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어린이날에는 지금으로서는 믿지 못할 행사가 매년 진행되었다. 당시 남산에 있던 어린이회관 앞마당에 만화책과 만화잡지 등을 높게 쌓아놓고 화형식을 치르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행사의 취지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정서에 만화가 수많은 폐해를 끼친다는 사회적 관점의 표현이었다. 만화가들은 스스로 자신의 작품 표현에 자기통제와 심의의 잣대를 무의식적으로 가져다 대었고, 만화방의 어두운 구석에서 만화책을 볼 수밖에 없었던 청소년들은 모두가 만화를 키치 문화의 한 부분으로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1980년대 <어깨동무>라는 잡지의 별책부록으로 시작했던 만화전문잡지 <보물섬>은 그때까지 출간되었던 모든 소년소녀잡지를 폐간시키며 국내 초유의 만화전문잡지로 약진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이후, 경제성장이 고도화되고 소비문화가 확대되면서 일본 수입 만화의 정식 라이선스 작품들이 국내에 대량 유입되기 시작한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등의 성공은 만화책 단행본의 구매 행태를 일반화시켰고, 청소년뿐만 아니라, 20~30대의 만화 구매를 정당화시켰다. 이때부터 만화 세대(comic generation)라고 불리는 만화 독자층이 조금씩 확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성인들이 만화책을 지하철이나 도서관, 혹은 카페에서 보는 행동은 터부시되었고, 만화책을 자연스럽게 구매하는 행위 자체도 만화는 저렴하게 또는 공짜로 본다는 인식이 여전히 두터워 확대되지 못했다.
만화 전성시대의 쇠락, 새로운 채널을 모색하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인 성인만화의 등장과 다양한 국내 만화잡지가 창간되면서, 만화 세대는 성인층까지 조금씩 확대되기 시작했고, 만화방은 점차 사라져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IMF의 경제적 타격은 만화산업계에도 영향을 미쳐서 단행본 판매는 급감하고, 잡지는 폐간되기 시작했으며, 새롭게 등장한 만화책 대여점은 다시 만화를 정식으로 구매하는 독자층을 축소시켰다. 만화잡지가 폐간되면서 유일한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 좁아졌고, 1990년대 중반 이후 개설된 대학의 만화 관련 학과 졸업생들은 작가로 연재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찾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등장한 국내 만화의 특별한 형태가 ‘웹툰’이다. ‘웹툰’이라는 용어가 국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 8월 16일자 <한겨레신문>이다. 당시 ‘천리안’이 운영하던 포털 사이트에 새롭게 인터넷 만화 서비스가 오픈했는데 그 서비스 명칭이 ‘웹툰’이었다. 실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서비스되었던 디지털 만화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무료로 볼 수 있었던 기존 만화방 만화와 단행본 만화의 스캐닝 버전이었다. 단순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기반으로 오프라인의 단행본을 PC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옮겨놓은 형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떤 작품은 오프라인 단행본보다도 더 낮은 해상도와 화질로 독자의 소비를 제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는 그 물량면에서 포털 사이트의 방문자를 늘리고, 포털 사이트 창업 초기 안정적인 광고시장을 확보하게 만드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그러한 효과는 만화의 사회적 기능을 약화시키고, 공짜 만화를 보는 소비자의 습관만 일반화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2000년대 본격화한 웹툰형식은 초기, 아마추어 성격이 강했다. 만화잡지와 단행본 시장에 진출할 플랫폼이 막혀버린 신인 작가들은 주로 가벼운 신변잡기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그림일기에 가까운 형식으로 포털 사이트 혹은 개인 홈페이지에 웹툰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웹툰 르네상스의 시작, 포털 사이트
2003년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는 ‘미디어 다음’ 서비스를 만들고 그 안에 ‘만화속세상’이라는 웹툰 연재 서비스를 개설했다. 그해 강풀의 <순정만화>가 만화속세상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에피소드 형식의 웹툰이 아닌 서사를 가진 이 작품은 연재하는 동안 조회수 6000만 회 이상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최초로 성공한 장편 웹툰으로서 주목을 받는다. 이후 기존의 에세이툰, 일상툰뿐 아니라 서사 구조를 갖추고 웹툰 특유의 연출법을 가진 많은 작품이 배출되었다. 이미지를 아래로 내리며 감상하는 세로 스크롤 방식의 작품뿐 아니라 만화 뷰어를 통한 웹툰 또한 다양한 형태로 개발된다. 포털 사이트는 웹툰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대량의 트래픽을 규칙적으로 유발하는 데 성공했고, 이에 따라 광고 노출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사업 모델이 정착된다.
강풀을 스타 작가로 등극시킨 웹툰 문화는 그로부터 다양한 신인 작가들이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 하고, 독자들의 평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열린 시장으로 형성된다. 뒤늦게 웹툰 시장에 진출한 포털 사이트 ‘네이버’는 무명의 신인 작가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어떠한 프로듀싱 형태나 멘토링 없이도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업로드 플랫폼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수백 명의 신인 만화가가 새로운 작품을 독자에게 소개하게 된다. 매주 수백명의 작가가 작품을 시장에 공개하고, 이를 객관적인 수치로 클릭하며 칭찬과 질타를 보낸 수백만 명의 독자에 의해 웹툰의 스타 작가들이 탄생하기 시작한다.
웹툰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웹툰의 스토리텔링이 국내 콘텐츠 산업계의 원작시장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웹툰이라는 만화 형식이 갖는 개방성과 객관성, 그리고 지속적인 표현 기술의 응용 및 진화 효과에서 비롯된다.
웹툰의 기술적 성장, 보는 눈의 다양성을 키우다
기존 1980~90년대의 만화잡지 시대에는 독자들이 좋아할 것으로 이미 정해진 만화 장르의 틀이 있었고, 스테레오 타입이 되었던 장르 형식이 스토리텔링과 캐릭터 디자인을 고착화했으며, 이를 통해 독자층과 팬덤까지 일정한 형태의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이러한 형태는 만화 창작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제한했고, 독자들이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등장한 웹툰 문화는 기존 작화 능력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했던 ‘만화가’라는 직업을 흥미롭고 참신한 ‘스토리텔러(storyteller)’로 전환시킨 중요한 혁명이었다. 그림의 완성도보다 이야기의 새로움이 독자들을 중독시켰고, 칸 만화의 형식에 갇혀 있던 독자들을 스크롤 형태의 스토리보드로 해방시켜, 영화적 언어와 연출이 만화에 직간접적으로 도입되는 효과를 확산시켰다. 그리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새롭고 융합된 장르들이 무한정 실험되고 제안되는 외부효과까지 보여주게 된다. 특히 공포호러만화를 그리면서 기존 응용되었던 플래시 효과를 극대화해 독자들에게 참신한 긴장을 유발했으며, SF만화의 속도감과 액션만화의 리얼리티를 기술적 효과로 확대시켜 독자들의 찬사와 응원을 만들어냈다. 결국 이러한 개방성은 웹2.0시대의 플랫폼 혁신을 통해 만화작가들의 창의적 시도를 자극했고, 시장 진입장벽이 낮은 대신 치열한 연재 경쟁에 돌입하게 된 작가들로 하여금, 연재주기와 표현 형식, 컬러형태 등을 선진화해 독자들의 만화문화를 풍요롭게 한 것이다.
개방성을 보완한 객관성은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조회수, 클릭수, 댓글수 등을 통해 인기 만화의 순위를 자동으로 매기게 했고, 독자로 하여금 수많은 웹툰 중에서 흥미롭고 사전 평가된 인기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탐색 비용과 학습비용을 최소화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객관성은 10대 청소년과 20대 문화 마니아에 국한되었던 만화 세대를 30대부터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으로 확산했고, 그들의 객관적인 평가는 세대를 아우르며 여타 연관 콘텐츠 산업의 기획자와 투자자가 웹툰 원작을 구매하게 하는 중요한 구조적 동기로 떠오르게 된다.
수입 만화를 누른 웹툰의 힘, 과도기에 서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 인터넷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400만 명이 매월 네이버 웹툰을 방문하며, 인기 작가는 팬클럽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인 만화가 조석의 <마음의 소리>는 2007년 연재 개시 이후 2009년 1월까지 누적 조회수 6억 회, 단행본 판매 6만 부를 돌파했고, 2012년 4월 누적 조회수 13억을 돌파했다. 미디어 다음 만화속세상에 웹툰을 연재 중인 만화가 강풀의 작품은 전편이 영화로 제작되거나 판권이 판매된 상황이다. 2012년부터 웹툰 원작으로 영화 및 드라마 등의 판권으로 계약된 작품이 30종을 상회하고 있으며, 여전히 포털 사이트의 웹툰 조회수는 콘텐츠 투자들의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다. 네이버 웹툰의 경우 2012년 8월 기준 순방문자 수 951만 명, 페이지뷰 11억 7,497만 건, 다음 만화속세상의 경우는 동 기간 순 방문자 수 410만 명, 페이지뷰 6억 3,000만 건을 기록하며 문화 콘텐츠 분야 트렌드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12년 기준 포털 사이트 담당자와의 심층 인터뷰 등을 통해 조사된 웹툰의 제작 시장(원고료)은 약 3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 기간 중 웹툰 유료화 수익은 약 16억 원, 웹툰을 통해 기업 광고나 정책 홍보 등의 내용을 전달하는 브랜드 웹툰 등을 포함한 직간접 매출은 약 100억 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통계적 수치를 합산해보면 포털 사이트 웹툰의 제작 시장과 연관 시장 등의 규모는 연간 총 400억 원가량으로 예측되며, 2013년부터 시작된 네이버 웹툰의 PPS(Page Profit Share) 서비스를 통해 매월 4억 원가량의 추가 수익을 110여 명의 작가에게 지급하고 있다. 텍스트형 광고, 이미지형 광고, 콘텐츠 유료판매(미리보기 및 완결보기) 등의 서비스를 통해 기존 조회수에 기반한 연재 원고료를 받던 웹툰 작가들에게 추가 수익을 지급하고 있다.
2012년 연말을 기준으로 국내 수입되고 있던 일본 만화의 수익이 최초로 약 30% 감소했다고 전해진다. 포털 사이트의 웹툰효과 때문이라고 한다. 기존 일본 수입 만화에 열광하던 10대 청소년과 20대 문화 마니아층이 대거 웹툰 소비 계층으로 흡수되면서 일본 수입 만화의 구매 시장이 감소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국내 웹툰의 연재 효과를 통해 한국 만화와 원작시장의 가능성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안정적인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음을 검증해주는 성과다. 네이버 웹툰의 PPS 서비스처럼 작가와 독자들이 상생할 수 있는 유료 시장의 확대가 우선되어야 하며, 지금보다도 더 다양한 장르와 표현 기술, 그리고 작품의 질 향상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100년의 역사를 넘긴 한국 만화의 새로운 도약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