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사업을 돌이켜보면, 1974년 1월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자료원’)의 전신인 재단법인 한국필름보관소가 창립된 이후, 1979년 영화진흥공사 내에 최초로 목재선반의 필름보존고가 처음 생기고, 1990년 9월 서초동 예술의 전당 내 예술자료관에 안착하기까지 보존사업을 진행할만한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어있지 않았다. 서초동 시절에 비슷한 설비는 갖추고 있었지만, 그 이외에는 이렇다 할 운영 자원(인력, 예산 등)과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이 사업의 필요성조차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국내 아카이브 사업이 어려웠던 이유는 영화자료가 국민들에게 어떠한 기록 가치물이나 정보,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미래 콘텐츠로 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국민적인 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 원은 이런 점들을 영화인들과 영상인들, 이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는 학도들, 나아가 국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영화천국」이라는 정보지를 통해 전달했다.이제 곧 공개될 아카이브 전문정보지인 「아카이브 프리즘」을 통해 더 많은 정보와 고민들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중 그중 잘 부각되지 못했던 ‘보존’ 사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소개된 주요 내용들과 함께 향후 진행 방향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1994년을 전후로 대규모 종합유선케이블 TV사업을 위한 필름 콘텐츠의 활용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자연스레, 보유 영화필름 등에 대한 입고와 출고가 잦아졌고, 이로 인해 품질관리 및 개선 등 보존 역량 마련에 극심한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99년 대규모 공공근로지원사업을 통한 영화자료 디지털 콘텐츠화 사업(지식정보화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내·외부적으로 더 큰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시기에 1996년 7월부터 시행된 ‘영화필름 등의 제출제도’가 안착되기 시작했고, 또 내부 자료관리시스템의 활용도를 높이고 자료정보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기 국내 지상파 방송사를 거점으로 영상아카이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했고, 이후에는 공공기관들까지 확대되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각종 아카이브 사업들을 착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각기 보유한 자료들을 콘텐츠 자산으로 만드는 데만 급급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고,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 원의 각종 사업들은 2000년대 중반 이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자료 ‘보존’사업 또한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게 된다.
영화필름이 근대문화재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문화재보호법(제10조·제47조 및 제53조)이 개정되면서부터다. 우리 원이 보유한 <미몽>(1936) 등 영화필름 7편이 등록문화재로 지정(2007.9.)되면서 문화재로 보존관리를 받게 되었다(이후 2012년 <청춘의 십자로>(1934) 1편 추가 지정). 당시 「영화천국」에서는 ‘낡은 영화필름에서 문화유산으로’(「영화천국」 Vol.3, 2008.08.26.) 및 ‘영화도 엄연한 문화재다!’(「영화천국」 Vol.11, 2009.12.28.)라는 제목으로 영화필름이 문화재로 등록되기까지의 과정과 이후 보존관리 방안들을 소개했다. 비로소 국내에서 영화필름이 하나의 문화소비재에만 그치지 않고, 문화유산 가치기록물로 평가를 받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들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활용본 제작 과정을 거쳐 활용과 보존본으로 구분해서 현재 파주보존센터의 5℃ 저온 보존고 특정실에서 별도의 등록문화재 관리지침에 따라 연 2회 점검관리(매 5년마다 정밀점검)를 받으며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 외의 영화필름은 이미 2000년대 초에 보유 영화필름에 대한 보존관리 기준을 마련(제출필름 5년 주기 점검, 그 외의 필름 10년 주기 점검 등)해 현재까지 매년 2천 여벌의 필름 상태를 점검하면서, 지속적으로 세부 관리를 체계화하고, 고도화해왔다. 열화 등 자연 마멸이 진행되는 영화필름의 특성상 필름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수축도, 색농도 변화 등)를 기록하고 있다. 필름 등 자료 보존처리 및 관리의 지속적인 관심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영화천국」 제15호와 제53호에서 간략하게 소개했다. 하지만, 보다 상세한 보존관리방안과 미래형 보존관리 기술을 연구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여러 방법을 통해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비디오 매체 보존>
영화필름 등의 영상매체와 더불어 영화제작, 기획, 배급, 홍보 등의 기록들을 살펴볼 수 있는 필름 외 자료(시나리오, 포스터, 스틸, 비디오물, 전단 등 비(非)필름자료)의 보존사업은 2000년대 후반까지도 내부적 자원 안배와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중점사업화하기 어려웠다. 부가영상매체 및 지류성(시나리오, 포스터, 스틸, 전단, 문헌자료 등) 자료들이 그것들이며, 이것들은 현재 80만 여점이 넘는 자료가 정리 및 보존되고 있고,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영화필름과 달리, 이들 비필름자료들은 국가기록원, 국립현대미술관 등 타 기록보존기관에서도 유사 재질에 따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보존기술 연구에 노력을 하고 있다. 오래전 「영화천국」 제14호, 제24호, 제28호 등에서 몇 가지 소개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영화필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다 심도 있는 보존기술연구에 대해서는 소개가 미흡했다. 이후 「영화천국」 제34호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임자없는 나룻배>(이규환, 1932) 포스터를 외부 기관과의 협력사업으로 복원한 것은 대표적인 성과이며, 이후 2015년 12월 준공된 파주보존센터를 기반으로 자체 보존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많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미국 등은 1990년대 초중반에 영화를 제작할 때 생성된 디지털 영상자료에 대해 일찌감치 아카이빙 방안을 고민해 왔다. 반면에, 국내 영화산업계에서는 2003년 즈음부터 디지털영상자료들이 본격적으로 생성되었다. 우리 원은 2005년 12월 디지털시네마 등의 디지털 아카이빙 기본 계획을 수립했고, 2008년에 기반을 구축했으며, 2009년에 본격적으로 디지털시네마 아카이빙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국내 영화계는 이때까지만 해도 디지털시네마 아카이빙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정립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극장은 기존에 사용하던 필름영사기를 디지털시네마 상영시스템으로 전면교체하고 있었고, 일부 사설업체에서는 디지털 시네마 자료의 아카이빙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성과는 단지 단편적인데 그쳐서, 영화계 전반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에 국내 방송산업은 2012년 12월 31일부터 기존의 아날로그에서 전면 디지털방송으로 전환되게 되었다. 그로인해 디지털 영상기술은 더욱 더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고, 영화계 또한 디지털 영상기술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어서, 결국 국내영화는 2013년에 영화필름 제작을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영화계는 2012년 디지털로 생성된 영화의 필름레코딩 보존을 준비하고 있었고, 2019년 현재는 디지털영화의 필름레코딩 보존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도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스틸 자료 보존>
국내 영화산업은 그 특성상 디지털시네마 자료들이 빠르게 소실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더 뒤처지지 않고, 자료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고, 그 결과 우리 원은 현재 약 3,400여 편(약 2PB)의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물론 자료원도 의외로 손이 많이 가고 더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하는 디지털 자료의 문제로 인해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보존방식과 저장매체, 포맷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영상기술은 짧게는 3~6개월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특히 저장매체 등을 획기적으로 개발하지 않는다면, 향후 얼마간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산화가 2-3단계까지 진행된 필름>
21세기 초고화질 영상시대인 요즘 전 세계 콘텐츠 가운데 90%에 달하는 콘텐츠가 영상콘텐츠화 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시대에는 각종 영상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고화질 및 축소화된 영상제작 기술이 1인 미디어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디지털 영상기술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빠르게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최선의 자료 보존 환경 개선과 운영이 필요하다. 또한, 보다 정밀한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해 유관기관과의 정보 교류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FIAF윤리강령에서도 제시하고 있듯이 영화필름은 향후 오리지널 매체로써 존중할 의무를 다해 지속적으로 보존, 관리하되, 보존환경 개선에 필요한 연구조사와 검증작업을 단계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비필름자료를 보존하고, 연구하기 위해 훼손된 자료를 원형으로 복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설비를 도입하는 등 단계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할 예정이다. 디지털시네마 아카이빙은 2020년부터 노후 장비를 교체하는 한편, 새로운 매체에 적합한 미디어자산관리시스템(MAM)을 구축하기 위한 기초 연구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자료보존관리 분야에 AI 기술을 활용해서 최적의 환경을 제어할 수 있고, 온습도, 공기 질 변화에 대한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빅데이터 영향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은 최신 기술 접목은 앞으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영상자료 보존사업들은 곧 공개될 아카이브 전문정보지인 「아카이브 프리즘」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공유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