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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던지는 영화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한준희 감독의 <차이나타운>이다. 김혜수와 김고은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영화는 정형화된 모성과 여성성을 벗어던진 여성 캐릭터들이 서사를 이끌어가는 희소한 한국형 누아르다. 14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장편 데뷔작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긴 한준희 감독은 ‘염치’를 지켰다고 웃으며 말한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쓸모’를 증명하며, 자신의 색을 단번에 각인시킨 이 젊은 감독에게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묻는다.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화두가 무엇이냐고.
전찬일(이하 ‘전’)
: <차이나타운>은 영진위 집계 기준으로 147만여 명이 관람했다. 이 영화가 장편 데뷔작인데,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특별 초청되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관객 동원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을 테지만 데뷔작으로서 충분히 주목할 만한 성과다. 먼저, 개봉하고 반년이 흘렀는데 감회가 궁금하다.
한준희(이하 ‘한’)
: 개인적으로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첫 장편을 연출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BEP(손익분기점)인 관객 수 120만 명을 넘기는 것이었다. 어떤 감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영화를 만드는 건 수많은 이의 노력과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보니 BEP는 나에겐 일종의 ‘염치’ 같은 거였다.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적어도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자는 그런 염치. 이후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한 일 등은 플러스 알파로 감사히 받을 수 있는, 일종의 격려 같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전
: <차이나타운>은 원래 ‘코인로커 걸’이었다. 실제 영어 제목이 ‘Coinlocker Girl’이고. 로만 폴란스키의 <차이나타운 Chinatown>(1974)과 동일한 제목이라 관객들의 기대심리로 인해 저평가된 측면도 있을 것 같다. <차이나타운>은 그냥 공간을 지칭하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함의가 있나.
한
: 투자・제작사에서 제시했고, 내가 동의한 제목이다. 마케팅 측면에서 ‘코인로커 걸’보다는 훨씬 쉬운 제목이고, 한 명의 관객이라도 이 제목을 통해 영화에 쉽게 다가올 수 있다면 하고 바랐다. 물론 폴란스키 영화와 제목이 같아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영화를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과 세대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그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라는 함의의 제목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전
: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차이나타운>을 보면서 가장 눈길을 끈 점은 역시 김혜수와 김고은이라는 두 여배우를 캐스팅한 것이다. 신인감독으로서는 행운의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우여곡절은 없었나?
한
: 통상적으로 배우 캐스팅에는 1, 2, 3순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무모해 보일 수 있지만, 1순위밖에 없었다. 배우 섭외는 연애와 유사하다고 본다. 누군가를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거절한다고 해서 곧바로 다른 상대를 찾진 않으니까.(웃음) 김고은 배우는 시나리오 초고를 쓰기 전부터 ‘일영’으로 염두에 두었고, ‘엄마’는 초고를 써나가며 김혜수 선배를 생각했다. 고은 씨는 감사하게도 흔쾌히 수락했고, 김혜수 선배는 처음에 고사하더라. 이유는 ‘관객으로서는 이 영화를 보고 싶지만 연기하기엔 너무 어둡고 잔혹해서’였다. 그래서 (군대에서도 안 써본) 손편지를 써서 직접 만나 전했다.(웃음) 기획 의도와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고, 무엇보다 ‘꼭 배우 필모에 남는 영화로 만들겠다’고 설득했다.
전
: 고사한 이유가 한편으론 이해된다. 엄마 캐릭터에 대한 이중부담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먼저 미혼 배우로서 엄마라는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고, 또 하나는 <차이나타운>의 엄마는 우리가 영화에서 흔히 보는, 신성시되는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 감독이 말한 ‘필모에 남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확실히 지켰다. 시간이 지나도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각인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개인적으로 <얼굴 없는 미녀>(김인식, 2004)와 <차이나타운>이 김혜수에게 그런 영화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두 배우의 ‘케미’는 좋았나?
한
: 정말 좋았다. 특히 김혜수 선배가 후배들을 잘 챙겼다. 연기 또한 탁월했고. 개인적으로 김혜수 선배의 연기는 시대에 맞춰 진화해왔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한국영화와 현재의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확실히 다르다. 관객이 익숙한 연기의 톤 또한 다르고. 말하자면 1990년대에는 대사도, 표정도 좀 더 명확한 캐릭터가 그려지는, 특징이 확실한 그런 연기 톤을 선호했다면 현재는 극사실적인 연기가 더 보편적이다. 김혜수란 배우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된 연기를 소화해왔다고나 할까. 사실 김혜수 선배와 김고은 배우의 연기 톤이 동일하진 않다. 그럼에도 좋은 앙상블이 될 수 있었던 건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
: 두 배우의 캐릭터로 들어가보자. 사실 이전에도 기존의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다른 종류의 모성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있었다. 예컨대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가 그러하다. 모성도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라고 보는데, <마더>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성 신화를 해체시켰다. <차이나타운> 역시 신성시되는 모성과는 차별되는 엄마의 모습이 나오는데 그것이 한 감독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던진 것이 아닌가 한다.
한
: 한국영화는 한국영화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엄마라는 존재는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가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며, 아이들을 지키고, 집에 남아 있는 존재였다. 많은 문학과 영화에서도 그렇게 그려졌고. 이 보편적인 클리셰를 유지하며 동시에 비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영화에는 4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과묵한 장남, 엄마와 잘 통하는 장녀, 어딘가 아픈 남동생, 사고뭉치 막내딸이 그들이다. 아빠가 등장하진 않지만, 그래서 엄마가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지만, 이 또한 익숙한 이 사회 속 대가족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익숙한 설정을 변주했을 때 어떤 영화적 재미가 발견될지 스스로도 궁금했고.
전
: 관객마다, 비평가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땐 감독이 이야기한 문제의식이 영화에 잘 드러나지 않은 면이 있다. 물론 보편화된 가족관계를 개성적으로 제시한 점은 높게 평가하지만, 가족의 존재를 바라는 사람들이 유사 가족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소재는 이미 <가족의 탄생>(김태용, 2006)에서도 보았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가족의 탄생>에서 관객이 느낀 힘을 이 영화에서 느끼지 못했다고 본다.
한
: 유사 가족이나 그 관계 등이 이 영화의 첫 번째 화두는 아니지만, 그게 무엇이건 의도한 지점이 있는데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가 부족했던 거다. 영화제작을 전쟁에 비유한다면, 제작 과정에서 많은 전투가 있었을 것이다. 이긴 전투도 있고, 진 전투도 있다. BEP를 넘긴 것, 그리고 소재나 캐릭터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물론 감사하다. 허나 첫 장편을 연출하며 좀 더 면밀하게 책임지지 못한 부분도 분명 존재하고, 당연히 다시 복기해봐야 할 아쉬움이다. 하지만 지나간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다.
전
: <차이나타운>에는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안 선생’(이대연)이라는, 아버지를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아버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유사)모녀관계의 여성 투톱. ‘가족’ ‘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있어 이런 설정은 분명 위험부담을 가지고 있다.
한
: 영화는 기본적으로 직관이라 생각한다. 왜 직관이냐 묻는다면, 영화의 엔딩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는 누아르이지만 ‘야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아르는 보통 야심이 있고, 무언가를 쟁취하고자 하는 남자들의 이야기인데, 그래서 싸움이 되는 것이고. 하지만 <차이나타운>은 결국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래서 여성들이 이끌어가야 했다. 사춘기를 거치며 변화하는 미묘한 정서, 스스로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감정 같은 가장 중요한 가치들이 여성 캐릭터가 발현해야만 가능한 가치들이라 믿었으니까. 그게 나의 직관이었다. 물론 이런 설정들을 위험부담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가 리스크 아닌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무언가를 시도해야 하는 거니깐.
전
: 그렇다면 아버지를 무기력한 사람으로 설정해 등장시킬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이 두 여성을 부각하기 위함인가?
한
: 일영과 엄마는 혈연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인물을 구성하는 단계부터 유사 모녀이자 보스와 조직원이라는 아이러니한 사이인 둘의 관계가 중요했고, 집중하고 싶었다. 초고에 비해 각색을 거듭하며 안 선생의 존재가 많이 생략된 면도 있다.
전
: 흔히 영화의 층위를 논할 때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시각/이미지 층위, 청각/사운드 층위, 이야기 층위, 그리고 주제 층위가 그것이다. 먼저 시각적으로 봤을 때 <차이나타운>은 편집 리듬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고 생각한다.
한
: <차이나타운>은 중・저예산 영화다. 40회차 촬영을 했고, 커트 수는 일반 상업영화의 반밖에 안된다. 하지만 커트의 수와 영화의 리듬은 크게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속도보다는 정서가 중요했고, 그 정서가 통한다면 속도는 결코 늦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전: 사
운드 역시 공을 들인 느낌이 든다.) 후반 과정에서 믹싱기사, 음악감독과 많은 논의를 했다. 사운드는 영화의 마지막 매듭이다. 효과 하나만으로도 영화의 인상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믹싱에 꽤 오랜 시간을 할애했고 빗소리, 효과음 등 사운드 연출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며 작업했다. 하지만 쉬운 작업이 아니더라. 좀 더 많은 시간을 두고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전
: 이야기적인 관점에서, 결국 감독이 강조하는 화두는 메시지인가 아니면 내러티브나 드라마인가?
한
: 어느 하나로 특정하기가 참 어렵다. 다만 늘 생각하려는 건 결국 관객에게 무엇이 남을 것인가. 거듭 말하듯 <차이나타운>은 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화두이지만 장르적으로 보여줬을 때 더 선명하게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출자는 답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영화의 장르적 쾌감 역시 이러한 질문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해야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
전
: 영화의 세부적인 묘사 부분에서 폭넓은 관객층이 보기에는 잔혹하거나 부담스러운 장면들이 있다. 하지만 성적 묘사가 지나치거나 아주 폭력적이지 않다. 개봉 당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는데, 묘사의 수위를 조금만 낮췄더라면 관객층, 다시 말해 관객의 외연을 넓힐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타협 혹은 절충을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한
: 사실 직접적인 신체 훼손 묘사 등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를 잔인하다고 느끼는 분들은 아마 정서적인 측면에서 폭력적으로 느끼신 게 아닐까. 관람 등급 부분은 전략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이야기의 태생 자체가 그런 정서, 잔혹한 생존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했기에 지금의 등급이 맞다고 생각한다. 절충은, 음….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어떻게 했어도 다른 등급이 나오진 않았을 것 같다.
전
: 데뷔 전 이야기를 해보자. <담배를 물다>가 처음 만든 단편인가?
한
: 고등학교 때부터 단편영화를 찍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혼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곤 했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영화반, 방송반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며 자연스레 캠코더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던 거 같다. <담배를 물다>는 20대 들어 처음 만든 영화다.
전
: 이제 30대 초반이라 질문이 적절치 않지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한 감독의 ‘내 인생의 영화’를 꼽는다면?
한
: 너무 많다. <대부 Mario Puzo’s The Godfather> 시리즈와 스콜세지의 영화들, 핀처의 <파이트 클럽 Fight Club>…. 처음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본 <소무 小武>(지아 장커, 1997)와 <달콤한 열여섯 Sweet Sixteen>(켄 로치, 2002), <피와 뼈 血と骨>(최양일, 2005)도 생각난다.
전
: 센 영화를 좋아한다. <차이나타운>을 연출한 이유를 알겠다.(일동 웃음) 의식하진 않았겠지만 ‘정서적 잔혹함’이라는 측면에서 좋아하는 영화와 만든 영화가 연결된다. 한국영화가 정점에 달한 1990년대 중・후반에 영화를 왕성하게 보던 시네키드여서 한국 감독들의 영향도 적잖이 받았을 것 같다.
한
: 맞다.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 김기덕 감독 등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할 수 있는 시기 선배들의 작품을 보며 20대를 보냈다. 당시의 한국영화는 이제 하나의 사조가 된 것 같다. 실제로 최근 ‘미드(미국 드라마)’를 봐도 그때의 한국영화들을 레퍼런스로 삼은 듯한 장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나 역시도 당연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
전
: 개인적으로 2013년에 만들어 미장센 단편영화제에서 선보인 <시나리오 가이드>를 흥미롭게 봤다. 특히 칸영화제, 장 뤽 고다르를 언급하며 비트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한
: 단편영화는 상영할 공간이 많지 않다보니 기본적으로 영화제를 찾는 이들이 주 관객층이다. 그리고 영화제에 오는 관객들은 시네필인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일종의 블랙코미디를 만들고 싶었다. 그들이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자조하며 웃을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고. (전: 혹시 칸이나 고다르 같은 해외의 거장들에게 억하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일동 웃음)) 실제론 무척 좋아하는 감독이다. 오히려 당시 전업 작가로 지내던 시절이었는데, 영화계를 약간 비꼬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
: <차이나타운> 전까지 시나리오 작가, 연출부 등 다양한 이력이 있는데, 특히 영화제 근무 경력이 많은 것으로 안다.
한
: 아마 현역 감독 중 영화제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한 감독인 것 같다.(웃음) 스태프뿐 아니라 자원봉사까지 합치면 부천, 전주를 비롯해 30회 정도 참여했다. 즐겁게 일했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고 좋은 영화를 소개하는 것. 그 자체가 ‘내가 영화와 함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해줬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월급을 받으며 지내다간 영영 영화를 만들 수 없겠단 생각이 들어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쓴 초고를 영화사에 팔았는데, 그게 박대민 감독의 <김선달>이다. 내년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내가 쓴 초고와는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사이코메트리>(권호영, 2013)를 작업했다.
전
: 오랜 평론가 생활을 하다보니,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했는지가 그 사람의 영화 이력에 많은 영향을 미치더라.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은 사회학, 박찬욱 감독은 철학을 전공했다. 물론 류승완, 김기덕 감독처럼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독자적인 영화 영역을 구축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감독도 있지만 전공, 혹은 학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감독으로 오랜 시간을 버티는 저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한 감독은 대학교 1학년 때 영화과를 중퇴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한
: 학교도 중요하지만, 태생과 자라온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고 느껴 그만둔 것은 아니다. 다만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들 때 영화과가 어떤 득이 될까’라는 자문을 많이 한 건 사실이다. 물론 아카데미 시스템이 잘 맞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전
: 학교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감독의 중요한 역량 중 하나가 사유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는 배움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사회에 대한 질문,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힘이 된다. <차이나타운>이 첫 장편이다. 이제 시작인데,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가?
한
: 나는 필드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필드란 게 단순히 제작 현장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학교 밖에서 만난 사람들, 그간 봐온 영화들. 그 모든 게 다 공부였다고 생각한다. 어떤 감독이 되고 싶은지, 어려운 질문이다. ‘염치’는 계속 지키고 싶고…. 어떤 작품을 하건 최소한 관객에게 무언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 휘발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현재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
전
: 영화감독으로서 가장 만들고 싶은 것, 즉 영화 작업을 통해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화두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
: 차기작이 될지는 확실치 않지만 현재 쓰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이 정도로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
: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 문제작들을 보고 자란 세대로서 그 영화들이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끝으로 30대 초반의 젊은 감독으로서 한국영화 산업에 바라는 점을 말해달라.
한
: 그 시절에 비해 뭔가 도전하는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본다. 아트하우스 영화와 대중영화를 나누는 경계가 너무 단순화된 것 같다. 좋은 작가영화도 충분히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고, 잘 만든 대중영화도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게 영화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시대의 흐름이 어찌됐건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부터 잘해야지.(웃음)
by.
전찬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