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헌 일러스트레이터
언젠가 영화 일을 하는 지인이 내게 투덜댔다. 영상자료원 극장에 노인들 좀 안 왔으면 좋겠다고. 매일 시끄럽게 떠들고, 코 골고, 왔다 갔다 한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좀 의아해, 이렇게 답했다. “왜요, 좋잖아요. 그런 북적거리는 게 좋잖아요. 인도에서는 발리우드 영화 틀면, 관객들 춤추고 난리 난다는데요.” 사실, 나는 지인이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를 꺼리는 똑같은 이유로 KOFA가 좋았다.
20대 후반에 뉴욕에 처음 가서 낯설었던 것은 거리에서 노인과 장애인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는 그 낯섦을 통해, 한국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특정 사람들을 배제하고 특정 사람들만 허용해왔는지 느끼게 됐다. 그리고 내가 그 ‘배제’에 질문하지 않고, 그 ‘배제’를 허용한 구성원이었다는 것도.
내가 다니는 공간에서 노인들을 특히 많이 만날 수 있던 곳은 뉴욕현대미술관의 지하 극장이었다. 젊은 시네필, 힙스터들의 극장인 IFC나 필름포럼보다, 뉴욕현대미술관은 좀 더 다양한 계층에게 알려진 곳이기에, 특히 그랬다. 나는 노인 관객들이 영화 중간에 종종 이야기하거나, 자리를 가지고 서로 다투거나, 코를 고는 다른 노인에게 훈수를 두다가 고성을 내며 싸우는 것을 봤다. 물론 노인 관객 대부분은 GV 시간에 멋진 질문을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나는 노인들의 그 소란이 좋았다. 그 소란 속에서 영화를 보면 어딘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는 한국에 돌아온 후 가장 자주 갔던 극장이다. 미국에는 국가의 돈으로 운영되는 영화진흥위원회도, 영상자료원 같은 무료 공간 역시 없기에, 나는 이 공간들에 대해 이전보다 더 감사했다. 그리고 영상자료원이 내게 특별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곳에서 노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사는 내 삶의 동선에서 노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지하철과 병원을 제외하면 영상자료원뿐이다. 처음에는 노인들이 한국고전영화를 틀 때만 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영화를 상영할 때도 많이 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문득 노인이라는 호칭이 왠지 이상한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을 칭하는 적절하고 정확한 표현이 없다.
언젠가 상상했다. 낮 시간에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이 입소문으로 영상자료원이 무료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한여름 인천공항에 모이는 노인들처럼, 홍콩 IFC 백화점 무료 휴게 공간에 모여드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처럼, 영상자료원에 노인들이 모인다. 처음에는 오래된 한국영화를 보러 오고, 그 후에는 유럽의 낯선 감독들의 회고전까지 찾아오게 되는 그 과정을. 노인들에게 영상자료원은 서서히 익숙한 공간이 됐을 것이고, 누군가는 시간을 보내러, 제목도 보지 않고 보러 온, 우연히 보게 된 낯선 나라의 영화에 매료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서서히 좋아하는 특정 감독, 장르, 사조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젊은 시절에 영화에 열정을 가졌던 노년의 시네필이 더 많았을 수도 있다. 여러 경로로 영상자료원을 찾는 노인들은 이 극장을 완성하는 주인공들이다.
언젠가 노인들에게서는 왜 어떤 특유의 냄새가 날까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서는 좋은 향이 나는데, 왜 나이가 들수록 나는 냄새는 견디기 힘든 것일까. 그들의 냄새가 정말로 안 좋은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좋지 않은 냄새라고 인식하는 나의 문제일까. 나는 언젠가 그 냄새가 조금씩 세포가 죽어가고, 굳어지는 냄새 같다고 느꼈다. 생동적인 삶을 사는 노인에게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생생한 무언가가 있었기에. 하지만 우리 사회는 노인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공적인 공간에서 노인들은 모습을 감추고, 그들이 자주 가는 공간은 구석진 경계의 공간이고, 종종 조롱의 대상이자, 기피하는 공간이 된다.
나는, 뉴욕현대미술관 지하 극장에서 느꼈던 그 묘한 편안함을 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에서도 느꼈다. 왜였을까 생각해보면, 어떤 ‘공정한 열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아이나 노인 계층에 대해서 잔인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연령뿐만 아니라, 성 정체성이 다른 구성원, 장애가 있는 구성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노년이, 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반드시 사회적 약자가 된다. 나는 앞으로의 내가 이 사회의 많은 공간에서 허용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의 나는 좀 더 많은 공간에, 다양한 사람이 허락되는 삶을 꿈꾼다. 어떠한 공간에, 여러 연령대가, 다양한 성 정체성의 사람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있다는 것은 오로지 20~30대의 이성애자, 비장애인 관객이 있는 공간과는 다른 역동을 준다. 거기에는 시끄러운 소리와 다른 세대, 정체성이 섞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긴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질적이고 ‘고상하지 못한’ 불균질성이 우리 삶을 아름답고 다채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영상자료원의 지하 극장, 그 공간 안에서 그들과 내가, 우리가 된다. 그리고 영화라는 또 다른 세계로 함께 여행을 한다. 그리고 극장 밖에 나올 때쯤, 우리의 다름은 아주 조금쯤 희석된다. 그런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