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영화인 구술사 사업에 참여중인 이순재 배우>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자료원’)에 연구와 발간 분야 직무가 생긴 것은 2004년으로, 업무영역 중 가장 늦게 만들어진 편에 속한다. 연구자 출신 원장이 부임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이와 함께 영화를 전공한 연구자들이 자료원에 입사했다. 필자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이렇게 구성된 연구팀은 원로영화인구술채록 사업, DVD 출시사업, 연구서적 발간사업, 자료총서 발간사업, 학술행사 등 오늘날까지 유지되거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사라졌던 다양한 연구, 조사, 발간 사업들을 정초했다. 한국영화사 연구를 위한 토대가 너무나 부실했고, 한국영화사에 대한 제대로 된 개론서 하나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엇이든 사업을 하면 그것이 곧 영화계에 새로운 공헌이 되었던 시기였다. 곧 그 성과는 인정받기 시작했다.
「영화천국」이 발간되기 시작했던 2008년은, 연구발간 사업이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조선희 전 원장의 특별한 관심 속에서 발간사업 예산이 크게 증액되었고, 한국영화사연구소가 신설되었다. 비록 계약 연구원 1인의 인력이 충원된 수준에 그쳤지만, 원장 직속의 단위로 전문성과 특수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었다. 발간사업은 확대되었다. 2007년에 포켓북시리즈가 만들어졌고, 2008년에는 자료총서사업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 한국어 신문기사를 정리해 제공하는 『신문기사로 본 조선영화』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2004년 2편으로 시작했던 연간 DVD 출시 편수는 2007년 10편을 넘어섰다.
이 시기 자료원은 한국영화사 연구를 위한 전문사료의제공, 한국영화사에 대한 지식의 대중적 확산,한국고전영화의 보급을 그야말로 ‘하드캐리’했다. 즉연구와 자료의 수집가공 뿐 아니라, 어떻게 한국영화사의고전들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것인가라는 고민 역시중요한 축을 이루었고 그 과정에서 DVD의 제작 보급 뿐아니라 대중적인 포켓북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한국영화는 보지만, 한국영화사는 모른다? 자료원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어렵고 낯설게 느껴졌던 한국영화사를 쉽고 재미나게 풀어냈다. 한국영화 지식과 연구의 대중화를 위해 한국영화사연구소를 열고, 기존 한국영화사구술총서와 자료총서, 연구총서에 이어 ‘FILMStory총서’를 기획한 것. 1차분으로 출간된 ‘FILMStory총서’ 여섯권은 한국영화사에 대한 대중의 접근성을 높이고, 누구나 손쉽게 한국영화사를 이해할 통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10년대 초까지 연구발간사업은 04년에 정초되어 2007-08년 사이에 확장된 경로를 따르고 있었다. 부족한 영화사료를 만들고(구술사), 정리하고(자료총서), 성과를 공개하고, 고전영화를 소개했다. 여전히 무엇이든 하면 좋은 시절이었다. 한 해에 5-8권의 책, 10권 내외의 구술자료집, 10편 내외의 DVD가 만들어졌다.
<2018년 국제심포지엄 이데올로기와 흥행 사이-식민지/제국의 영화관, 영화문화>
깊이에의 요구: 고민이 생기다
그런데 2010년을 전후하여, (굳이 표현하자면) 발간물의 대량생산 체제에 대한 수정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우선 한국영화사의 연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기본적인 한국영화사 연구 개론서적, 교양서적들이 연구자들에 의해 출판되기 시작했다. 그간 소수의 정전과 작가를 대상으로 한 한국영화사 연구의 폭은 급진적으로 넓어지고, 깊어졌다. 기술사, 정책사, 검열사, 산업사, 여성사, 합작영화사, 극장사, 냉전영화사, 지역영화사, 영화인네트워크, 역사적 장르들의 역사, 개별 시대사, 외화수입(수용)사, 영화 비평 및 담론사, 영상문화사, 메타 영화사, 아카이벌 스터디, 문화영화사, 혹은 다큐멘터리 역사, 독립영화사 등 영화사 연구가 세부적인 주제로 넓어지고 깊어질수록 자료원의 연구 역량 역시 전문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3~4명의 연구원으로는 그 분야를 모두 커버하기는커녕 외부 연구성과를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연구원들은 도서 편집, 교정, 디자인에 대부분의 업무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이에 따라 대중적인 한국영화사 서적의 발간사업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한편 이 기간 자료원 전체 예산이 삭감되면서, 연구발간사업의 예산 역시 축소되었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기준이 필요해졌다. 그 기준은 ‘꼭 자료원이 해야 하는 일인가’였다. 그 결과 자료원이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판단된 포켓북과 일반 연구서적의 발간 종수는 줄거나, 점차 폐지된다.
담당 팀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자료원다운 연구와 발간 사업을 어떻게 진전시켜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자료원다운 연구와 발간 사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각론에서는 다양한 사업 아이템이 있을 수 있겠지만, 총론적으로는 ‘자료원이 아니면 못 하는 사업’에 방점이 찍힌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자면 각 대학이나 개별 연구자들이 수행할 수 없는 사업, 자료원이 보존하는 방대한 자료를 외화하는 사업, 다양한 연구 분야를 묶어낼 수 있는 사업들이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구술 채록 사업, 문헌자료 정리 사업, 고전영화 DVD 출시 사업 등 연구소의 핵심 사업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였다... 2010년 사업의 세부안이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나(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포켓북과 연구총서 등 개별 연구자들이 진행할 수 있는 단행본 발간 사업은 종수를 줄였다.
이와 함께, 2010년대 초부터 진행된 구술사업, 연구소 포럼, 학술심포지엄 등에서는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주제에 대한 증언 채록, 자료의 발굴, 기본적인 연구성과 공유와 내부적인 학습이 병행되었다. 대표적으로 미군정기 영화사 연구나 지역 영화사, 합작영화, 문화영화, 검열사, 극장사 등을 들 수 있겠다.
영화사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 공공기관인 자료원의 중요한 임무라고 할 때 지역 영화사 연구 역시 자료원이 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올해 연구소가 진행하는 주제사의 구술사 프로젝트 대상은 대구 지역 영화사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1950~70년대 사이 대구 지역의 영화사를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올 11월에는 지역 영화사로 심포지엄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심포지엄은 이처럼 기억과 기록에서 사라지고 있는 ‘문화영화’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첫 시도였다. 또한 지난해 영화사연구소가 진행한 주제사 구술채록과 고려대 한국사연구소와의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 관련 연구자들이 모여 1년여 간 함께한 세미나의 결과를 공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012~13년경을 전후하여 특정 주제의 선정-사전스터디-구술채록-세미나-심포지엄-도서발간 등으로 이어지는 사업 간의 연계가 확립되었다. 즉 도서는 그저 관련 연구자들에게 외고를 맡겨 발간되는 것이 아니라, 나름 오랜 사전 작업을 통해 나오는 결과물이었다. 이와 같이 문화영화, 검열사, 극장사에 대한 연구서적들이 발간되었다.
패키지 미디어 시대의 종말과 DVD/블루레이 사업
한편 DVD 출시사업의 경우, 자료원의 VOD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특히 유튜브를 통한 무료 서비스가 진행되면서 한국고전영화의 대중적 보급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보다 나은 소스, 소책자 및 다양한 서플먼트를 제공한다거나, 유형물이이라는 가시적, 비가시적 이점이 있었지만, 여하튼 원 취지로부터는 다소간 멀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2010년대 초를 지나며 패키지 미디어 시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국고전영화 DVD 구입자는 소수의 한국영화 컬렉터 혹은 영화 매니아들로 고착화되었다. 이 즈음 한국고전영화의 DVD를 구입할 소위 ‘헤비 유저’들은 블루레이 시장으로 이동했고, DVD 시장은 블루레이와 DVD로 양분되었다.
…연말 잔여예산으로, 게다가 ‘판매’에 대한 조직 내부의 우려를 딛고 어렵게 착수했던 첫해에 비해, 이제 한 해에 8~10편 정도 만들 수 있는 안정적인 예산이 뒷받침되는 명실상부한 자료원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을 기점으로 한국의 홈비디오용 소장 매체는 DVD에서 블루레이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이제 영화애호가층은 한국영화를 소장하기 위해 DVD가 아닌 블루레이 타이틀로 구입한다. 현재 블루레이 제작비는 DVD의 두배에 달한다. 그러나 시장도 점점 협소해지는 데다 사람들이 더 이상 DVD매체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KOFA컬렉션’은 방향성을 새롭게 고민해야 할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현재 주어진 예산 내에서, 연구부와 필자는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다. 내년에는 ‘KOFA 컬렉션’이 첫 블루레이 출시작을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2014년부터 자료원은 DVD와 함께 블루레이를 병행하여 출시하기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블루레이만 출시하게 되었다. 블루레이로의 이동은 DVD 시절에 비해 몇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블루레이 시장의 소비자들은 품질에 대해 매우 까다롭다. 따라서 단순한 HD 텔레시네 결과물 만으로 블루레이를 출시하기 어려워졌다. 우리 보존센터에서 2K 이상의 화질로 심화복원을 했거나, 심화복원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4K 리마스터링을 거친 작품들이 블루레이의 출시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전 흑백으로는 블루레이의 효과를 모두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보니, 80년대와 90년대 작품들이 상당수 포함되었다. 물론 이에는 80-90년대 영화들이 고전영화의 범위에 들어서는 시기가 도래했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블루레이 출시사업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남아있다. 2012년에는 DVD 분야에 새롭고 특수한 사업이 추가되었다. 바로 ‘우수영상물 다국어자막 DVD제작배포 사업’이라는 관료적인(!) 제목의 해외 연구자 혹은 해외 한국영화 팬들을 위한 국제사업이었다. 자료원의 재원이 아닌 문화부 본부의 사업을 위탁받아 시작한 사업으로, 해외 한국학 강의에서 필요한 교보재를 제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문화부와 협의 중인 사업안이 있다. 한국영화를 기초로 한 한국학 관련 영상교재(주제 도서와 다국어 자막이 수록된 6~7편의 DVD 박스세트) 제작 및 배포사업이다. 한국 사회,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영화만큼 좋은 교재가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인데, 문화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올해 첫선을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나의 주제로 일제강점기에서 2000년경까지 한국영화사의 대표작 8편에 국영문 해설책자, 8개국어 자막까지 수록한 이 DVD박스세트는 해외연구자들이나 공공기관으로부터 높은 호응을 받았고, 첫 해 “영화와 여성” 세트 이후 오늘날까지 자료원의 대표적인 해외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다만, 2018년부터는 문화부의 해당 사업 예산이 반으로 줄어 편수 역시 4편으로 줄어들었다.
<KMDb 온라인 사료관>
새로운 방향의 모색: 온라인사료관이라는 새로운 플랫폼
한편 2010년대 초중반부터는 온라인사료관 사업이 모색되었다. 이 사업은 다음의 몇 가지 배경에서 추진되었다. 첫 번째, 기존 사업의 성과를 보다 높이기 위한 창구가 필요했다. 대표적으로 구술채록사업을 들 수 있겠다. 증언 내용의 민감성으로 인해 채록자료집은 한정된 몇 부만 제작되어 도서관에 비치되었고, 해당 자료는 수요자가 직접 도서관을 방문해야 열람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담고 있는 자료의 가치에 비해 활용성이 극도로 떨어졌다. 특히 지방이나 해외에 있는 연구자의 경우에는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2010년부터 온라인을 통한 자료공개 방안이 구상되기도 했다. 말하자면 온라인사료관의 원류는 구술사 온라인사료관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는 아카이브로서의 자료원의 위상을 재확립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자료원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픈된 아카이브 기관 중의 하나지만, 이는 좁은 의미의 영상자료(극영화를 비롯한 동영상)에 국한된다. 영상이 아닌 도서 및 문헌자료, 이미지자료 등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컬렉션이 구축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이를 공개할 플랫폼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셋째로는 해외(와 지방)의 연구자들을 고려했다. 2010년대 이후 대학 내 영화학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영화학 내 신규 연구자들의 유입이 끊기다시피 했다. 이와 함께 국문과나 역사, 한국사 등 타 분야의 연구자들이 영화사 연구에 유입되었고, 무엇보다 해외 한국학, 영화학 연구자들의 한국영화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해외 연구자들이 자료원의 주요한 수요자로 부상했는데, 해외에 소재한 연구자들에게 자료들을 보다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해졌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사료관 사업은 무엇보다 수집-보존복원-활용이라는 전통적인 아카이브의 업무 흐름에서 다소 애매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던, 그래서 항상 그 역할에 대해 의심을 받았던, 연구조사의 영역을 아카이브 업무 흐름 내에 안착시키고자 하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즉 온라인사료관 사업은 내부 연구원들이 자료를 기반으로 연구조사를 진행하고, 기획수집을 추동하며, 데이터들을 가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사유로 수년간의 요청 끝에 2016년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콘텐츠의 확충을 시작했다. 구술채록문의 서비스용 가공이 이루어졌고,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1980년 이전 한국영화 관련 공문서를 조사해서 그 중 600여 건을 제공받았다. 또한 영화진흥위원회와 협의하여 1977년부터 1999년까지의 영화연감을 함께 서비스하기로 했고, 연구전시팀이 발간한 도서 중 일부 자료가 서비스를 위해 디지털화되었다. 또한 자료원이 보유한 영화잡지, 전단지, 검열자료 및 스틸사진 해제 서비스 등이 기획되었다. 2017년 플랫폼이 구축되었고, 2018년 2월 마침내 문을 열었다.
... 2018년, KMDb 오픈 이래 가장 대대적인 개편을 시행하면서 디자인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 모바일 대응 전략까지 완전히 바뀌게 되었고 ‘한국영화사료관’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서비스가 추가된다. 2018년 2월 새롭게 문을 연 KMDb에서 가장 먼저 소개할 것은 ‘한국영화사료관’이다. 연구전시팀에서 수년간 진행해온 한국영화사 관련 콘텐츠는 그간 연구자들에게 유용한 자료와 콘텐츠로 알려졌으나 일반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 연구 결과를 KMDb 한국영화사료관을 통해 서비스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사료관으로의 전환은 연구발간 사업의 전체적인 방향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연구발간사업에 주어진 인력과 예산을 주로 어떤 외화물을 위해 투여하는가라는 기준이 변화한 것이다. 그 결과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오프라인 출판은 거의 폐지되었다. 그러나 온라인으로의 전적인 전환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내부적으로도 이견이 있었고, 현재 시점에서 오프라인 도서의 부활이 재검토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여력이 된다면, 온오프라인의 병행이 나쁠 것은 없다. 지난 10년간 자료원의 연구발간사업은 내외의 여러 환경 변화 속에서 좌충우돌했다. 한국영화사의 대중화를 고민하는 한편 민간의 영화사연구에 보조를 맞추어야 했고, 영화사연구를 수행할 후속 인력의 재생산 위기 즉 연구자의 풀이 축소되면서는 영화사 연구를 견인하는 역할도 맡아야 했다. 자료원 내부적으로는 연구조사 단위가 아카이브에 왜 필요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자료원이라는 국내 유일의 아카이브 기관 내에 연구와 조사의 역할과 사업이 언제나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다만 주어진 인력과 예산의 한계 내에서, 자료의 수집보존과 공급기관으로서 자료원의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극대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