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평론가가 본 <콰르텟> 오페라의 쇠락, 그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19세기까지 오페라는 ‘인류가 창조한 가장 성공적인 종합예술’로 불렸다. 음악적 요소로는 성악과 기악과 춤이 있고, 드라마로는 소설과 연극, 신화와 역사를 다루며, 미술적 요소인 무대장치와 의상까지 결합된 ‘비싼 공연물’인데도 클래식 음악 중 가장 이해하기 쉬워 많은 관객이 찾는 장르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한때 오페라극장만 900개에 달했을 정도다. 20세기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새로운 과학적 발명이 계속 제작 기법에 반영된 영화는 종합예술의 대표 자리를 오페라로부터 빼앗았고, 오페라를 어렵게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은 더 대중적인 음악과 편안한 내용을 담은 뮤지컬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오페라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쇠락해가는 듯싶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 힘을 잃어가는 오페라 예술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을 담은 영화가 있다.
최고의 배우이자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더스틴 호프만은 75세의 나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만든 <콰르텟 Quartet>(더스틴 호프만, 2012)이 그것이다. ‘콰르텟’이란 음악용어로 사중주 혹은 사중창을 의미하는데, 오페라에서는 베르디의 <리골레토>(1851) 3막에 나오는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 알토의 사중창이 가장 유명하다.
영화는 점잖아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가 깊은 듯 우울함이 내재한 것 같은 테너 출신 레지(톰 코트니), 여자를 몹시 밝히지만 사실은 무척 인간적인 바리톤 출신 윌프(빌리 코놀리),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지만 소녀처럼 순수한 메조소프라노 출신 씨씨(폴린 콜린스)의 일상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한때 이름을 날리며 함께 오페라를 공연하던 성악가들이었지만 이제 모두 은퇴하고 ‘비첨 하우스’라는 늙은 음악가들의 양로원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창 날리던 스타 소프라노 진 호튼(매기 스미스)이 갑자기 새로운 식구로 합류한다. 대부분 진의 입주를 환영하지만 두 사람은 예외다. 호튼보다 훌륭한 소프라노였다고 자부하면서 비첨 하우스를 주름잡고 있는 앤 랭글리, 그리고 젊은 시절 진과 결혼하자마자 헤어진 아픔을 간직한 레지다. 게다가 재정난으로 언제 폐쇄될지 모르는 양로원에 필요한 후원금을 마련하고자 추진 중인 갈라 콘서트에서 ‘리골레토 사중창’을 함께 노래하자는 옛 동료들의 제의를 받은 진은 예전처럼 노래할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단칼에 제의를 거절한다.
영화의 배경으로 설정된 ‘비첨 하우스’는 대부호의 상속자로 20세기 전반의 유명한 영국 지휘자 토마스 비첨의 이름을 따는 등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가상의 공간이다. 왕족의 거처로 사용된 옛 맨션에서 촬영했을 뿐이다. 양로원의 실제 모델은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음악가의 휴식의 집‘이다. 1896년 만년의 베르디가 사재를 털어 건립한 은퇴한 음악가들의 거처인데, 원작자 로널드 하우드는 이 양로원을 다룬 <토스카의 입맞춤 Tosca’s Kiss>(다니엘 슈미트, 1984)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연극을 착상했다고 한다. 일명 ‘베르디의 집(Casa Verdi)’이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베르디 부부의 무덤이 있고, 애초에는 베르디의 인세로, 저작권이 만료된 이후에는 밀라노의 시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드디어 공연이 성사되어 울려 퍼지는 <리골레토> 중 사중창은 명반으로 손꼽히는 리처드 보닝 지휘의 1971년 음반이 사용되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테너), 조운 서덜랜드(소프라노), 셔릴 밀른즈(바리톤), 위게트 투랑고(메조소프라노)의 음성이 담긴 전설적인 녹음이다.
웨일스 출신의 세계적인 명가수 귀네스 존스가 진 호튼의 라이벌 소프라노였던 앤 랭글리로 출연한 것을 비롯해서 영연방 출신의 늙은 음악가들이 단역으로 다수 출연한 점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귀네스 존스를 제외한 대부분은 팬들에게 기억될 일이 더는 없을 평범한 음악가들이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함께 한창 활동할 때의 사진이 곁들여지는 것은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여기에 이 영화의 주제가 있는 것 아닐까? 한때 인류 최고의 창조물로 불린 위대한 예술인 오페라의 쇠락! 그 사라져가는 아름다움과 감동에 대한 안타까움 말이다.
by.유형종(무지크바움 대표, 클래식 음악 및 무용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