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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타지 전문가가 본 한국 판타지 영화 : 한국식 판타지와 오컬트의 유행

    최근 들어 한국영화에서 전에 보이지 않던 독특한 소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극과 좀비가 결합된다든지 저승의 모습을 다룬다든지 혹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등장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이전에도 간간이 있었다. 장재현 감독의 <
    검은 사제들>(2015)이나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2016) 등은 한국에서 오컬트나 판타지가 얼마나 흥행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의 흐름은 조금 더 ‘한국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단순히 판타지나 좀비를 끌어다가 한국 정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재한 신비한 것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이제 조명받지 못했던 한국 본연의 오컬트와 판타지가 하나둘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2017, 2018) 시리즈는 한국식 판타지가 얼마나 많은 공감과 독특함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저승 공간과 판관들은 한국식 사후세계를 신비함 가득하게 묘사하고 있다. 실은 저승에 관련된 한국식 판타지 스토리는 우리 삶 근처에 너무나도 많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 내내 등장하는 저승사자를 들 수 있다. 검은 옷과 갓을 쓰고 나타나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불러 그들을 데려가는 저승 공무원, 저승사자. 하지만 원래의 저승사자 모습은 갑옷을 입은 군병에 가까웠다고 한다. 이러한 저승사자를 무서워해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잣밥을 차리곤 했는데 밥 세 그릇, 술 석 잔, 백지 한 권, 명태 세 마리, 짚신 세 켤레, 동전 몇 닢을 채반 위에 올려 초를 켜고 문밖에 두었다. 이는 저승사자에게 죽은 자를 잘 부탁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저승사자의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 「삼국유사」에 등장한다는 사실. 제주도 삼승할망(삼신할매) 전설에서는 생명을 관장하는 두 삼승할망이 싸우다가 결국 한 명은 죽음을 관장하는 저승할망으로 내려간다는 구전도 있다. 이처럼 저승과 이승은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삶과 죽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메시지는 우리나라 구전과 문헌 속 판타지에 매번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허종호 감독의 영화 <물괴>(2018)도 한국식 판타지가 만들어낸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중종실록」에 실린 신비한 이야기 두 줄에서 비롯됐다. 그 내용을 보면 조정에 삽살개 혹은 망아지를 닮은 괴물이 출몰해 큰 소리를 내며 사람에게 달려들었다고. 듣기에 다소 황당하리만큼 이상한 내용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더 많은 이상한 이야기가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삼형제의 이야기라거나(읽다 보면 외계인이 연상되기도 한다) 상상의 동물 기린이 등장한다거나. 문헌에 나오는 괴물은 꽤 구체적이고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읽다 보면 이것이 과연 허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내용도 있다. 다들 알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괴물과 판타지가 존재했다. 1월에 공개되는 드라마 <킹덤>은 조선 시대와 좀비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조선 시대에 웬 좀비?”라고 말하겠지만 조선 중기 성현이 지은 잡록집 「용재총화」에 보면 사람 등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시체가 등장한다. 이 시체는 사람 몸에 꼭 붙어 여러 날 동안 함께하는데 오직 기도만으로 떨쳐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움직이는 시체 얘기는 옛 문헌에 간간이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영화에는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한국식 판타지와 오컬트가 유행하고 있다. 어쩌면 이 흐름은 당분간 이어져 전통적인 요소가 담긴 신비한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소재가 흥행이 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시도와 제작물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신비로운 민족이었고 한국은 다양한 괴물과 신선과 요정이 함께하는 곳이었음을.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마법은 없어도 의미가 있는 주술과 주문이 있었고, 마법사 대신 조용히 도를 닦는 도사들이 곳곳에 숨어 있던 나라였음을. 판타지 민족의 후예들이여. 이제 과거의 기록을 가지고 새로운 기록을 쌓아야 할 순간이다. 
    by.고성배(매거진 「The Kooh」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