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의 중심을 이루는 땅콩 모양의 상설전시관은 한국영화사 1백년의 역사를 조망하는 데 바쳐졌다. 이름하여 ‘한국영화 시간여행’. ‘식민지 시대(1기)’, ‘해방 이후~1960년대(2기)’, ‘1970~80년대(3기)’, ‘1980년대 후반~현재(4기)’의 시기 구분을 바탕으로 영화사적으로 의미 있는 최초의 사건과 시대별 주요 흐름 및 경향을 영화자료, 인물, 유물 등과 함께 살펴본다. 영화포스터를 꺼내볼 수 있는 서랍도 비치되고, 시기별로 마련돼 있는 영화음악 코너에서는 당대의 대표적인 영화음악 10곡 정도를 골라 들을 수 있다. 을 듣고 영화포스터를 펼쳐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벽면에 부착된 80여대의 모니터가 수백편의 영화 동영상을 보여준다.
첫 번째 시기 - 1903-1945
1900년대의 ‘활동사진’ 상영을 알리는 신문광고와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1919) 개봉광고가 전시되고, 최초의 영화잡지 녹성(綠星)(1919)을 터치스크린으로 펼쳐 볼 수 있다. 최초의 극영화 <월하의 맹서>(1923)에서 처음으로 대중과 교감했던 전설의 여배우 이월화와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인 인기변사 우정식, 김영환의 모습도 있다. 나운규의 <아리랑> 영화소설과 올해 자료원이 발굴하여 공개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영화인 <청춘의 십자로>(1934)와 발성영화 초기작 <미몽>(1936)의 영화 장면 속에는 30년대의 풍경이 살아있다.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을 찍었던 바로 그 기종인 1928년산 파르브(Parvo) 카메라가 전시된다. 발성영화시대의 트로이카 문예봉, 김소영, 김신재의 모습을 이후의 여배우들과 비교해보면 미인의 기준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시기 -1945-1972
해방기의 대표작으로 일련의 ‘광복영화’를 견인했고 한형모 등의 주요 영화인들을 배출한 최인규 감독의 <자유만세>(1946)와 해방기 영화가 전시된다. 조선영화건설본부가 제작했던 다큐멘터리 해방뉴스를 통해 어지러웠던 해방 정국을 엿볼 수 있으며 유장산(촬영), 이경순(녹음) 등의 당시 영화계를 증언하는 육성도 들어 있다.
전쟁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국방부 정훈국에서 제작한 한형모 감독의 <정의의 진격>(1951)이 전쟁의 참상을 생생히 전한다. ‘최초의 여성감독과 여성영화인들’ 섹션에는 최초의 여성 편집기사인 김영희, 최초의 여성 스크립터 황려희, 최초의 여성조감독 홍은원과 1955년 <미망인>을 연출한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에서 현재까지의 여성영화인의 계보가 홍은원의 소장앨범 등과 함께 소개된다.
이규환의 <춘향전>(1955)의 성공에 힘입어 시대극이 연이어 만들어 졌고, 시대풍조를 다룬 현대물 <자유부인>(1956)이 크게 흥행하면서 멜로드라마가 양산된 당시 영화의 경향을 자료화면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자유당 시절 정치깡패와 영화흥행업의 밀착관계의 흔적들도 흥미롭다. 자유당 정권의 특혜를 받으며 건립된 수도영화사의 ‘영화공장’ 안양촬영소 섹션에서는 정초식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모습도 볼 수 있다.
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를 예고하듯 신상옥, 김기영, 유현목, 이만희 등이 50년대에 잇따라 데뷔했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 <생명>(1958)과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 영화 <춘향전>(1961)도 제작된다. 1960년대 전반기는 <박서방>(1960, 강대진), <로맨스 빠빠>(1960, 신상옥) 등의 가족멜로드라마로 김승호, 황정순, 김진규가 서민의 위안이 되었고, <청춘교실>(1963, 김수용)을 시작으로 <말띠여대생>(1963, 이형표), <맨발의 청춘>(1964, 김기덕)으로 이어진 청춘영화로 신성일, 엄앵란의 스타커플이 탄생했으며, <연산군>(1962, 신상옥), <황혼의 검객>(1967, 정창화), <내시>(1968, 신상옥) 등 화려한 세트와 의상을 보여주는 대형사극이 한국영화 산업화의 일면을 보여주었다.
한국영화사상 최대의 영화기업이었던 신필름 코너가 마련돼있고, ‘1960년대의 작가’ 섹션은 황금기를 누렸던 1960년대의 감독들을 심도 있게 다룬다.
세 번째 시기 - 1973~1986
이만희 감독이 구속되어 문화계 전반에 충격을 주었던 최초의 반공법 위반 영화 <7인의 여포로>(1965), 음화 제조죄로 기소되었던 <춘몽>(1965, 유현목), 음란죄로 감독이 불구속 기소되었던 <벽 속의 여자> 등을 통해 ‘검열의 시대’를 돌아보고, 국가주도 영화정책의 핵심이었던 영화진흥공사가 직접 제작한 대작영화 <증언>(1973, 임권택),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이만희), 새마을 영화 <아내들의 행진>(1974, 임권택)과 박정희 정권의 ‘성웅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던 <난중일기>(1977)를 통해 국책영화의 면모를 살펴본다.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을 필두로 청년 문화를 대변한 ‘영상시대’가 발간했던 잡지와 하길종 감독의 유품이 전시되고, 70~80년대 주류를 이루었던 장르영화를 살펴본다.
네 번째 시기 - 1987~현재
‘코리언 뉴웨이브’로 명명되는 80년대 시대정신을 공유한 젊은 감독 군의 등장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1988년 <칠수와 만수>의 박광수, <성공시대>의 장선우, <개그맨>의 이명세, 1990년 <남부군>의 정지영 등 젊은 영화인의 등장과 스타감독 이장호와 배창호를 아우르며 그들의 대표작이 소개된다.
80년대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영화운동인 독립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대학 영화단체인 ‘얄라셩’과 최초의 독립영화단체인 ‘서울영상집단’과 김동원 감독의 독립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 장산곶매의 장편극영화 <파업전야>(1990)을 거치며 비제도권 영화운동의 역사가 펼쳐진다.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동원한 <서편제>를 통해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인생을 소장품과 작품을 통해 만나본다.
90년대 중반 단편영화 연출을 거친 신진 감독군은 상업영화 시스템 내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홍상수, 김기덕,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등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일군 감독들을 살펴보고, 1996년 헌법재판소의 영화사전심의 위헌 판결을 중심으로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의 역사를 돌아본다. 비평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웰 메이드 영화’ , <괴물> 등 최근작들의 소품 또한 전시된다.
무성영화극장 원각사(圓覺社)
1902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지어졌던 협률사가 그 전신. 1908년 원각사로 이름이 바뀌고 판소리를 주요 레퍼토리로 한 연극전용관으로 운영되면서 활동사진이 함께 상영되기 시작했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본 따 원형으로 지어졌고 최초의 변사 우정식이 활동했던 ‘초창기 활동사진 관람의 중심’이라 할 수 있으며, 191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한국영화박물관은 원각사를 고증을 거쳐 재현하고 당시의 상영문화 그대로 한국과 외국의 무성영화를 함께 상영한다. 상영프로그램은 현존하는 변사해설로 재구성한 무성영화시대의 명작 <아리랑>(1926)을 비롯하여 <벤허>(1925), <동도>(1920)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