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십자로 변사 공연>
자신이 걸어온 10여년을 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쉽지가 않다. 처음에는 2007년 하반기부터 시네마테크KOFA와 한국영화박물관 개관을 준비하는 팀에 있었고, 중간에는 3년간 타 부서에 있었지만 현재도 시네마테크KOFA를 담당하는 팀에서 일하고 있어, 「영화천국」을 통해 2008년부터의 사업을 돌아보며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자료원')의 새로운 기관지 「아카이브 프리즘」을 위해 향후 시네마테크KOFA의 방향을 생각해보는 게 그리 어려울지 몰랐다. 아마도 팀의 성격상 외화되는 사업을 쉼 없이 진행해야 해서 그동안 우리가 정말 잘하고 있는지, 관객들이 우리 극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향상시켜야 하는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나보다.
필름 아카이브라는 정체성에 어울리는 시네마테크를 희망하며 2008년 5월 개관
「영화천국」 2호 (2008) ‘개관영화제 이모저모’ 기사를 보니 당시 ‘영화 보물창고가 열린다’라는 슬로건 하에 5월 9일부터 25일까지 17일에 걸쳐 개관영화제가 열렸었다. 근 반년간 준비한 개관영화제였는데, 최대 화제작은 역시 <청춘의 십자로> 공연이었다. 현재까지도 국내외에서 공연되고 있는 <청춘의 십자로>는 지금은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일하고 있는 모은영 프로그래머의 열정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용 감독이 총연출을 맡았고, 조희봉 배우의 열연, 4인조 악단의 멋들어진 음악으로 관객들뿐만 아니라 이제는 돌아가셔서 뵐 수 없는 구봉서 선생마저 “오랜만에 보는 변사공연에 감회가 새로웠으며, 변사 역할을 맡은 친구가 곧잘 한다”라는 칭찬을 들은 공연이었다. 또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해바라기 가족>(박성복, 1961/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 <동굴 속의 애욕>(강범구, 1964), <불나비>(조해원, 1965/아름다운 김지미 선생의 팜므 파탈 연기!)와 같은 한국영화를 상영했고, 2007년 FIAF(국제영상자료원연맹) 도쿄 총회에서 당시 조선희 원장께서 직접 섭외하신 뮌헨영화박물관 슈테판 드뢰슬러 관장의 ‘3D로 보는 세계영화사’ 강연도 진행되었다. 폐막식에서는 발굴되어 첫 공개한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신동헌, 1967)이 신동헌 감독과 스탭들의 무대인사와 함께 상영되어 “관객은 ‘최초’에 설레고, 현재와 통하는 정서에 감탄”하였다.
<2010년,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포스터>
2010년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과 <임권택 감독 전작전>으로 300석 극장 매진 행렬
10여 년 동안 시네마테크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때만큼 300석 극장이 연일 매진된 적이 없었다. 영화사에 너무나 큰 이름인 ‘구로사와 아키라’와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마음껏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천국」 15호(2010)의 ‘구로사와 아키라, 당신이 있어 행복했습니다!’와 ‘임권택 감독과 함께 떠나는 53일간의 영화여행!’을 보면 당시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예상 밖의 흥행으로 정신없는 직원들 틈에서, 관람객이 거의 없던 초창기부터 꾸준히 시네마테크KOFA를 애용하던 단골 고객이 처음 방문하는 관람객들의 자리를 안내하고 있었던 것. 자료원 시네마테크 직원들은 7월 내내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출근, 행사진행과 준비로 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관람객 통계가 말해주듯,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보람 있는 7월을 보냈다”라고 하는데, 특별전 기간 동안 1만 5,200명이 올지, 16회나 매진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일본의 대배우 나카다이 다쓰야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시 흥분해서 나카다이 다쓰야 선생의 사인을 받아 페이스 북에 올리는 등 본연의 임무보다 팬으로서 의무에 급급했음!) 임권택 감독의 전작전도 최초로 자료원이 보존하고 있던 모든 영화가 (당시에는 70편) 상영되었고 <만다라>(1981)의 디지털 복원버전이 공개되었다. 무려 53일 동안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감독님이 자주 본인의 영화를 보러 오셔서 팀원들이 몸 둘 바를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거장을 뵐 수 있었다니, 정말 운이 좋았던 시기였다.
<2016년,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한국영화 프로그램>
한 해의 한국영화를 돌아보는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한국영화’를 시작하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평론가이자 감독인 정성일 선생의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정 선생과 이야기를나누던 도중, 영화잡지에서 그해의 텐 베스트를 많이선정하지만 평론가들은 이런 경우 여러모로 고려하는게 많으니 11명의 영화평론가나 한국영화를 담당하고있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그 해 한국영화 텐베스트를 선정하게 하고, 이를 리스트만 공개하면 매우 객관적인 리스트가 나올 것이고, 또 이 자료들을지속적으로 수집, 보존하면 10년 뒤 100편의 주요한한국영화 자료가 모일 터이니 이거야 말로 자료원이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매우 흥미로운제안이어서 2011년부터 등급 받고 극장에서 상영된 장편한국영화를 대상으로 11명의 평론가와 프로그래머가10편의 영화를 선정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한국영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는데, ‘시네마테크KOFA가주목한 한국영화’는 향후 10년간 지속적으로 진행될예정이다. 10년 후 시네마테크KOFA가 주목한, 그리고현 세대 비평가와 프로그래머, 언론인들이 뽑은 100편의한국영화는 동시대 한국영화의 현주소이며, 발자취가 될 것이다.”라는 기사처럼 올해 10편의 한국영화를 선정하면 100여 편의 주목해야하는 동시대 한국영화 리스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참고로 2010년 주목한 영화는 <경계도시2>(홍형숙), <계몽영화>(박동훈),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장철수), <부당거래>(류승완), <빗자루 금붕어 되다>(김동주), <여행>(배창호), <옥희와 영화>(홍상수), <이끼>(강우석), <시>(이창동), <하하하>(홍상수), <페어러브>(신연식)이었다.
자료원 개관 40주년과 파주 보존센터 개관을 기념하다
2014년은 자료원에게 특별한 한 해였다. 설립된 지 4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KOFA는 5월이면 열리는 ‘발굴, 복원 그리고 초기영화로의 초대’ 프로그램을 확장해 ‘개관 40주년 기념 영화제’를 준비했다. 개막공연은 최초의 한·홍 합작 영화 <이국정원>(전창근, 도광계, 와카스기 미츠오)으로 배우들의 라이브 더빙 연기와 5인조 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재해석한 작품이었다. <이국정원>은 발굴 당시 이미지 훼손이 심하고 사운드 필름도 소실되어 상영이 불가능한 영화였다. <삼거리극장>의 전계수 감독이 총연출을 맡았고, 가장 인기를 끈 것은 음향효과 실연으로 무대에서 배우가 걸으면 발자국 소리를 내고 문이 닫히면 문소리를 내는 음향 실황이었다. 또한 에이젠슈타인 감독이 “미래의 영화가 입체영화가 될 것이라는 점에 의혹을 갖는 것은 미래 자체에 의혹을 품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진한 생각이다”라고 단언한 3D 영화 <로빈슨 크루소>(알렉산더 안드리에브스키, 1947), <밀랍의 집>(안드레 드 로스, 1947>, <다이얼 M을 돌려라>(알프레드 히치콕, 1954>, <U2 3D>(캐서린 오웬, 마크 팰링톤, 2007) 등 8편이 상영되어 무성영화에서부터 3D 영화까지 다양한 포맷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2016년 파주 보존센터를 개관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함포템킨>(에이젠슈타인, 1925), <젊은 링컨>(존 포드, 1939), <깊은 잠>(하워드 혹스, 1946) 등 “책으로 읽은 영화, 스크린으로” 만나는 섹션과 1990년대 초반 우루과이에서 질산염 프린트가 발굴되어 1993년과 2014년 대만전영자료관에서 복원한 완령옥과 김염 주연의 <사랑과 의무>(부완창, 1931), 2014년 오스트리아 필름 아카이브에서 보유한 질산염 프린트와 미국 의회도서관의 프린트로 2K 디지털 복원해 2015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바리에테>(이월드 앤드리 듀폰트, 1925) 등 무성영화가 라이브 피아노 연주로 상영되었다.
<2017년, 매혹의 배우, 김지미 특별전>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감독, 배우들의 회고전, 그(녀)들을 돌아보다
서초동 시절부터 우리 극장에서는 다른 시네마테크나 영화제에서 볼 수 없는 많은 한국고전영화들이 상영되었다. 특히 한국영화사에서 주요한 영화감독과 배우들의 회고전이 1년에 1~2회 개최되어 이들을 추모하거나, 이들의 영화를 보고 직접 만나 영화인생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해왔다. <이두용 감독 특별전-멜로, 액션, 토속 그리고 시대>(2012.10~11), <영화같은 삶, 최은희를 돌아보다>(2013. 6), <영화의 시간: 이만희 감독 전작전>(2015. 5), <영원한 영화청년, 장르영화의 장인 김기덕> 감독전 (2016. 4), <영화배우 윤정희 특별전: 스크린, ‘윤정희’라는 색채로 물들다> (2016. 9), <매혹의 배우, 김지미>(2017. 6) 그리고 김기영 감독 추모 20년으로 열린 <시대를 앞서간 시네 아스트 김기영>(2018. 7) 등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분들의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이미 최은희 선생, 김기덕 감독은 고인이 되어 더 이상 뵐 수가 없게 되었다. 김기영 감독의 추모전의 「영화천국」 제60호의 ‘시대를 앞서간 시네아스트 김기영’ 글처럼 “비록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영화상영이 전부일지 몰라도, 그(들)의 영화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가(그들이) 살았던 세계와 시대, 그가(그들이) 창조해낸 세계를 돌아보는 것”일 것이다.
<2016년, 윤정희 특별전에 참석한 배우 윤정희, 피아니스트 백건우>
극장의 현실과 ‘영화의 죽음’, 지금 이곳에서?
영화는 더 이상 극장에서만 보는 게 아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VHS나 DVD로 영화를 보았지만 (그러나 그때도 희귀 타이틀은 VHS로 국내에서 쉽게 볼 수가 없어서 해외에 나갈 경우 잔뜩 사들고 오곤 했다), 요즘은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도 온라인 플랫폼에서 쉽게 볼 수가 있다. 수많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많은 영화들을 볼 수 있어서 영화의 흐름을 도저히 따라 갈수가 없을 정도이다. 시네마테크KOFA의 연령층은 예전부터 다른 극장들에 비해 높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한국고전영화를 상영하면 젊은 관객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300석 극장의 좌석이 더 이상 꽉 차지 않아서 150석 극장의 상영회수가 많아졌다. 그래도 무료라는 이점 때문에 타 예술영화극장보다 좌석점유율이 높지만 정말로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싶어서 많은 예산을 들여 새로운 영화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참담할 때가 많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시네마’는 이제 ‘죽어’가는가? 그리고 필름 영사시대는 끝이 났는가? 이제는 영화를 본다는 게 더 이상 ‘극장구경’이란 용어로 사용될 수 없는 건가? 극장 환경 개선을 위해 스크린과 좌석을 교체하고 5시간의 주차 서비스를 제공하고 각종 굿즈로 관객을 현혹하려 들지만, 정말 이런 노력들이 유효한가? 이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정답을 모르겠다. 10여 년의 시간을 돌아보는 것도 결코 쉽지 않지만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단연코 향후에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을 터이고, 흥미로운 영화들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몇 번 보아도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고전 영화가 있다). 한두 명이라도 관객이 있으면 영사기를 돌리는 게 우리 시네마테크KOFA의 일이고 그게 가능한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2019년, 인정사정볼것없다 4K 복원기념 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