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작에 참여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 바로 편집의 힘이다. 관객이 극장에서 관람하는 영화의 길이는 2시간 전후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몇십 배 더 많은 분량을 촬영한다. 감독은 더 좋은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또는 극적인 장면 전환을 위해 똑같은 내용을 다양한 앵글과 사이즈로 여러 번 촬영한다. 그리고 촬영된 영상 중 가장 적절한 부분을 선택해 다시 연결하고 다듬는 과정을 편집이라고 한다.
영화는 편집실에서 만들어진다
편집은 일반적으로 후반 작업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촬영과 동시에 시작된다. 촬영한 분량과 동시녹음한 사운드, 모든 숏의 내용과 상태를 기록한 스크립트가 거의 매일 편집실에 도착한다. 편집자는 도착한 순서대로 각각의 장면을 편집한다. 그리고 촬영이 종료되면 영화 전체가 연결된 1차 편집본을 완성한다. 감독이 직접 편집하지 않는데 이는 촬영본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감독은 영화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알고 있었고, 촬영 현장을 긴 시간 지휘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진행에 모순이 있어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혹은 과다한 경우에도 그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다. 설사 자각한다고 해도 촬영 현장에서 축적된 기억 때문에 영화에서 꼭 필요한 장면과 삭제해도 무방한 장면을 결정하기 쉽지 않다. 편집자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정리한 1차 편집본을 바탕으로 편집자와 감독은 함께 수정 작업을 해나간다. 모든 장면을 논의하고 전체 영화의 흐름을 다듬는다. 이렇게 감독과 협업해 완성한 편집본을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업영화 산업구조에서 감독이 최종 편집권을 갖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일반적으로는 제작자, 투자자, 홍보팀 등 영화 판매 전략을 고려한 의견이 최종 편집본에 반영되고, 이것이 극장에서 상영된다.
보이지 않는 컷, 연속편집 전략
인간의 눈은 매우 예민하다.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빠르게 인식하고 움직이는 물체 등 시각적 변동 요인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발달된 능력이다. 그렇게 보면 몇 초 단위로 끊어지는 영화의 숏이야말로 관객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정신없게 만들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실제로는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다른 숏으로 넘어가는 컷(cut)을 인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왜일까?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움직이는 영상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야기 전달 매체로서 영화의 가능성을 발전시키던 사람들은 효과적인 숏의 연결이 이야기의 진행을 훨씬 흥미롭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인물의 행위나 표정을 얼마나 길게 보여주는지, 어떤 사이즈로 보여주는지, 누구의 시점을 반영해서 보여주는지에 따라 관객의 감정을 더욱 강력하게 제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움직이던 이미지가 갑자기 단절되고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바뀌었을 때 관객이 받는 시각적 충격, 즉 커팅에 대한 자각을 어떻게 완화시키느냐는 것이었다. 또한 커팅은 그 자체로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단절을 가져오는데, 이렇게 인위적으로 해체하고 재조합한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려면 어떻게 숏을 연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뒤따랐다. 그리하여 무성영화 시절부터 유성영화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숏의 연결을 자각하지 못하면서도 영화 속 시간과 공간, 이야기와 감정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전략이 구축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지배적인 편집 방식인 연속편집(continuity editing) 기법이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대화하는 두 사람을 보여주는 장면을 가정하자. 이때 두 인물 사이에 가상의 선을 설정하고 카메라가 그 선을 넘어가지 않으면서 촬영한다. 그러면 왼쪽에 앉은 사람은 항상 오른쪽으로 바라보고, 오른쪽에 앉은 사람은 항상 왼쪽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방향성이 관객에게 한번 인식되고 나면, 그 후는 화면에 한 명의 얼굴만 보여도, 테이블 위에 올린 손만 보여도, 누구를 보고 이야기하는지, 누구의 손인지 자동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180도 법칙’이다. 안정적인 공간감을 제공함으로써 관객이 이미지 자체의 변화보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에 흐르는 감정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적 연속성은 ‘시선의 일치’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한 숏에서 인물이 무언가를 바라보면, 다음 숏은 그가 무엇을 보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시점 숏(point of view shot)이라고 하는데, 관객은 그 인물의 시선을 공유하게 되므로 그가 인지한 사실이나 감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앞 숏과 다음 숏의 동작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동작의 일치’는 인간의 예민한 시각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략이 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은 움직이는 피사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건널목에서는 다가오는 자동차의 속도를 예측하면서 언제 건너갈지 결정하고, 무언가 얼굴을 향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움직이는 물체의 궤적에 주목하는 시각적 본능을 편집에 활용해, 연이은 숏에서 인물의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편집하는 것이다. 그러면 관객은 커팅보다 움직이는 행위 자체에 더 주목한다. 가령 공을 차려고 발을 들어 움직이는 축구 선수의 전신을 보여주는 숏과 발이 축구공에 닿는 순간을 보여주는 발 클로즈 숏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누구나 축구 선수가 축구공을 차는 움직임에만 집중하게 된다. 뒤이어 멀리 날아가는 축구공 숏을 연결한다면? 축구 선수의 몸에서 앞으로 쭉 뻗는 발, 드디어 발에 닿는 축구공, 그 순간 멀리 날아가는 축구공까지, 한 번에 쭉 이어지는 에너지의 이동에 관객은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
이때 일련의 숏은 공을 차는 움직임이 가장 자연스럽게, 가장 파워풀하게, 가장 멋지게 보이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연결돼야 한다. 또한 공을 타격하는 순간과 공이 날아가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사운드’ 역시 연속편집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시공간의 압축과 확장
영화 속 시간은 매우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마치 눈앞에서 그 사건이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 시간짜리 영화에서 한 피겨 스케이터의 일생을 따라가기도 하고(<아이, 토냐 I, Tonya>(크레이그 질레스피, 2017)), 암벽 사이에 팔이 짓눌려 고립된 청년이 6일간 벌이는 사투를 그리기도 한다(<
127시간 127 Hours>(대니 보일, 2010)). 편집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동시에 인위적인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물리적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를 일부러 나누어서 촬영하고, 다시 재조합해 주관적인 시간으로 재구성하는 데 있다.
복싱 선수의 빠른 펀치는 순식간에 상대의 얼굴을 가격한다. 그러나 영화 <
분노의 주먹 Raging Bull>(마틴 스코세이지, 1980)에서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연기한 라모타에게 내리꽂는 레이 로빈슨(Sugar Ray Robinson)의 결정적 한 방은 무려 13초가 소요된다. 주먹을 들어 올리기 시작하는 로빈슨을 보여주는 느린 숏, 주먹을 쳐다보는 라모타의 얼굴 숏, 더 높이 주먹을 올리는 로빈슨을 보여주는 느린 숏, 그제야 겨우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라모타의 아내 숏, 순간적으로 내려지는 로빈슨의 글로브 숏, 라모타의 옆얼굴을 강타하는 글로브 숏, 반대편으로 완전히 젖혀진 라모타의 얼굴 숏까지 총 7개 숏으로 하나의 액션을 나누어 촬영하고 다시 편집으로 연결한 것이다. 한때 세계 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쇠락해 라이벌에게 소나기 펀치를 맞고 있는, 그러면서도 결코 다운되지 않고 버티는 주인공의 심리를 관객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확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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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션 The Martian>(리들리 스콧, 2015)에서 맷 데이먼(Matt Damon)이 연기한 마크는 혼자 화성에 낙오되었다가 영화 말미에 가까스로 탈출해 동료들의 우주선에 재탑승한다.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기뻐하는 마크의 모습은 우주에서 본 지구의 숏으로 이어진다. 바로 다음 숏에서 마크는 울창한 나무들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후 장면에서 관객은 그곳이 마크가 강의를 시작하게 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외부 공간임을 알게 된다. 화성 근방에서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고 건강을 회복한 후 미국항공우주국에서 강의하기까지 실제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우주 공간과 미국항공우주국이 얼마나 먼 곳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하지 않은 물리적 시간과 공간은 편집을 통해 과감히 생략하고 압축할 수 있다. 편집을 통해 재창조된 시간과 공간을 처음부터 관객이 이해한 것은 아니다. 시대를 거치며 관객이 수용할 수 있었던 새로운 시도가 편집의 문법으로 축적되었고,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 영상을 본 순간부터 그 문법을 계속해서 무의식적으로 반복 학습하게 된다. 갑자기 클로즈 숏이 나와도 그것이 누구의 총인지, 지금 보는 화면이 누구의 시점인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고 그곳이 어디인지 자연스럽게 파악한다. 편집을 영화의 언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집은 스토리텔링
숏의 연결은 편집의 미시적 측면이다. 거시적측면에서 편집은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시나리오와 똑같이 만들어지는 영화는 지구상에 단 한 편도 없다. 모든 영화는 편집 과정에서 장면들이 삭제되고 재배치된다. 그리고 수정된 위치의 전후 맥락에 따라 장면 사이의 리듬이 조절된다.
영화제작 과정에서 이야기는 세 번 씌어진다. 작가에 의해 시나리오로 완성된 이야기는 감독에 의해 촬영 현장에서 재탄생된다. 글로 표현한 이야기를 이미지와 사운드로 다시 쓴다는 점에서 연출은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텔링이다. 마지막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이 편집실이다. 숏과 장면의 리듬을 통해 이야기 전체를 재구성한다. 관객이 보게 될 이야기가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본질은 편집이고, 편집의 본질은 스토리텔링이다.
오늘날의 영화 편집
아비드(Avid), 파이널 컷 프로(Final Cut Pro), 어도비 프리미어 프로(Adobe Premier Pro) 등 디지털 비선형편집 시스템이 일반화하면서 숏을 연결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필름으로 편집하던 20세기에 비해 엄청나게 수월해졌다. 디지털 편집에서는 마우스 클릭만으로 숏을 교체하고 늘리거나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편집자는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행위에 옮긴다. 편집용 필름으로 편집하던 시절에는 한번 잘라낸 숏을 다시 찾아 연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그 시절 편집자들은 가능한 한 깊이 고민하고 확신이 섰을 때 실행에 옮겼다. 하지만 요즘은 숏을 붙이기 전에 고민하는 시간이 짧고 숏을 붙이고 난 후 확인하고 수정한다. 손쉽게 디졸브(dissolve)나 페이드아웃(fade out)과 같은 화면 효과를 써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일반적인 컷 전환으로 편집 본연의 리듬감을 살리는 기회를 놓칠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대 영화에서는 전반적으로 컷 전환 속도가 빨라졌다. 특히 추격이나 격투 등 액션 장면은 빠른 편집으로 더 강렬한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생겨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는 디지털 편집 시스템으로 짧은 숏을 연결하는 것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편집용 필름으로 편집하던 시절에는 숏과 숏을 테이프로 붙여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너무 짧은 길이의 숏으로 커팅하거나 짧은 숏으로 일련의 편집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디지털 편집 시스템에서는 얼마든지 짧은 숏을 편집할 수 있다. 두 번째 원인은 관객의 달라진 이미지 수용 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움직이는 영상을 보며 자란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이미지를 훨씬 빠르게 파악한다. 또한 인터넷 사용과 멀티태스킹이 일상화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여러 시각 정보를 자신의 관심과 중요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인지하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많은 시각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져도 당황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 취하고, 설사 놓치는 시각 정보가 있어도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젊은 관객을 타깃으로 더 강한 시각적 자극을 추구하는, 매우 빠른 편집 스타일이 한때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자극이란 점점 더 강해지지 않으면 금방 익숙해지고 무뎌진다. 액션영화 혹은 액션 장면도 무조건 빠르게 몰아치는 리듬보다는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을 적절하게 구성해야 관객에게 최상의 몰입감을 줄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편집 작업은 필름 시대보다 수월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편집 과정 전체는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필름에 비해 월등하게 저렴한 디지털 방식 촬영이 보편화하면서 촬영 분량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액션 장면뿐만 아니라 대화 장면도 기본적으로 동시에 두 대 이상의 카메라로 촬영한다. 문제는 엄청나게 늘어난 촬영본이 모두 좋은 편집 소스만은 아니라는 데 있다. 원칙대로라면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해 두 배의 소스를 제공했으니 더 좋은 편집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두 대로 찍는다는 안도감에 숏 구성에 대한 사전 계획이 느슨해지고 오히려 사이즈와 앵글이 모호한 경우도 많다. 게다가 편집 작업 전후에 필요한 디지털 데이터의 각종 변환 과정 때문에 부가 작업 시간이 늘어났다. 또 손쉽게 수정할 수 있게 되면서 최종 편집본을 확정 짓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물론 분명한 장점도 있다. 다양한 편집본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편집본을 직접 시도해볼 수 있다. 단순히 생각만 해보는 것과 실제로 편집해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며, 예상 밖의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영화 <
덩케르크 Dunkirk>(크리스토퍼 놀란, 2017)는 적에게 포위된 채 해변에서 사투를 벌이는 사병 토미의 일주일, 군인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자신의 배를 직접 몰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영국인 도슨의 하루, 얼마 남지 않은 연료로 적의 전투기를 격추시켜야만 하는 파일럿 파리어의 한 시간을 그리고 있다. 여러 명의 주인공, 각기 다른 눈금의 시간대, 종횡으로 뒤섞이는 타임 라인까지! 그야말로 무한대의 색다른 편집본이 가능한 설정이다. 과연 어떤 편집이 최선일까? 실제로 편집자 리 스미스(Lee Smith)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은 수많은 편집본을 만들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예 매주 금요일을 시사하는 날로 정하고 매번 구성이 바뀐 편집본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테스트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적당히 혼란스러움을 경험하면서도 조금씩 이야기의 길을 찾아가고 궁극적으로 절정의 순간 가장 강렬한 감동을 얻기 위해, 어떤 타이밍에 누구의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끊임없이 고민한 것이다. 디지털 편집 시스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앞으로도 영화 편집은 이처럼 새롭고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