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사막의 밤에 만난 당신들의 우주
나는 심심할 때마다 반복해서 보는 영화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때 그 사람들>이다. 정말 재밌어서 볼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을 놓게 된다. 영화연출가의 임무 중 하나는 장면의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배우가 하고 촬영은 촬영기사가 하고 무대는 미술감독이 꾸민다면 연출가는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공기를 만들어낸다. <그때 그 사람들>은 영화 전편 구석구석 이상하고 흥미롭고 투명한 안개가 짙게 깔려 있다. 전에 한 번도 맡아본 적 이상한 냄새가 계속 난다. 배경은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이상하게도 차가운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의 밤처럼 느껴진다. 인물들은 곱게 빗은 머리에 비싸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지만 왠지 며칠 굶은 들개들 같아 불쌍해 보인다. 모두 이 거대한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운명을 시험하지만 그들이 내뱉는 말은 너무나 시시해서 계속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이런 무지개 같은 레이어!! 아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임상수 감독님!! 이런 낯설고 매력적인 입체감은 영화의 스토리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도 우러난다. 분명한 목적과 욕망을 가진 인물들이 있지만 어디에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는 불분명하다.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적대자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도 없고 누구 하나 치밀함이나 목숨을 건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끝까지 몰아치는 위력적인 몰입도와 장르적 긴장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나는 <그때 그 사람들>의 정치적인 위치나 의도에는 관심이 없다. 개인적으로 그런 문제에 재미를 못 느끼기도 하거니와 이 영화가 나를 그렇게 만들기도 했다. 보는 동안 내가 대통령 암살자들을 응원하는 것인지, 응징하고 싶은 것인지도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만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희미하고 무책임하게 다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 각자가 거대한 우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사람은 좌 또는 우 둘로만 나뉠 만큼 단순하지 않으며, <그때 그 사람들>이 보여주는 다층적인 뉘앙스처럼 ‘그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니까.
by.조성희(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