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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몽>, 식민지 조선의 눈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성영화 필름. 1936년 양주남 감독이 연출한 <미몽>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직은) 영화사적 의의로 충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대체하기에 <미몽>은 비평적으로 더 많은 가치가 있다. <미몽>은 1930년대 신여성 애순을 전면에 내세운다. “나는 새장의 새가 아니에요”라는 선언과 함께 남편을 등지고 애인과 호텔에서 생활하는 애순의 모습은 당대의 수용 범위를 넘어선 자유분방함을 보여준다. <미몽>은 이러한 이질적 여성을 잉태한 모더니티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표출한다. 즉, <미몽>은 모더니티를 비난하면서도 그 산물에 대한 매혹을 숨기지 못하는 분열적 작품이며, 이는 곧 모더니티에 대한 식민지 조선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자신을 식민지로 전락시킨 악덕의 모더니티를 표면적으로는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즐겨야 했던 이중적 시대의 징표, 그것이 우리가 <미몽>에 좀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매혹과 반감 사이의 신여성들
<미몽>의 모더니티에 대한 표면적 입장은 그것을 자본주의적 소비 공간으로 표상하는 과정에 잘 나타나 있다. <미몽>에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여주인공 애순의 ‘공간 이동’이다. 애순은 가정에서 뛰쳐나온 뒤 백화점으로, 카페로, 호텔로, 극장으로, 미용실로, 기차역으로, 모더니티를 표상하는 공간을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는 주로 소비와 관련된 공간으로 그녀를 낭비적 소비의 주체로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낳는다. 여성의 소비를 여성의 허영으로, 여성의 허영을 여성의 본능으로 만들면서 새롭게 등장한 모던걸이나 신여성을 구제 불능인 정신적 미성숙자로 묘사하곤 했던 ‘신여성’ 담론을 상기할 때, 이러한 공간이동은 애순을 낭비적 소비 주체로 위치시키면서 애순, 신여성, 모더니티의 동질성을 확보한다. 물론 모더니티의 도래가 식민지화 과정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더니티에 대한 식민지 조선의 반감은 필연적이었다. 특히 애순과 같은 신여성이 모더니티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가정을 등진 신여성의 타락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미몽>의 모더니티에 대한 관점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런데 <미몽>은 모더니티를 단지 비난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미몽>에 등장하는 모더니티는 새장 속의 새를 유혹하는 요물이지만, 또한 그것은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눈에 시각적, 전시적 쾌락을 주는 수단이다. <미몽>은 모더니티를 서사적으로 비난하면서도 시각적으로는 이에 대한 전시주의 전략을 구사한다. 인서트 장면이나 애순이 이동하는 공간 등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근대 문물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려는 욕망이다. 가령, 정희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그 옆으로 포드 자동차 판매점이 보인다. 이는 이후 정희가 차에 치이는 사건의 복선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포드 자동차라는 모더니티의 상징물을 ‘매혹의 대상’으로 전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인서트로 처리된 마네킹 숏을 보자. 첫 신에서 새장 속의 새를 비추던 인서트 숏은 애순과 남편의 대화를 상징적으로 강화시키지만, 이 마네킹 인서트 숏은 내러티브적으로 동기화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마네킹이라는 이국적 대상과 서양식 옷의 시각적 전시에 봉사할 뿐이다. 애순이 택시를 타고 용산역으로 질주하는 장면은 <미몽>의 시각적 전시주의 욕망이 극으로 치닫는 순간이다. 정희가 택시에 치이기 전까지 애순의 택시는 미친 속도로 질주한다. 이러한 속도감이야말로 모더니티가 발생시킨 새로운 삶의 양태이며, <미몽>은 이를 일반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던 택시를 통해 구현함으로써 전시주의적 욕망을 노골화한다.
이처럼 <미몽>은 타락한 여성을 낳은 모더니티에 대해 비난의 관점을 취하면서도, 또한 그 산물을 매혹의 대상으로 전시하는 이중적, 분열적 태도를 갖는다. <미몽>은 내러티브 차원에서는 전근대와 근대를 미덕과 악덕의 자리에 각각 위치시키지만, 시각적 차원에서는 그 악덕을 매혹의 대상으로 전시하는 분열적 텍스트라는 것이다. 이러한 텍스트적 분열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이 비난하는 대상을 매혹의 대상으로 즐기도록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하게 한다. <미몽>의 모더니티에 대한 양가감정, 즉 거부해야 하는 대상을 매혹의 대상으로 경험해야 하는 데서 오는 모순적 긴장감은 식민지 조선이 떠안아야 했던 역사적 굴곡이기 도 하다.
그녀의 딜레마에 가리워진 조선의 눈물
<미몽>의 이러한 분열적이고 이중적 태도는 정희의 사고와 함께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정희의 사고로 인한 애순에 대한 ‘도덕적 인과응보’는 관객의 분열되고 모순된 체험을 전통(전근 대)의 관점을 통해 통합하기 위한 서사적 전략이다. 이 사고 이후 애순은 신여성에서 전통적 어머니라는 정반대의 캐릭터로 전환된다. 이처럼 애순이 우연한 사고와 함께 도덕적 인과응보의 그물망에 사로잡힐 때, 관객은 고차원적인 도덕적 힘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연이 서사적 전환을 이끌어 도덕적 인과응보라는 환상을 가능하게 할 때, 우연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라 미덕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숙명’으로 격상된다. 숙명이 된 우연은 도덕적 인과응보의 힘이 여전히 사회에 작동하고 있다는 ‘상상적 해결책’, 달리 말해 타락한 시대에 사라진 줄만 알았던 도덕적 인과응보의 운명적 힘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로 기능한다.
이처럼 도덕적 인과응보에 입각한 애순의 처벌은 텍스트의 이중성의 간극을 봉합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딜레마에 처한 것은 단지 <미몽>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애순은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에서 애순의 연기는 전체적으로 과장되어 있다. 이 감정적 과잉 속에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이러한 과잉을 잉태했는가? 이 질문 속에 결코 통합될 수 없는 식민지 조선의 딜레마가 내재한다. <미몽>은 식민지 조선의 어찌할 수 없는 분열의 눈물을 담아낸 시대의 징표인 셈이다.
by.
안시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