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 <룩 앳 미>
내가 다니는 출판사 편집부에서 2년 전쯤 신입사원을 공개 채용했다. 그것도 세 명이나 뽑았다. 우리 출판사로서는 10년 만의 일이었다. 단행본 출판사들은 신입사원보다는 알음알음으로 경력자 소개받는 것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조직의 규모가 작다 보니 대기업처럼 신입직원 훈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만에 구경하는 신입사원이라니! 우리는 약간 들떴다. 3개월간의 편집자 수습기간 동안 어떤 방식으로 교육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영화를 좋아하는 한 선배가 <지니어스 Genius>(마이클 그랜디지, 2016) 이야기를 꺼냈다.
“나 아직 보진 못했는데, 얼마 전 개봉했다는 <지니어스>를 함께 보고 편집자의 일과 신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절대 안 됩니다. 나, 이 영화 반댈세~!”
나는 무조건 반대표를 던졌다. 왜냐하면 우연치 않게도 바로 그 며칠 전에 <지니어스>를 보며 시종일관 주인공 주드 로의 예술가병에 시니컬한 웃음을 짓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그즈음 많은 편집자가 <지니어스> 개봉 소식에 주목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길들이고 스콧 피츠제럴드를 조력한 최고의 편집자 맥스 퍼킨스, 야수 같은 천재 작가 토머스 울프를 만나다!”
광고 카피만으로도 문학에 관심 있는 편집자라면 흥미가 가는 것은 당연지사. 시대는 다르지만, 천재 예술가를 발굴하고 성공시킨 편집자의 이야기 속에는 대단한 노하우까진 아니어도 같은 직업인으로서의 애환과 공감의 포인트가 녹아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지니어스> 속의 맥스 퍼킨스는 그냥 뛰어난 편집자가 아니라 인내와 돌봄의 아이콘이었다. 늘 예민한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술혼을 불살라야 하는 천재 작가의 기행과 불운을 물심양면으로 막아주고 지원해주는, 가족보다 더한 애정과 아량을 갖춘 친구이자 보호자.
아마 내가 편집자가 아니었더라면, 한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킨 맥스 퍼킨스의 족적에 감탄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당대의 문호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으리라. 그러나 이제 문학의 시대는 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전통적인 편집자의 역할에 대한 이의 제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는 ‘선생님’이라는 정체불명의 호칭이 있다. 사회에서 만났는데 뭐라고 호칭하기가 애매할 때, 혹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들이 작가들을 호칭할 때 쓰는 표현. 선생님이라는 정의는 가르침을 주는 상대이기 때문에 그 표현 자체에 상하의 구분이 녹아 있는 게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작가와 문인들을 예우하는 문화가 있어서 편집자들은 출판계에 입사하면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왔다. 지금은 훨씬 사용 빈도가 적지만, 호칭을 떠나서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성에 대한 불편함과 고단함이 아직 남아 있다. 내가 어릴 적 선배들에게 배운 편집자의 정의를 요즘 세대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주야장천 작가가 부르면 언제 어디든 뛰어가고, 헌신하고, 작가의 심리 상태까지 예민하게 체크하고 케어하는, 나아가 친구처럼 상담까지 해주는 편집자. 직업인으로서의 편집자, 성공하는 편집자는 작가와의 공감과 연대로 똘똘 뭉쳐야 한다는 가치관이 뿌리 깊다. 거기에 부정할 수만은 없다. 선택의 문제이고 성공의 문제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나를 희생하기보다 나의 안전과 행복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 건강한 사회윤리로 인식되고 있다. 동등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관계. 상생하고 서로 협조하는 관계. 예술과 권력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삶을 침범하지 않는 관계. 이것이 젊은 편집자들이, 아니 지금 편집자들이 지향하는 관계인 것 같다.
편집자가 나오는 영화를 찾다가 2004년 개봉한 프랑스 아녜스 자우이 감독의 <룩 앳 미 Comme une image>가 생각났다. 다양한 인물 사이에서 중층적으로 맺어진 권력관계와 거기서 비롯된 모순과 비의를 예리하게 묘파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젊은 작가의 야심 있는 아내였는데, 자신의 남편을 데뷔 때부터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온 편집자를 배신하고 돈 많고 힘 있는 편집자에게 돌아서는 장면이 나온다. 관계는 그런 것이다. 개인의 선택이고, 그 안에는 권력과 돈이 중심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를 위해 헌신하는 편집자의 초상을 이상화하는 영화를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선택은 결국 내가 하는 것이다.
by.한수미(위즈덤하우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