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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료원에 벙개를 때리다
‘장철 회고전’을 비롯, 몇 번 내 홈페이지 식구들과 영상자료원 영화 보기 벙개를 때린 적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고전영화를 거의 접하지 않은,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대중영화를 즐겨 보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영화 관람이 끝난 후 조촐하게 뒤풀이를 할 때마다, 마치 숨겨놓은 비밀을 털어놓은 양 조바심을 내며 꼬박꼬박 그들의 눈치를 살핀다. 영화 어땠어?
뒤돌아오는 대답들 면면을 듣다 보면, 내 걱정이 괜한 기우임을 번번이 깨닫게 된다. 그들은 훨씬 생동감 있게 반응하고, 예상보다 더 활기차게 영화 장면들을 머릿속에 각인한다. “몰랐어요. 오래된 영화도 이렇게 재밌다니!” 어떤 이는 더 자주 자료원 벙개를 때리자고 들뜬 표정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어쩌면 낡고 오래된 영화가 지금의 관객 입맛에 맞지 않을 거라는 편견이 정작 영화판에 속해 있는 우리, 그러니까 뭔가 더 새로운 영화들, 새로운 영화 기술에 집착하는 영화판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히려 그들의 시야가 더 열려 있는 걸 발견하곤 한다. 게다가 그들은 여기에서 한발 더 앞선다. “이런 자료원이 우리 동네에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간 날 때마다 보러 가게.”
그래, 참 신나는 이야기다. 동네까지는 아니더라도 구마다 자료원 같은 공간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일반 관객’이라고 열외시켰던 그들이 저 빛나는 고전영화들 살갑게 접할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고전영화는 어렵고 지루하다는 통념이 도처에서 부서지는 기쁨의 파열음이 발생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렇게 영화 문화는 ‘기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고전영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일부 시네마테크와 자료원으로 한정되어 있는 한국에서, 바쁜 일상에 부대끼는 일반 시민들이 과연 저 고전영화들을 과연 쉽게 접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동기와 기회만 부여한다면, 영상자료원이 조금 더 확대되고 활기차게 움직인다면, 슬리퍼 짝짝 끌고 극장으로 들어오는 동네 꼬마들의 미래, 그 문화적 비전은 지금보다 더 빛나지 않을까? 자료원 영화 벙개를 할 때마다 난 그런 꿈을 꾼다.
by.
이송희일(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