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 도입부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동사무소에 찾아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공무원에게 따진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고 싸울 듯이 고함을 친다. 이 장면에서 싸움의 원인이 공무원의 잘못에서 비롯한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공무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상황은 전환 국면을 맞는다. 결국 항의하러 온 쪽의 실수였음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멋쩍게 웃으며 동사무소를 나온다.
처음 영화를 접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전에 거의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때 동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술에 취한 두 남자가 찾아와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욕을 퍼부으며 따진 적이 있다. 뭘 따졌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이 불완전해서일 수도 있고 그들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아 미처 이해를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들의 욕설은 정말 거칠었으며 그들이 데려온 지저분한 개 두 마리는 동사무소에 벌어진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끄럽게 짖으며 뛰어다녔다. 그들의 항의에 조용조용한 말투로 대답하던 사회복지사가 참다못해 꽥 고함을 지르며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양쪽 다 화가 났구나, 나는 큰 싸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겁을 먹었다. 야단을 맞은 남자들이 주먹을 휘두를 거라 예상해 경찰을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두 남자는 사회복지사가 화를 내자 한동안 듣고만 있더니 이렇게 말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나는 다 큰 남자들이 그렇게 힘 빠지고 굴욕적인 말투로 말하는 건 처음 봤다. 그들이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못하는 동안, 계장이 사회복지사를 달래자 간신히 화를 가라앉힌 그가 동사무소 밖에서 한숨을 쉬며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를 보고 감동해서 불의에 맞서 싸우며 노숙인을 비롯한 사회의 소수자를 돕자 결심한 성숙한 인간이 되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더글라스 커플랜드의 소설 <신을 찾아가는 아이들>에는 ‘약간의 정성 어린 관심만 있으면 되리라 생각하는 순진하고 중산층다운 발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나는 중산층은 아니지만, 우리가 조금씩 서로를 도우면 세상이 금세 아름다워질 거라는 순진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당연히 세상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택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동사무소에서 만난 사회복지사들은 아주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나는 아마도 낙천적이지 않아서, 그리고 세상 물정 모르고 마냥 어리기만 해서, 그 일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를 봤을 때 그때의 감정을 다시 떠올렸다.
어떤 독립영화가 가장 좋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나는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독립영화를 보기 전에는 솔직히 운동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건 지금도 일부분 그렇다. 판타지 소설가로서 나는 주로 마법과 용과 소년의 모험에 대해 생각하며, 독립영화에 대해서는 가끔 스쳐가는 관객이고, 단지 리뷰를 쓰는 동안 더 길게 영화를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때때로 나는 삶을 관조하는 시선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소설은 결국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시선에는 삶의 경험을 따라가며 발생하는 변화의 지점이 있고, 그중 몇은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격렬하기 마련이다. 그 지점에 영화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가 닿아 있다.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다.
by.김이환(소설가,독립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