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아스트]10. 베르트랑 보넬로 Bertrand Bonello
2008년, ‘카이에 뒤 시네마’가 그해 영화 베스트 10에 올렸던 베르트랑 보넬로 감독의 <전쟁론>은 삶과 창작의 고뇌에 빠진 한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극 중 감독의 이름은 베르트랑. 그리고 그의 방 안에 걸려 있는 영화 포스터는 <티레지아>. 베르트랑 보넬로의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영화가 <전쟁론>의 감독 베르트랑 보넬로 자신과 극 중 자아를 혼재하는 자기 반영적 영화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모티프로 한 이 영화에서 베르트랑 보넬로는 삶과 창작 행위 모두를 하나의 전장으로 묘사한다. 인간의 본질적인 고뇌와 허무, 영화라는 창작 활동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의 압박들, 그리고 그런 세상과 단절하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방법으로서 추상적 전쟁을 선택하는 기이한 공동체.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 어떤 단절과 공동체도 인간 실존을 고뇌하는 창작자 베르트랑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영화 속 대사처럼 비가시적인 인간, 유령이 되어 간다. 1968년생인 베르트랑 보넬로는 한때 클래식 음악단원으로 활동했으며, 페미스의 교수로도 재직했다. 1996년 단편작품으로 영화에 투신하게 된 그는 지금까지 총 6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그는 주로 폐쇄적인 공간과 그 안에서 정체성 및 외부와 갈등하는 사람들을 묘사해왔다. 육체와 섹슈얼리티, 68혁명의 역사와 현재의 정치적 지형들, 르누아르와 브레송의 영화적 유산으로부터 장 으스타슈 혹은 밥 딜런으로 대변되는 68세대(이제는 아버지 세대)의 질곡들, 그리고 프랑스 자연주의적 경향을 거스르는 과감한 영화적 스타일의 혁신까지 그의 영화적 관심 영역은 꽤 폭넓다. 영화사와 68혁명에 대한 그의 정치적 해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2001년에 연출한 <프르노그래프>다. 노쇠하고 퇴락한 포르노그래피 감독(한때 ‘포르노그래피조차 저항’이라 선언하며 격렬하게 시대에 대응했던 68세대. 극 중 장 피에르 레오가 맡은 아버지 역할)과 그의 아들(무정부주의자 그룹에서 활동하는 젊은 세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흡사 고다르의 <중국여인>에서 묘사됐던 치기 어린 혁명세력과 씁쓸한 패배의식을 닮아 있다. 이후 비평계에서 그의 이름을 부각한 작품은 2003년에 만들어진 <티레지아>였다. 트렌스젠더의 육체와 정체성, 감금과 소유, 창녀와 성인의 경계를 실험하는 이 작품은 파격적인 이미지들로 인해 여러 논쟁을 야기했지만, 프랑스의 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확실한 지지를 얻는 데는 성공했다.
이후 <전쟁론>을 거쳐 그의 최근작은 20세기 초에 쇠락의 길을 걸었던 고급 유곽에 관한 영화 <라폴로니드>. 단 한 번의 야유회 장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유곽 내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육체에 대한 관능성과 상품화된 신체로서의 전시성, 화폐로 매겨지는 물신화된 육체 및 남성들의 폭력적인 욕정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19세기 회화처럼 구현된 미장센과 빛의 질감, 그러면서 동시에 가미되는 현대적인 사운드(밥 딜런)와 브레히트적인 화면 분할까지, 감독은 ‘라폴로니드’를 시간과 공간이 중첩된 역사적이고 미학적인 실험공간으로 형상화해낸다. 풍부한 지적 교양과 영화사 및 예술사에 대한 확실한 자기 취향으로 무장한 베르트랑 보넬로는 지금 현재 ‘카이에 뒤 시네마’가 가장 지지하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필자 추천작 <티레지아>(2003) 한 남자가 트랜스젠더인 티레지아를 유인해 자신의 은신처에 감금한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 살 것이라고 선언하지만 성적 관계는 맺지 않는다. 그러나 감금에 의해 더 이상 여성 호르몬을 맞지 못하게 된 티레지아는 점점 남성성이 회복되면서 기괴한 육체가 된다. 그러자 어느 날 남자는 티레지아의 눈을 송곳으로 찌른 뒤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거리에 버려둔다. 얼마 후 인근 마을에 살던 한 소녀가 티레지아를 발견해 보살피고, 이날 이후 티레지아는 예언능력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의 추앙을 받기 시작한다. 2003년 칸 영화제에 소개된 작품.
by.정지연(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