하는 여배우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샤론 스톤”의 이름을 외쳐대던 화양리 10대 청소년들의 반응에 큰 웃음으로 호응했다. 아마도 지금 20대들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길 위의 영화
이 영화의 영문 제목은 <길 위의 영화 The Cinema on the Road>이다. <한국영화 씻김>이라는 다소 딱딱한 한국 제목보다 나는 이 영문 제목이 더 끌린다. 어감에서 오는 여운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영화와도 딱 맞아떨어지는 건 영문 제목 쪽이다. 장선우의 여행은 서울에서 찍은 1만 자의 필름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길 위에서 한국 현대사가 남긴 오랜 상흔을 발견하고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가늠해보려 했던 방랑의 기록이니 로드무비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동학혁명의 발원지 부안에서 광주를 거쳐 서대문형무소, 철원, 화순, 파고다공원의 시위 현장에 이르기까지의 그 여정은 한국영화의 꼴을 중층 결정짓던 현대사의 극적인 공간을 경유하는 코스다. 이 ‘정치’의 경로는 장선우 개인의 영화관에 머무르지 않는, 한국영화의 근원적 조건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친일 영화부터 <오발탄> <하녀> <돌아오지않는 해병> <바보선언> <티켓> <그들도 우리처럼> <세상 밖으로>까지 여기 모든 한국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길 위의 영화다.
<씻김>을 의문의 여지없는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영화사에 좀 더 해박한 지식과 애정을 가진 감독이 연출을 맡았더라면 이보다 훌륭한 영화가 나왔으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건 그저 ‘다른’ 영화일 것이다. 장선우에게서 균형 잡힌 시각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그는 어떤 감독을 대놓고 편애했고(이를테면 여균동), 일단의 영화를 완전히 누락시켰다(한국독립영화). 그리고 씻김굿의 형식을 도입한 것도 지금 시선으로는 꽤 낡아 보인다. 지난 한국 사회와 영화를 위로할 길이 굿 외에는 없었던 것일까. 당시 영화의 미래를 꿈꾸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을까. 그 후 20년간 한국영화가 거둬낸 산업적 미학적 성취를 떠올리면, <씻김>의 한국영화 담론은 마치 선사시대 얘기인 양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돌이켜보니, 그 드라마틱한 변화의 기운은 이미 이 영화 안에 배태되어 있었다. 게다가 <씻김>에는 왠지 사람을 울컥하고 뭉클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오래전, 이 영화를 나와 함께 보았던 이들에게 전염시키고 싶었던, 마술적인 기운이.
by.
강소원(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