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라는 범주 아래 한 해 발표되는 영화는 총 몇 편일까? 이는 한국영상자료원 수집팀 합류 당시 내가 제일 처음으로 받은 질문이다. 2018년 상반기까지 국내 영화과 학생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단편을 출품하는 영화제 사무국에서 근무한 나는 1,000편을 훌쩍 상회하는 단편 출품작 수에 중편과 장편 제작 수로 어림잡은 100편을 더해 1,300편 정도 되지 않을까, 라고 대답했다. 내게 질문을 던진 팀원은 곰곰이 생각하다 1,500편을 웃돌 거란 예상을 내놓았다. 절대 만만치 않은 수치다. 2018년 자료원에서 구축한 독립영화 아카이브 수집편수가 110편이란 정보를 공유한다면 1,500편이란 수치는 더욱 방대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2018년을 마무리하는 동시에 2019년을 맞이하는 서울독립영화제 출품작 수는 장·단편 통틀어 무려 1,244편에 달했다.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방성준, 2018)
<신기록>(허지은·이경호, 2018)
자료원에서 2004년부터 진행된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 사업은 올해로 15년째를 맞았다. 법정 제출이 되지 않은 한국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2015년엔 49편, 2016년엔 66편, 2017년엔 57편을 수집한 독립영화 아카이브 사업은 2018년에 110편의 독립영화를 맞이했다. 앞서 1,500편 대비 110편은 턱없이 적은 수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110편은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새로운 도약과 성장의 물꼬를 트는 상징적인 편수라 할 수 있다. 2010년대에 들어 100편 미만으로 수집 규모가 축소된 독립영화 아카이브로 하여금 다시 양적으로 확장된 외연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양적 규모는 결코 간과할 만한 허울이 아니다. 문화유산으로서 모든 영상자료의 수집, 보존을 목표로 하는 자료원의 존재 의의처럼 독립영화 아카이브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립영화를 수집해야 한다. 편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배경은 이런 이유에서다.
아무리 적지 않은 수라고 해도 연간 제작편수 가운데 110편을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좀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고 도출된 총평으로서 영화제, 영화상 수상작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4차에 걸쳐 구축된 2018년 독립영화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면 당해 발표된 화제작, 수상작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미쟝센 단편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수상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
자유연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경쟁 대상을 수상한 <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방성준, 2018), 청룡영화상 청정원 단편영화상을 거머쥔 <
신기록>(허지은·이경호, 2018)은 단편 극영화 가운데 단연 두드러진 성과다. 한편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각각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과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
공사의 희로애락>(장윤미, 2018)과 <
야광>(임철민, 2018) 등은 젊은 다큐멘터리 작가의 약진을 보여주는 귀한 사례다.
<야광>(임철민, 2018)
<공사의 희노애락>(장윤미, 2018)
물론 좀 더 욕심을 부려 수상작, 경쟁작뿐 아니라 다른 기준과 주제를 적용해 독립영화 아카이브를 꾸리고 싶기도 하다. 이를테면 허지은·이경호를 비롯해 <
나만 없는 집>의 김현정, <
혜영>의 김용삼, <
맥북이면 다 되지요>의 장병기처럼 광주·대구 등 서울 바깥 지역을 거점으로 이뤄지는 영화제작 결과물과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 그 어디에도 오롯이 포섭되지 않는 영상작업의 실천, 주목하거나 기념해야 할 작가의 컬렉션 등 선별 기준의 범위를 확장하면서도 그만큼 구체적인 카테고리를 마련해 독립영화 아카이브 구축에 한결 다양하고 섬세한 관점을 반영하고 싶다. 선별 기준의 확장이 마냥 이상적인 바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 미래가 아닌, 바로 당장 2019년부터 직면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2019년 독립영화 아카이브 목표 수집편수는 200편이다. 벌써 두 배의 규모로 확장됐다.
우선 국내 주요 독립영화제 수상작과 경쟁작을 전반적으로 수집하는 것이 확장된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1차 목표다. 여기에 또 다른 큐레이션을 적용하는 일은 1차 목표를 완수한 다음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독립영화 아카이브가 내년, 내후년에 양적, 질적으로 한층 더 성장하기 위해 큐레이션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규모만큼 관점의 도약이 필요하다. 독립영화 아카이브는 녹록지 않은 여건 가운데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는 창작자에게 보상을 통해 작업을 독려하고 활용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더없이 중요한 사업이다. 독립영화 아카이브의 성장이 동시대 한국 독립영화를 지켜보는 자료원의 사려 깊고도 따뜻한 관점을 대변했으면 한다. 백사장의 모래 속에서 바늘을 찾아야 하는 당혹감을 맞닥뜨리기 전에 더욱 섬세한 기준 아래 수집 대상작의 면면을 고민하는 독립영화 아카이브가 되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