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게 살까? 즐겁게 살까? 뭐 어느 쪽이든 영화 없는 삶은 상상하긴 불가능할 것 같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위해 자료원을 찾은 것은 아마도 2004년 즈음, 여전히 서초동 시절인 듯. 홍대 부근에 살던 나는 무던히 서초동이 미웠다. 왜케 멀어, 왜케 멀어! 그러면서도 <마의 계단>을 보고 화들짝, <고려장>을 보고 쿠엑. 그러던 중 접한 상암동 이전 소식. 속으로 쾌재를 부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으리라. 물론 어떤 이들은 땅을 쳤겠지만. 하하하 사요나라~. 공식 재개관 전인 2007년, 우연히 하게 된 아르바이트가 비필름 자료 중 포스터 정리였고, 그 3개월 동안 영화는 많이 못 봤지만, 영화포스터는 실컷 봤다. <집없는 천사>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포스터, 그리고 코만도가 같이 그려진 <코난>의 포스터까지 그리움과 추억과 실소의 종합 선물세트.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나. 아… 이렇게 써도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없겠구나.
아르바이트가 끝나고도 나에게 자료원은 꼴찌부터 일등까지 그리고 지하 1층에서 2층까지 우리 반을 찾는 좋은 학교가 되어주고 있다. 여.전.히. 영화의 향연이 매일, 지하1층 시네마테크KOFA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렇게 한국과 세계의 고전영화와 저주받은 걸작과 독립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와 햇빛을 받으며 커피 한 잔과 담배 한 개비를 곁들여 방금 본 영화를 다시 한 번 음미하고 나면, 발걸음은 절로 2층으로 향한다.
그리고 조용히 사각사각, 타닥타닥 소리가 전해지는 2층의 자료실. 저 사람은 어떤 감독일까, 작가일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동질감과 경쟁심. 괜한 긴장 속에서 몽글몽글 커지는 궁금증들. 은근슬쩍 감상실 쪽에 앉아 괜시리 아무 영화나 틀어놓고, 서가에서 자기 일에 바쁜 사람들을 혼자서 째려본다. 완전 소심하게! 아~ 여기에서도 영화는 만들어지고 있구나. 슬금슬금 다가오는 자극제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료원 근처 거주자들의 소식. 영화쟁이도 보통 관객들도 모두 자료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은근 영화인들이 상암동 주변으로 이사 오고 있다. 수많은 감독들이, 작가들이 근처에 작업실을 차리고, 혹은 영화를 보러 자료를 찾으러 온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당신이 이번 여름에 할 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