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야말로 앉아서 하는 최고의 세계여행
염민아 일러스트레이터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타임머신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겐 ‘앨범’으로, 누군가에겐 ‘동창생’으로, 타임머신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말이다. 영화 <써니>(강형철, 2011)에서 여주인공 나미는 모교를 방문했다가 하교하는 여고생들과 마주친 순간, 자신의 여고 시절로 시간여행을 시작한다. 내 경우엔 종로 거리가 그렇다. 휴일 아침, 상점들이 영업을 시작하기 전의 썰렁한 종로 거리. 졸린 눈을 비비며 정신없이 뛰어가는 여자애가 있다. 모니터 시사에 늦을까 불안한 동시에 이번엔 어떤 영화를 만나게 될까 설렘으로 가득 차 있는 스물두 살의 나다.
시간 배경은 1998년. 지금은 없어진 종로의 시네코아에서 대학생 모니터요원으로 활동하던 때다. 주말마다 미개봉 영화를 보고 간단한 리뷰를 포함해 설문지를 작성했다. 요즘에야 그런 식의 블라인드 시사가 일반화된 듯하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특별한 기회였다. 덕분에 거의 2년 동안 매주 2편씩 영화를 봤다. 아마 내 인생에서 영화를 가장 많이, 가장 열심히 본 시절이었을 거다. 첫 영화 <비밀 Secret>(다키타 요지로, 1999)을 시작으로 일본영화가 유독 많았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일본영화가 막 들어오기 시작하던 때여서 그랬던 것 같다. 유쾌한 에너지로 가득한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Welcome Back, Mr. McDonald>(미타니 코키, 1997)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올리브 나무 사이로 Through the Olive Trees>(1994) 같은 극도로 사실적이면서 아름다운 영화나 에밀 쿠스트리차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Black Cat, White Cat>(1999) 등 마술적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몇몇 영화는 지금도 여전히 내 인생 영화 리스트에 올라 있다. 만약 그때 내가 시네코아에서 그의 영화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쩌면 평생토록 이란이나 유고슬라비아에도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지 모르겠다. 그 외에도 시네코아 모니터 시사를 통해 인도영화, 유럽영화 등 소위 ‘비할리우드 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모니터요원 활동을 하면서 비로소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았다. 나 나름대로 영화를 많이 봤다고 자부했건만, 그때까지 내가 본 영화들은 기껏해야 ‘한국영화 아니면 미국영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시네코아는 내게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영화를 맛보게 해주는 영화 엑스포나 다름없었다. 불이 꺼지고 광고가 끝나면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낯선 세계로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내게는 영화야말로 앉아서 하는 여행이었다. 모니터 시사가 끝나고 나면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종로 뒷골목을 괜히 쏘다니기도 하고, 프랑스문화원 앞을 서성이기도 하면서 2시간 남짓한 여행의 후유증을 애써 달래곤 했다. 앞으로도 그때만큼 영화를 즐겁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강남에 있는 영화사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종로에 가지 않게 됐다. 2004년, 코아아트홀이 폐관했고, 종로에 있는 다른 극장들도 하나둘 멀티플렉스로 간판을 바꿔 단다는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시네코아 너마저! 극장 폐관을 알리는 메일을 보내왔다. 첫사랑의 결혼 소식을 들은 기분이었달까. 그 메일의 엔딩은 이랬다.
영화에 대한 시네코아의 짧은 입맞춤은 끝나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 여러분의 열정만은 오래도록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토토의 기억 속에 알프레도가 영원히 남아있는 것처럼,/ 사라지지만 지워지지 않는 시네코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2, 제3의 시네코아, 코아아트홀이 탄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 시네코아는 사라졌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선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는 누군가의 시네마천국이 계속 탄생하고 있을 것이다.
by.하경림(영화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