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서울 남부 최대 도축장 옆에 있었다. 버스로 통학하곤 했는데 신호 대기로 멈춰 있으면 옆에 선 트럭에 실린 소들과 툭하면 눈이 마주쳤다. 친구도 별로 없고 공부도 하기 싫은, 있는 듯 없는 듯 교실 한구석을 차지하고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나 하던 그때.
“그때! 주연발이 나타나서…” 나를 홀렸다. 친구들은 주윤발을 늘 주연발이라 불렀다. 어찌 보면 그쪽이 더 직관적인 것 같기도 하다. 항상 주연이고, 총도 늘 (탄창도 갈지 않고) 연발로 쏘아댔으니까.
홍콩 누아르는 영등포에서 보곤 했다.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난 그러기로 했다. 영등포 시장 주변의 수많은 행인. 다소 낡은 건물들과 화려한 카바레 간판들. 간판만 한자로 바꿔 달면 홍콩이랑 별 차이 없을 것 같은 그곳. 영등포에는 극장이 몇 곳 있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연흥극장과 경원극장이다. 큰길을 사이에 둔 채 인근에 붙어 있었지만 어딘지 경원극장이 더 으슥하고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큰길로 다녀라. 교실에서 뒤에 앉지 마라.’ 메인스트림에서 살라는 어르신의 통찰 가득한 말씀을 하나도 듣지 않던 나는 당연히 경원극장을 자주 찾았다. 그곳에서 심해의 인간애를 그린 <어비스 The Abyss>(제임스 카메론, 1989)를 보기보다 심해의 변종 괴물을 다룬 <
레비아탄 Leviathan>(조지 P. 코스마토스, 1988)과 <
디프 식스 Deep Six>(숀 S. 커닝햄, 1988)를 봤다.
생각해보면 그곳에선 유난히 마이너하고 B급 정서 가득한 영화를 많이 상영한 것 같다. 쌍권총 난사와 피칠갑을 즐긴 후 밤 10시쯤 극장을 나서면 낮의 부산함은 오간 데 없이, 거리에 사람이 너무 없었다. 그렇게 갑자기 펼쳐진 황량한 거리 풍경이 참 싫었다. 영화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빨리 집에 가라고 재촉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가끔은 뿌듯하기도 했는데 주윤발, 유덕화가 나오지 않음에도 ‘에라 모르겠다’ 관람한 영화가 너무 재미있을 때였다. 아무 정보 없이 디자인만 보고 산 CD인데 인생의 명곡이 들어 있을 때의 기분이랄까.
생각해보면 살면서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돈이 필요할 땐 돈이 없었고 차가 필요할 땐 차가 없었다. 조금 늦게 생기거나 필요 없을 때 생기곤 했다. 지금은 영화를 많이 보지만 그때는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앞으로도 그때만큼 영화를 열심히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다행히 그때, 주연발이 있었고 경원극장이 있었다.
손민정 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