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웹툰]영화, 웹툰과 다시 사랑에 빠지다
드디어 터졌다. 몇 해 전부터 웹툰은 한국영화의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었다. 탄탄하고 창의적인 이야기가 넘쳐나는 그곳은 늘 소재에 목말라하는 영화계 입장에서는 은혜의 땅이다. 사람들은 각자 기호에 따라 웹툰을 클릭하고 매주 올라온 내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내일의 이야기를 기다린다. 네이버 웹툰 기준으로 주간 400만 명이 넘는 독자의 (코리안 클릭 집계) 선택으로 걸러진 양질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대중 서사물의 창작 역량이 집결된 현대판 천일야화다. 오늘날 웹툰은 침체된 출판만화 시장의 대안을 넘어 대중문화의 주요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주춤했던 웹툰 영화화, 균형을 모색하다
그러나 반대로 영화화는 웹툰의 무덤이기도 했다. 인기 웹툰의 영화화는 한 해에만도 수차례 시도되었지만 정작 제작이 이루어진 사례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고 흥행에 성공한 사례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초기에는 드라마에 최적화한 강풀 작가의 인기작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지만 기대보다 그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웹툰 영화화 실패 사례의 교본처럼 회자되는 <아파트>를 거치며 무분별하게 진행되었던 웹툰의 영화화는 조심스러운 숨 고르기를 시작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의미 있는 스코어와 평단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어서 윤태호 작가의 <이끼>가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웹툰 <이끼>가 워낙에 영화적인 연출에 가까운 스크롤 연출을 구사한 까닭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웹툰과 영화 사이 나름의 균형점을 잡아나갔다는 데 의미가 컸다. 실패 끝에 배운 소중한 성과라 할 만했다.
이후 강풀 작가의 <이웃사람> <26년> 등이 꾸준히 소기의 성과를 거두며 이제 웹툰의 영화화는 나름의 규칙을 발견한 듯 보였다. 예를 들어 아래로 이어지는 시선의 이동, 독자가 임의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스크롤 방식의 특성, 이야기를 함축한 배경화면과 컷 한 장에 담긴 질감 등 웹툰 고유의 연출 기법과 그에 따른 반응이 영화와 엄연히 다름을 깨닫고 웹툰의 어떤 지점을 영화적인 요소로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웹툰 원작 영화들의 성과는 원작 웹툰의 인기와 반응에 비교해볼 때 여전히 모자랐다. 영화마다 원작과의 괴리감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기대에 비례해 불안과 회의도 함께 커져갔다. 그런 의미에서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물론 <은밀하게 위대하게> 역시 평단의 비판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관객 반응을 피해갈 수 없었다. 다만 이 영화가 상업영화의 돌파구로 웹툰이 취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꽃미남 간첩, 웹툰 영화화 시대 2막을 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실질적인 결과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현재 제작 대기 중인 웹툰 원작 영화에 탄력을 불어넣었다. 원작의 팬층이 탄탄할수록 도리어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했던 기존의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는 웹툰 기반의 영화가 공략해야 할 포인트를 확실하게 잡아냈다. 장철수 감독은 이를 위해 원작의 단점과 한계를 제거하려 애쓰는 대신 장점도 단점도 함께 증폭시킨다.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핵심 콘셉트는 ‘꽃미남 간첩’이다. 실상 드라마 자체는 그리 정교하지도 참신하지도 않다. 그러나 각 캐릭터의 사연이 설명되는 호흡과 매 장면 캐릭터의 감정 묘사 등 웹툰 연출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기대 이상의 팬덤을 형성했다. 따라서 영화 역시 개별 장면의 완성도보다 전체 흐름, 웹툰의 앙상한 이야기 뼈대보다 ‘웹툰’ 그 자체를 하나의 문화 향유 과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호불호는 극명히 갈렸지만 그만큼 원작이 팬들에게 호소했던 지점들은 확실히 살아났고 김수현을 비롯한 스타 배우의 활용은 이를 더욱 강화해나갔다. 요컨대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웹툰과 독자들 사이의 화학반응, 그 맥락을 파악하고 영화에 적용한 최초의 웹툰 원작 영화다. 웹툰에서 이야기만 뽑아 와서 영화화했던 시기를 1기, <이끼> <26년> 등 나름의 영화적 변주가 이루어졌던 시기를 2기로 본다면, 이제 웹툰의 영화화는 세 번째 시기에 접어들었다. 사실 그간 웹툰의 바다는 영화계 입장에서는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잔혹한 모험이었다.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견디다 못해 바닷물을 수시로 마셔보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참혹한 실패와 타들어가는 갈증뿐. 그럼에도 그 매력에 홀려 계속 그 물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이야기의 사막, 어쩌면 신기루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몇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정제하는 법을 배웠다. 산업적으로는 웹툰 원작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 사례를 통해 가능성과 신뢰가 형성되었고, 작품적으로는 영화라는 강박에 빠져 원작과 동떨어지거나 원작에 함몰되지 않을 균형점을 발견한 셈이다. <다이어터> <신과 함께> <목욕의 신> 등 줄줄이 영화화를 기다리고 있는 웹툰이 아직 그득한 만큼 이 천일야화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우리 역시 기꺼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by.송경원(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