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우디 앨런이 사랑한 감독들 혹은 그의 영웅들
우디 앨런은 코미디, 스릴러, 드라마, 뮤지컬, SF 등 다양한 장르,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들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채워왔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는 결국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일 것이다. 앨런은 잉그마르 베리만에게 인간 존재에 관한 탐구를,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판타지와 강박적 세계를 수혈받았다. 돌이켜보면 앨런은 데뷔작 <돈을 갖고 튀어라>(1969)이래 슬랩스틱 코미디와 특유의 패러디 감각으로 익살스러운 영화(이를테면 <바나나 공화국> <섹스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것> 등)를 만들어왔다. 그러다가 앨런 스스로도 전환점이라고 회고하는 <애니 홀>(1977)에서 “난 매우 염세적인 인생관을 가졌어요. (중략) 난 인생은 끔찍한 삶과 비참한 삶으로 나뉘어 있다고 느낍니다.”라고 고백한다. <애니 홀> 이후 앨런은 자신의 웃음을 불안과 신경증으로 한껏 밀어 넣는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작품은 <인테리어>(1978)다. 이 영화에서 앨런은 ‘단 한 톨의 웃음’도 없이 미국 중산층의 불안을 탐구한다. 이 영화의 제목 자체가 베리만의 실내극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미아 패로와 함께한 첫 번째 영화 <한여름 밤의 섹스 코미디>(1982)는 베리만의 <한여름 밤의 미소>(1955)를 떠올리게 만들고, <또 다른 여인>(1988)과 <범죄와 비행>(1989), <해리 파괴하기>(1997)는 <산딸기>(1957)의 영향 아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앨런은 <결혼의 풍경>(1973)을 <부부 일기>(1992)로 번안하기도 했다. 이처럼 앨런이 베리만을 통해 ‘인간의 존재란 과연 무엇인가?’를 탐구했다면, 그의 또 다른 영웅 펠리니를 통해 판타지와 죄의식이 서로 부딪치는 강박적인 세계를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 <스타더스트 메모리스>(1980)는 우디 앨런 버전의 <8과 1/2>이며, <라디오 데이즈>(1987)에서 <아마코드>(1973)를, <셀러브리티>(1998)에서 <달콤한 인생>(1960)을, <스윗 앤 로다운>(1999)은 <길>(1954)을 떠올리게 만든다. 펠리니를 향한 앨런의 애정은 최근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로마 위드 러브>(2013)에서는 ‘파파라치’에게 쫓기는 로베르토 베니니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며 <달콤한 인생>을 환기시킨다. 물론 앨런이 사랑한 감독의 리스트는 베리만과 펠리니뿐 아니라 막스 브라더스, 안토니오니, 르누아르, 브뉘엘로 이어진다. 앨런의 영화를 사랑한다면 그의 영웅들과 만나보는 것도 행복한 (또는 지독한) 경험이 될 것이다.
by.나지현(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