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 홈스의 서울 여행(travelogue)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100년 전 여행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존재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한국영화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100여 년 전 외국인이 서울을 여행하며 그 풍경을 기록한 최초의 여행기(travelogue)가 있다. 중년 남성이 카메라를 보며 어색한 듯 웃음을 짓고 길거리 행인들이 두려움 혹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4분 남짓한 길이의 흑백 무성영화 필름. TV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하고 우리 문화를 접하는 모습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이런 영화가 있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까?
영화 기계가 발명되기 시작한 시기 버튼 홈스는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낯선 이국의 풍경과 문화를 필름에 기록해 그 여행기(travelogue)를 강연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그의 여행기는 뉴욕 카네기 홀, 보스턴 심포니 홀, 시카고 오케스트라 홀 등에서 진행될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대중에게 지속적으로 호응을 받았던 그의 강연은 1908년 「버튼 홈스 강연 Burton Holmes Lectures」1) 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른다. 출간된 총 10권의 책 중 마지막 권에는 그가 1901년 처음 서울을 방문한 기록이 「서울, 한국의 수도 SEOUL, THE CAPITAL OF KOREA」라는 장으로 기술돼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자료를 국내에서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울, 한국의 수도」는 1986년 국내에 처음 소개 된 후2) 책으로 출간3) 되기도 했으나 이와 연관된 필름은 발굴되지 않아 버튼 홈스의 서울 여행기는 만나볼 수 없었다. 그러다 2004년 LA한국문화원으로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이 버튼 홈스의 서울 기록 필름을 기증받게 되면서 비로소 지금과 같이 그의 서울 여행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한국영화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버튼 홈스의 서울 여행기는 중년 남성이 어색한 듯 웃으며 모자를 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그의 첫 서울 나들이 장소였던 동대문 주변의 풍경이 전차 위에서 촬영한 것으로 짐작되는 트래킹 숏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들이 가마를 들고 가거나 인력거를 끄는 모습 등을 촬영한 장면과 이어져 당시 서울의 운송수단을 대조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흥화문(興化門) 앞에서 촬영된 장옷을 쓰고 지나가는 여성들의 모습이나 망건으로 머리를 고정하고 상투를 틀어 올려 갓을 쓰는 남성의 모습4) 이 촬영된 장면은 이방인의 시각에서 우리의 의복 문화가 얼마나 이색적으로 느껴지는지 짐작하게 한다. 또한 그에게 고풍스러운 취미로 보였을 양반들의 활쏘기 시합 장면은 그 장소가 경희궁(慶熙宮) 내 황학정(黃鶴亭)으로 추정돼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국내 ‘먹방’의 원조(?)와도 같은 어린 남매의 식사 장면이나 요즘에 비하자면 ‘아이돌 연습실 안무영상’에 버금가는 권번(券番)에서 기예를 익히는 기생들의 모습이 담긴 장면은 지금 보아도 꽤나 흥미롭게 느껴져 이를 관람하다 보면 약 4분에 달하는 시간이 순삭(!)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버튼 홈스는 「서울, 한국의 수도」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활동사진은 행동이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삶을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부자는 온갖 종류의 도서관을 만들면서 왜 이러한 종류의 전기 도서관은 만들지 않을까? 현재의 삶과 생활양식과 사건을 영상 필름에 기록하는 기관 말이다.”5)
혹시 오늘도 TV 프로그램을 통해 혹은 인터넷을 이용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외국인이 기록한 진부한 형태의 여행기를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영화박물관을 방문해보라. 그곳에 1901년 이방인이 남긴 최초의 서울 여행기가 지금과는 다른 ‘삶과 생활양식 그리고 사건’들을 담아 영사되고 있다.
1 The Burton Holmes Lectures: with Illustrations from Photographs by the Author, Michigan:the Little Preston Co mpany, 1901
2 ‘85년 전 서울 여행기 첫 발견’, 「경향신문」, 1986년 3월 31일
3 「전차표 사셨어요?」(전종숙 옮김, 미완, 1987)는 1914년에 출간된 책을 옮겼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와 상이한 부분이 있다. 1908년판의 번역본은 「1901년 서울을 걷다」(이진석 옮김, 푸른길, 2012)이다.
4 버튼 홈스는 「서울, 한국의 수도」에서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소개하며 각종 모자의 형태와 쓰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5 버튼 홈스 지음, 「1901년 서울을 걷다」, 이진석 옮김, 푸른길, 2012, 214~125쪽
by.허서연(한국영화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