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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감독의 출발을 알리는 서곡
이경미 감독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한 단편영화제에서 <잘돼가? 무엇이든>(2004) 영화를 심사할 때였다. 갓 스무 살 넘은 여성 두 명이 사회에 적응하려 안쓰럽게 노력하는 모습을 그려낸 단편이었는데, 영화 속 주인공이 화가 나서 휴대전화에 대고 서울 표준말에서 부산 사투리로 서서히 어투를 바꿔가는 장면에서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무척 뛰어난 감독이라는 감이 왔다. 나는 세계적인 감독 지아장커 앞에서 <잘돼가? 무엇이든>이 단편영화제 대상감이란 의견을 강하게 개진했고, 실제로 이 작품은 그해 영화제 공동 대상을 차지했다.
이렇게 이경미란 이름이 각인되었을 찰나, 감독의 데뷔작을 2008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한국영화에서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여성 캐릭터의 등장에 비평계가 술렁거리기도 했지만, 흥행 실패는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감독은 관객의 판타지와 1도도 야합하지 않고 허무맹랑함 그 자체로 영화를 밀고 나갔다. 대체 이렇게 안티 히어로적인 여성 캐릭터가 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이상하게 필자에게는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었고, 그해 최고작으로 기억되었다.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은 태생적으로 포커페이스가 안 되는 캐릭터다. 여자들에게 내숭이라는 적당한 감정과 행동의 통제력이 없다는 것은 짝짓기 무대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무데뽀’에 무다리에 무전취식, 즉 ‘삼 무’의 대가이시며, 우울증, 소심증, 화병, 건강 염려증, 피해망상, 공격성 등 현대인이 앓는 정신적 질병을 모두 앓고 있다. 고아 출신으로 사랑에 굶주린 그녀는 세상 모든 사인을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도끼병도 가지고 있다.
이경미 감독은 생각은 꽈배기이고 감정을 숨길 수 없는 ‘내숭 불가’ 캐릭터를 가지고 대한민국 제도의 전방위에 매서운 웃음의 메스를 가한다. 그 풍자와 도발은 기존의 가부장제, 권위적 학교 제도, 성 담론, 여성에 대한 판타지 등을 모두 아우른다. 예를 들면, 사모하는 서종철 선생(이종혁)의 딸이자 싸가지 없는 전교 왕따 서종희(서우)에게 다음과 같이 훈수를 둘 때 그녀의 말투는 정말 ‘웃프지만’ 매섭다. “1등에 목매느니 차라리 목을 매겠다.”
게다가 영화는 엉큼 발랄하게 성 담론의 기능을 원래 맥락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관객의 배꼽을 쥐고 흔든다. 서종철과 러브 라인에 서 있는 이유리(황우슬혜)를 골려 주려 인터넷 채팅을 할 때 「카마수트라」를 참고서로 펼쳐지는 양미숙-서종희 대 이유리 간의 쾌도난담은 대사만 듣자면 시각적 이미지가 빠진 극단의 포르노에 가깝다. 그러나 주인공들 모두는 결국 성적 쾌락이 노림수가 아니라 복수니 질투니 하는 다른 부차적 감정으로 몸을 떤다. 이 영화의 진짜 핵심은 ‘질투’와 ‘착각’ ‘착란’ 같은 어긋난 구제불능 인간관계가 빚어내는 블랙 코미디에 있는 것이다.
예쁜 것들을 맘껏 질투하고 탈신비화하자는 전략. 자의식 없는 여자, 제 몸만 챙기는 여자, 콤플렉스와 질투의 화신인 여자, 무채색 트렌치코트만 고집하는 여자, 삽질이 취미인데 진짜 삽질만 하는 여자.
<미쓰 홍당무>는 실상 지금 와서 보면 대한민국이 여성 캐릭터에게 허하지 않은 모든 발칙한 감정을 그러모으고, 대한민국이 여성 캐릭터에 부여했던 모든 판타지를 탈탈 털고 일어난다.
그래서 판타지 영역에서의 동일시와 숭배 대신, 영화는 자꾸 궤도 이탈을 하는 고장 난 기관차처럼 주류의 레일을 벗어나 주류적 시선과 거리를 확보한다. 지금 봐도 <미쓰 홍당무>는 아이의 엉뚱한 상상력과 어른의 엉큼함이 함께 어우러진 수작이다.
이경미 감독이 걸출한 연출가가 될 것이라는 예감은 그 후 <비밀은 없다>(2015)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2017년에 다시 보는 거의 10년 전 영화 <미쓰 홍당무>. 이 영화는 확실히 시대를 앞서가는 한 비범한 여성 감독의 출발을 알리는 서곡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by.
심영섭(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