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은 2020년 하계 올림픽신인 여배우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및 2025년 오사카 엑스포 등 국가가 주도하는 국제적인 행사들을 유치했다. 일본 정부가 국제 행사의 일본 유치를 지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경제 활성화에 있다. 규모가 큰 국제 행사의 유치뿐 아니라, 일본의 크고 작은 지역 마쓰리(축제)는 그 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지방 소도시를 방문할 때면, 교토의 기온 마쓰리(7월), 아오모리의 네부타 마쓰리(8월), 고치현의 요사코이 마쓰리(8월) 등 지역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다양한 축제를 경험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 축제와 관련한 논문도 상당수 발표돼 있는데, 대부분 지역의 축제는 지역경제와 연관 지어 해석한다. 즉 지역 자치단체들이 지역의 문화제를 후원하고, 그 행사들이 곧 지역을 홍보하는 역할을 하며, 이는 곧 방문객을 늘리는 경제 효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영화제라는 행사를 개최하는 것 역시 이러한 지역의 경제 활성화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내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후원하는 크고 작은 영화제만 1년간 130여 개가 열린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오사카아시안영화제 역시 오사카시(市)에서 해마다 지원하는 90여 개 문화 관련 이벤트 중 하나다. 필자는 이러한 지역경제 활성화의 일환이라는 취지를 가진 문화행사로서의 오사카아시안영화제가, 과연 어떤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 만나면서 14년간 이어져왔는지, 경제적인 관점만이 아닌 영화제로서의 의미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오사카아시안영화제, 아시아를 향하다
올해 14회를 맞이하는 2019년 오사카아시안영화제는 3월 8일부터 17일까지 오사카시에서 열렸다. 오사카아시안영화제는 매년 다양한 아시아영화를 초청해 오사카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극장과 전시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올해 33회를 맞이하는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에 비해 역사는 아직 짧지만,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면서 개최되고 있다. 오사카아시안영화제는 오사카시와 오사카 상공회의소가 주최하고 일본의 경제산업성, 문화청 및 오사카부(府)에서 후원하는 행사로, 영화기관보다는 지방자치단체의 후원이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제 슬로건 역시 “오사카에서 출발, 일본 전국으로, 그리고 아시아를 향해!”로, 영화보다는 오사카에 초점을 맞춘 행사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제가 비록 지역 문화 축제의 일환으로 개최되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 프로그래밍과 관련 행사들은 오사카의 시민 관객에게 영화를 깊이 있게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제의 본래 취지에 매우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오사카아시안영화제의 프로그래밍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오사카아시안영화제의 프로그램 디렉터는 데루오카 소조(暉峻創三)로, 영화평론가이자 감독이며 시나리오작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특히 홍콩영화 전문가인 데루오카 디렉터는 영화제의 프로그래밍에 적격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영화 <메기>, 최우수작품상 수상
영화제의 각 섹션을 살펴보면, 아시아영화의 경쟁 부문(14편), 특별 초청작 부문(4편), 특집기획 뉴액션! 아시아(7편), 인디포럼 부문(10편), 특집기획 홍콩 특집 2019(6편), 특집기획 타이완 영화 르네상스 2019(7편), 협찬기획(4편) 등 총 54편(개막작과 폐막작 포함)으로 구성돼 있다. 장편영화부터 단편영화까지 다양한 아시아영화가 배치돼 있다. 이 중에서 올해 한국영화는 한가람 감독의 <아워 바디>, 이옥섭 감독의 <메기>(경쟁 부문), 장률 감독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특집기획 부문), 박기용 감독의 <재회>(특집기획 부문)가 초청되었고, 최희서 배우는 한가람 감독과 함께 영화 <아워 바디>의 배우로서, 그리고 단편상 심사위원으로 영화제에 참석했다. 또한 장률 감독도 영화제에 초청되어 직접 관객들을 만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호평을 받은 이옥섭 감독의 <메기>는 오사카아시안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에 한국의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두 편이나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그 중 한 작품이 폐막식에서 최우수작품상까지 수상하는 의미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최초 상영된 홍콩·타이완 영화 불러 모아
필자가 이 영화제에서 특히 관심을 가진 부문은 특집기획 부문이다. 올해 오사카아시안영화제는 홍콩과 타이완 영화가 특별히 기획됐는데, 흥미롭게도 모든 영화가 일본 최초 상영 및 해외 최초 상영 작품이다. 전체 13편의 작품 중 3편이 해외 최초 상영, 나머지 10편이 모두 일본 최초 상영 작품이다. 최근 중국 대륙 자본의 헤게모니로 인해 홍콩의 영화 인력 대부분이 중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상황임에도 홍콩이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홍콩영화를 선정해 일본에 소개하는 프로그래밍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타이완 특집기획 역시, 오랜 산업적 침체 기간을 거친 후 제작되고 있는 타이완의 새로운 영화를 통해 타이완의 젊은 생각들을 아시아의 관객들과 공유하게 해주는 기획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대형 영화제들이 도쿄국제영화제를 중심으로 도쿄에 집중돼 있는 상황을 볼 때, 오사카아시안영화제는 아시아의 다양한 모습을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소개하는, 다양성을 표방하는 하나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이 영화제에 아쉬웠던 점을 언급하자면, 바로 극장이다. 최근 영화 관객은 멀티플렉스의 5.1채널 사운드와 대형 스크린에 익숙해져 있고 그 경험은 영화 관람을 유도하게 하는 원인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오사카아시안영화제의 영화들은 오사카 시내의 극장에서 상영되기는 하지만, 스크린이 매우 작고 사운드 시설이 멀티플렉스에 비해 열악하다. 심지어 전문 영화상영관이 아닌 미술관 내 전시실을 빌려 상영되고 있기도 하다. 협소한 소극장에서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배우와 감독들이 직접 질의응답을 진행하는 행사도 열렸는데,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게스트를 초청하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물론 이것은 전 세계 모든 영화제가 가지고 있는 예산의 한계라는 문제를 언급해야 하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는 하다. 좋은 영화관에서 많은 영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제의 바람과, 적은 예산과 한정된 인력이라는 한계는 늘 갈등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작은 영화제들의 한계는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사카아시안영화제는 아시아 각 지역의 영화인들을 패널로 초청해 아시아영화의 더 많은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심포지엄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간사이 중심으로 아시아영화를 바라보다
오사카아시안영화제는 오사카 시민에게 일본에 소개되지 않은 많은 아시아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영화제다. 이 취지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이 영화제는 오사카 즉 일본의 간사이(關西) 지역의 중심에서 아시아영화를 대중에게 널리 소개하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제는 또한 아시아의 영화인들이 오사카를 방문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더불어 오사카에서 영화제작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미 도쿄(東京), 기후(岐阜)현, 후쿠오카(福岡), 홋카이도(北海道) 등 아시아를 주제로 개최되고 있는 영화제가 꽤 많다. 이처럼 영화제의 수가 많아져서 그로 인해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이 증가하고 영화 감상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각 영화제의 네트워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각 영화제의 정보가 공유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더욱 많은 관객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고, 각각의 지역에서 아시아의 새로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문화행사로서의 영화제라 하더라도, 지자체가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후원하고, 영화제 인력들이 함께 영화에 대해 고민하며, 그러한 노력이 관객에게 전달된다면, 지속 가능한 문화행사로서 영화제는 영화인들과 영화 관객을 위한 최고의 행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