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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아카이빙. 언제나 현재진행형!!
지난해 여름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을 통해 첫 장편영화 <간증>을 가까스로 완성한 직후의 나는, 큰일을 해치웠음에 안도하며 감독이라는 이름을 달기에 즐거워하기보단 당장의 밥벌이를 걱정해야 했다. 이상은 아직 저 멀리 있지만 현실은 당면한 생존의 문제! 이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에게 잠시나마 은총을 내려줄 돈벌이를 찾아 수색에 들어갔다. 그 수색의 결과가 바로 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의 연구원으로서 독립영화를 수집, 검수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너무 솔직하게 쓰는 게 아닌가 싶지만, 가난한 영화학도는 물론 나아가 영화 일만으로는 생계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대부분의 영화인에게 밥벌이란 비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니 당당하게 밝힌다. (아울러 故 최고은 작가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이렇게 시시하게도 금전적 이유말고는 없었느냐 하면 물론 거짓말이다. 평소 영화학도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영화애호가로서 자료원에 대한 애정과 흠모가 대단했던 나로서는 그야말로 천국 같은 일터요 꿈같은 일거리임에 틀림없었다. 영화에 본격적으로 투신한 지 갓 3년째에 접어든 내게 우리나라 독립영화의 한 흐름을 눈으로 직접 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굉장한 매력이었다. 비록 단기간이긴 하나 단편을 거쳐 장편 작업까지 경험해본 나는 적임자임을 자처하며 열정적으로 독립영화 수집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영상자료원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수집・보존 대상은 말 그대로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단편에서 장편까지의 모든 러닝타임과 규격, 극영화에서부터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실험영화에 이르기까지 전 장르의 한국영화다. 독립과 비독립을 구분하는 기준은 사실 미묘한 문제일 수 있지만 수집부에는 명확한 기준이 있다. 극장 개봉을 한 작품은 영화필름 의무제출제도에 따라 자료원에 자동적으로 수집된다. 그러므로 독립영화라 할지라도 정식 등급심의를 받아 개봉을 한 작품은 일단 독립영화 아카이빙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그 외 매년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영화 작품을 모두 조사해 수집하는 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그런 이유로 수집 대상작은 자료원 DB로 조사되는 국내 주요 영화제 및 독립, 단편 영화제, 포럼 등의 본선 진출작 또는 수상작으로 한정하고 있다. “영화제 작품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영구히 아카이빙할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를 고려함은 물론 독립영화 수집에 할당된 예산의 규모를 고려하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인 것이 사실이다. 이 예산도 그나마 영진위 기금으로 충당되던 것이 올해부터는 축소되면서 수집부 자체 예산의 일부를 쪼개어 편성해야 하는 형편이다. 처음 독립영화의 수집이 시작된 것도 위에서부터가 아니라 주무부서인 자료원 수집부가 자체적으로 필요성을 자각해 비롯된 업무인 만큼 관계당국의 이해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예산이 충분히 확충된다면 대상 영화제와 작품의 수를 더욱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 아카이빙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는다. 혹 이 글을 읽는 <영화천국> 독자님 중 “내 작품이 모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왜 자료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지?” 하시는 분이 있다면 부디 노여워 마시고 기증해주시는 것이 독립영화 아카이빙의 미래를 위한 일임을 알려드린다.
매년 영화제 조사를 통해 대상작으로 선정되어 아카이빙되는 작품은 지난해(2010) 기준 130 편 정도 된다. 영화제별로 중복 초청되는 훌륭한 작품이 많은 관계로 크게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편수다. 대상작이 정해지면 폭풍 전화 연락이 시작된다. 배급을 대행하는 주요 독립영화 배급사 외에 본인이 곧 저작권자이며 배급자인 연출자들의 연락처를 얻는 방법은 주로 영화제 사무국을 통하지만 영화제마다 개인정보를 엄중히 관리하는 관계로 쉽지만은 않다. 아직까지 영상자료원의 독립영화 아카이빙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점도 있다. 연출자에게는 무조건 득이 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본 사람 외에는 잘 모른다고나 할까. 수집 경험이 없는 연출자 대부분은 영상자료원이 “귀하의 작품을 수집・보존하고자 한다”고 하면 일단 놀람이 먼저, 기쁨이 그 다음이다. 때로는 연락이 끝내 닿지 않아 수집을 못해 안타까운 경우도 있고, 연락이 닿아도 개인 사정으로 거절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직접 연락과 계약을 통해 수집되는 작품의 원본은 1차 검수를 거쳐 복제업체로 보내지고 원본과 같은 규격으로 복제된 사본을 2차 검수 후 자료원에 보존하게 된다. 최근에는 역시 HD 포맷이 주류다. 원본은 물론 배급사 또는 연출자에게 온전히 반환한다. 계약의 내용은 복제된 사본은 영상자료원에서 영구히 보존하며 오직 자료원 건물 내부나 자료원 주최 프로그램에서만 비영리 학술적 목적으로 활용한다는 것. 시네마테크 KOFA 독립영화전용관에서의 상영이 그 활용의 한 예다. 이에 따른 소정의 활용보상비가 단편, 중편, 장편의 각 러닝타임 기준으로 일정하게 책정되어 있다. 크게 섭섭하지 않은 수준의 이 금액이 가난한 영화학도 내지는 연출자에게 얼마나 유용할지는 굳이 말 안해도 흐뭇한 일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면 하늘은 몰라도 영상자료원이 돕는 법이니 예비 연출자님들은 분발하시길 바란다.
수집부 연구원으로 일한 6개월 동안 독립영화 연출자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소중한 작품을 보는 일은 정말 근사한 경험이었다. 내가 한 일은 원본에 결함이나 이상이 없나 보는 ‘검수’였지만 나는 정말 솔직하게 ‘감상’을 했다. 내가 수집한 130여 편의 영화는 각각 130명의 다른 사람이었고 130개의 다른 세계였다. 그 재능이 탐날 정도라 연출자를 따로 만나 보고픈 유니크한 작품도 있었고, 당장 메인 프레임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세련된 작품도 있었으며, 두 번 보기 힘들 정도로 자신만의 예술적 야심과 미학을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뚝심 있는 작품도 있었다. 나는 놀라거나 피식 웃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거나 때로는 질투하면서, 매번 울고 웃으며 모든 영화를 즐겁게 보았다. 한 편도 빼놓지 않고 두 번씩! 모두 다른 영화였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나와 같은 또래, 또 세대인 이 땅의 젊은 독립영화인들이 공유하는 현실의 문제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 당대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려는 이러한 인식의 힘이 한국영화의 미래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6개월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밥벌이에 써버린 시간이 아니라, 내게 공부의 시간, 그래서 또한 영화의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본 130여 편의 영화를 지지하는 관객이자 그 연출자들의 숨은 친구라고 자부한다. 이 지면을 통해 마음으로나마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이 수상하고 맹랑한 일개 계약직원을 물심양면으로 돌봐주신 원 국장님 이하 수집부장님과 수집부원들 포함 한국영상자료원의 모든 직원에게 감사를 전한다. 과장 좀 보태서 내가 지금껏 몸담은 일터 중 최고로 아름다운 직장이었다.
제목은 무시할 것! 독립영화 아카이빙은 절대로 추억이 아니다.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by.
박수민(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