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의 또다른 주인공, 소형영화: 일본 소형영화의 간단한 역사
일본 소형영화의 간단한 역사
디지털 영화가 영화계를 장악하기 전까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라는 것은 움직이는 영상을 뜻했다. 35mm나 70mm 같은 필름 사이즈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홈무비나 아마추어 영화에 사용되던 9.5mm, 16mm, 8mm 같은 ‘소형영화(small gauge films)’ 또한 있었다. 파테-베이비(Pathe-Baby)라고 알려진 9.5mm의 경우 1922년 프랑스에서 파테(Pathe)에 의해 소개되었고, 16mm와 8mm는 각각 1923년과 1932년 미국에서 코닥에 의해 소개되었다. 이러한 소형영화는 1920~40년대 특히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도쿄 베이비 키네마 클럽의 출현
일본에서 처음 보급된 포맷은 파테-베이비로 프랑스에 출시된 때와 비슷한 시기에 수입되었다. 처음에는 어린이 장난감으로 여겨져 백화점에서 핸드 크랭크 프로젝터와 함께 판매되었고, 사람들은 집에서 단편영화 관람을 즐겼다. 1924년 핸드 크랭크 카메라도 수입되자 9.5mm 장비를 주로 취급하는 반노 쇼텐(伴野商店) 또는 주지야(十字屋) 같은 매장이 문을 열었다. 그 당시 영화 관련 기계들은 가격 때문에 주로 부유한 사람들이 사용했다. 16mm도 곧 가정용으로 일본에 수입되었으나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9.5mm가 더 합리적인 관계로 지속적인 인기를 얻었다. 초기에 9.5mm에 열광한 사람들이 결성한 아마추어 그룹 도쿄 베이비 키네마 클럽(東京ベビ?キネマ倶楽部)은 1926년 긴자의 한 백화점 옥상에서 최승희(崔承喜)가 무용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첫 이벤트를 열었다. 주요 아마추어 그룹들은 「파테-시네(Pathe-Cine)」, 「코가타 에이가(Kogata Eiga)」, 그리고 「아마추어 시네마(Amateur Cinema)」 등의 월간 잡지를 발행했고, 장비를 수정하는 방법과 아마추어 영화 시나리오 등을 기재했다. 영화 대회가 개최되어 하토리 시게루(服部茂)와 쓰카모토 가쿠지(塚本閣冶) 같은 아마추어 감독들이 명성을 얻었다. 아마추어들은 필름 현상이나 프레임 바이 프레임 촬영 방법에 관한 기술 연구에 관심이 많았다. 오기노 시게지(荻野茂二)는 자신의 작품에 아마추어 감독들이 사용하던 실험적인 내추럴-컬러 기법 중 하나를 도입해 <An Expression>이라는 컬러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 작품을 포함한 세 작품이 1935년 국제소형영화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소형영화는 홈 엔터테인먼트로서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1922년 첫 작품이 소개된 이후 코미디, 여행기, 애니메이션, 과학 다큐멘터리, 그리고 손으로 컬러를 입힌 버전 등 다수의 9.5mm 작품이 가정용 영화로 제작되었다. 이와 동시에 16mm로 제작된, 학교에서 사용될 교육영화가 소개됐다. 이런 영화는 ‘그라프 에이가(Graph Eiga)’ 혹은 ‘라이브러리(Library)’라고 불렸고 쇼치쿠(Shochiku)나 니카쓰(Nikkatsu) 같은 대형 스튜디오와 함께 35mm 장편영화의 요약된 버전을 축소 프린트로 출시했다. 이 중에는 영화배우가 주연이거나 유명한 감독이 연출한 영화도 있어서 오즈 야스지로(Yasujiro Ozu) 영화 몇 편 또한 소형영화로 출시되었다. 일부는 영사기와 레코드 플레이어를 동기화해 재생하는 ‘레코드 토키(Record Talkie)’ 형식을 띠기도 했는데 대중음악이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노래들이 이 영화의 주요 소재였다. 그라프 에이가는 그 인기가 1935년에 정점에 이르렀지만 중일전쟁과 경제 불황 때문에 불과 몇 년 사이에 인기가 시들해졌다. 전국 아마추어 그룹인 전일본파테시네협회(全日本パテーシネ協会)는 1920년 문을 닫았고, 아마추어 영화는 중단됐다.
8mm 영사기, 소형영화의 새로운 포맷이 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류 소형영화 포맷이 8mm로 옮겨갔고, 1956년 「코가타-에이가」라는 전문 월간 잡지가 발행됐다. 이것이 일본 소형영화를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자료다. 가족여행이나 학교 운동회 촬영 방법을 다룬 많은 글 등으로 보아 아마추어 영화인들은 주로 가정용 영화를 위한 촬영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주관심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성영화를 촬영하고 영사하는 방법 중 하나가 특별 장비를 이용해 오픈 릴 테이프 레코더와 영사기를 동기화한 ‘테이프 토키(Tape Talkie)’라는 것이었는데 이 시스템은 음향기기가 나오기 전까지 사용됐다. 1950년대 극장에서는 시네마스코프(와이드 스크린)가 널리 보급됐기 때문에 일부 아마추어 감독들은 8mm에서도 시네마스코프 장비를 이용해 가로로 긴 와이드 프레임을 즐겨 촬영했다.
슈퍼8mm와 싱글 8의 대중적 인기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주로 흑백필름이 사용됐다. 코다크롬 같은 컬러필름이 1930년부터 있었지만 가격이 두 배였다. 가장 큰 변화는 1965년 코닥의 ‘슈퍼8mm’와 후지필름의 ‘싱글 8’이 출시됐을 때 일어났다. 카메라에 필름을 로딩하는 것이 간단해졌고, 8mm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됐다. 1970년대 이후부터는 자동 로딩 프로젝터나 자동노출 카메라 등과 같은 주요 장비의 작동이 더욱 쉬워졌다. 반면 기술의 발전으로 감색성 컬러필름과 음향이 녹음되는 카메라 등을 제공하게 돼 고가의 다기능 제품이 유행했다. 예를 들어 1975년 출시된 후지카의 ZC-1000은 렌즈 교체가 가능한 싱글 8 카메라였고, 1978년 출시된 엘모의 영사기 GS-1200은 더 긴 릴을 스테레오 사운드와 함께 영사할 수 있었다. 독립영화 감독들과 대학 영화 클럽이 이런 고사양 옵션을 아마추어 장편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데 사용했다.
8mm 필름 관련 장비의 매출은 1972년 최고에 달했고, 1973년부터는 계속해서 감소해왔다. 후지필름은 2012년 싱글 8의 생산을 중단했고, 2013년에는 촬영 및 상영과 관련된 모든 영화필름 생산을 중단했다. 코닥은 여전히 슈퍼 8mm를 생산하고 있고, 2018년 10월에는 한동안 단종됐던 컬러 리버설 필름 생산을 재개했다.
by.이다 사다노부(소형영화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