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뿌리 깊은 영화 문화가 있다. 홈무비데이(HMD)가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 그 증거다. HMD는 2003년 시작됐고 매년 10월 셋째 토요일에 지역마다 상영회를 열어 소형영화를 국제적으로 기념한다. AMIA(Association of Moving Image Archivists) 나 FIAF(International Federation of Film Archives) 회원을 포함한 많은 영화 아키비스트와 아카이브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18년에는 23개국의 80여 행사장에서 개최됐으며 일본에서만 15개 행사장이 있어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뿌리 깊은 영화 문화, 홈무비데이
사람들은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개인 영화 또는 다락에서 발견한 베일에 싸인 영상을 HMD 행사장에 가져와 상영하기에 앞서 영화 아키비스트가 전체 영상을 검토하기를 기다린다. 영화 외에도 카메라나 영사기와 같은 영화 관련 장비를 일본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사람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영사기의 소리에 맞춰 스크린에서 살아난 추억을 공유하고 대화 나누기를 즐긴다.
사람들은 1920~30년대에도 깨끗한 영상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디지털 영상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 도시가 얼마나 급격히 변했는지 시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관객이 세 살짜리 소년의 생일파티 영상을 보고 큰 박수를 보낼 때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이 일어나 “저 꼬마가 사실 50년 전 접니다”라고 말할 때는 정말 감동적이다. 우리는 간혹 오래전 사라진 전통 축제나 공공장소에서 흡연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HMD는 단지 노인들의 과거를 회상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젊은 층이 다소 패셔너블한 레코드판이나 카세트테이프를 접하듯 아날로그 영화를 처음 접할 수 있는 관문이기도 하다.
아날로그 영화는 유기적이고 실체가 있어서 직접 만지고 심지어는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아날로그 필름을 존중하고 있어 필름현상소나 필름 아카이브, 장기 상영 영화관 등에서 필름 영사 워크숍도 열리고 직접 연습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고 있다. 도쿄의 극장주인 가토 다다시(加藤忠)는 자발적으로 35mm 영사기를 구조하고 외곽에 위치한 창고에서 160개의 거대한 기계를 보관하고 있다. 필름 영사 기사 간다 마미(神田麻美)는 일본 필름 영사 기사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베테랑 영사 기사들의 구술 역사를 기록해 젊은 세대에게 기술을 전수하도록 하고 있다. 독립영화 감독 모리타 게이코(森田惠子)는 필름 영사기에 관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만들었는데, 최신작 <Projecting Film, Projecting Life>(2018)는 필름 영사 분야에 열정을 가진 일본 전역의 사람들을 인터뷰해 만든 작품이다.
HMD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 문화유산으로서 홈무비의 장기 보존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듯하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사용할 수 있으나 비용이 많이 들고 오래가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화 이후 원본 필름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에는 홈무비 아카이브가 있지만 일본에는 이런 보호 제도가 없어 공공필름 아카이브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약 20만 개의 16mm 필름 릴이 일본의 500여 개 영화 라이브러리에 있지만 버려질 위기에 놓여 있다. 아마추어 영상은 더더욱 많을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계속 자발적인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대작이나 지브리 애니메이션만이 일본의 영화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무명인이 만든 소형영화는 우리 일상생활과 더 가깝고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존재다.
참고
홈 무비 데이(Home Movie Day) www.centerforhomemovies.org
간다 마미, 나의 "오빠들"(Mami Kanda, My "Old Brothers") www.caboosebooks.net/node/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