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민아 일러스트레이터
미림극장은 신림동 하숙촌, 산동네로 향하는 오르막길 초입 도로변에 있는 동시상영관이었다. 당구장과 고시학원이 있을 법한 저층 상가건물 지하에 들어가면 아주 작은 대기 공간이 있고, 극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약간의 단차를 두고 양쪽으로 수십 개의 좌석이 있는 작은 동네 극장이었다.
영화를 동시상영한다는 게 말이 되나. 멀티플렉스도 아닌데. 정확하게는 두 편의 다른 영화를 교차 상영하는 걸 동시상영이라 했다. 표 하나 사면 두 편을 연속으로 볼 수 있고, 앞의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으면 또 볼 수도 있었다. 세미나를 하거나 집회 같은 데 참석했다가 들어오는 길에 가끔 미림극장에 들렀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과 앞날을 알 수 없는 현실은, 영화관 안에 앉아 있으면 저 멀리 있는 어떤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거리감은 무거운 마음의 짐도 조금은 덜어 주었다.
그날 영화는 (지금 확인해보니 1989년 개봉한) <
전망 좋은 방 A Room with a View>(제임스 아이보리, 1985)이었다. 혹시 야한 영화인가 싶어 표를 샀는데, 시작부터 클래식한 가곡이 흘렀다. 줄리안 샌즈가 하얀 셔츠를 입고 꽉 막힌 영국여인 헬레나 본햄 카터를 꼬시고 있었다. “?” 줄리안 샌즈가 바닥에 남긴 부호가 생각난다. 인생은 “?”이다. 영화는 내가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을 체험하게 해준다. 이탈리아, 저 아름다운 곳.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유혹.
집으로 가는 길이면 미림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작품을 꼭 확인했다. <
욕망의 낮과 밤 A Tame-Tie Me Up Tie Me Down>(페드로 알모도바르, 1990)이라는 영화를 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로 야한 영화일 거라는 기대에 표를 샀다. 야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묘한 영화였다. 정신 나간 캐릭터들에 무방비 상태로 동화됐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인물, 음악, 색채, 그리고 그 이상한 정념.
이제 상영작 목록을 확인할 극장이 더 확대되었다. 하숙촌인 녹두거리, 신림사거리, 봉천사거리와 서울대입구를 잇는 순환선을 타면 극장이 있는 위치의 간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간판에는 현재 상영작과 다음 상영작이 그림으로 그려져 걸려 있었다. 미림극장에서 시작해 신림극장, 영성극장, 봉천극장, 초원극장까지. 동시상영관이던 이들 극장이 나에게는 미림아트홀, 신림시네마, 아트하우스 초원이었다.
사당역 근처 카페에서 세미나를 하고 이수역 근처 사당극장에서<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마틴 스콜세즈, 1976. 국내 개봉 1989)를 보았다. 택시 운전대를 잡고 뉴욕 밤거리를 노려보는 트래비스의 고독한 눈동자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영화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의 나 혼자밖에 없는 어두운 극장이었고 밝은 바깥으로 나오며 나는 다짐했다. “영화를 공부해야겠다”
영화잡지 「로드쇼」의 ‘도시에’라는 코너에서 용어와 영화 족보를 익히고 「로드쇼」 「스크린」 둘을 사서 신작 정보도 꼼꼼히 봤다. 마침 ‘영화공간 1895’라는 곳에서 ‘24시간학교’라는 영화학교를 한다고 해서 그것도 욕심 내 4강좌나 신청해서 들었다. 시내까지 진출해 청계천 풍전극장에서 <
리버 피닉스의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구스 반 산트, 1991)를 보았다. 리버 피닉스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나는 덕후가 되어갔다. 어느덧 4m2 남짓의 자취방은 잡지에서 오려낸 리버 피닉스 사진과 고급진 <
가위손 Edward Scissorhands>(팀 버튼, 1990) 리플릿에서 오려낸 조니 뎁의 사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영화 공부를 하러 유학을 가겠다고 AFKN을 틀어놓고 살고, 「TIME」지의 영화평론을 독해했다. 유학은 못 갔지만 결혼자금을 미리 당겨 어학연수를 갔다 왔고, 그걸 밑천으로 지금까지 영화와 관련된 국제 업무를 하고 있다.
그래, 영화는 나에게 자유를 주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현실에서는 옴짝달싹 못하지만 어두운 극장 안에서는 자유로웠다. 이 세상의 일은 이해할 수 없어도 영화라는 세상은 탐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영화와 함께한 삶에 고마워해야겠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장례식 조사 같구나. 지금도 프로그래밍을 위해 1년에 300편 가까이 영화를 본다. 출장지에서 극장을 오가며 너덧 편씩 보기도 하지만, 스크리너 링크를 통해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나도 바뀌었다. 동공이 확대되고 스크린으로 빨려 들어갈 듯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던 그때의 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