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선]한국영화 베스트 10, <바람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
<바람불어 좋은 날>은 1970년대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작품이다. 1980년 광주의 끔찍한 학살이 있던 시절, <바람불어 좋은 날>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사회적 리얼리즘의 시대로 가는 이정표가 되었다. 이장호 감독은 1970년대 일자리를 구하러 상경한 가난한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서럽고 억울한 당대 현실을 고발했다. 영화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힘들게 살고 있는 덕배(안성기), 길남(김성찬), 춘식(이영호) 등 세 청년의 이야기다. 덕배는 중국집 배달, 길남은 여관 심부름, 춘식은 이발소 조수로 일하는데, 경제적으로 사회의 최하층에 속하는 그들은 욕망의 위계질서에서도 최하층에 위치한다. 영화에서 계급사회의 현실은 주로 욕망의 위계질서를 통해 표현되고 그로 인해 <바람불어 좋은 날>은 단순한 리얼리즘 영화를 뛰어넘는다. 영화는 인간을 경제적 존재로 그려내는 동시에 그걸 넘어서는 욕망의 존재로 그려내는 것이다. 세 젊은이는 배운 게 없고 돈이 없어 억울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서러워도 목소리 높여 말하지 못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모욕을 견디며 살아가지만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을 보면 꼭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바람불어 좋은 날>이 보여주는 인간은 욕망의 희생자 혹은 실패자들이다. 그리고 그 점이 세월이 흘러도 이 영화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by.남동철(부산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