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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양·중앙극장과 화양극장

    지난 호 이 칼럼에 강제 등장한 영화 프로듀서가 바로 나다. 어쩌다 보니 지난 호에 이어 연재물이 되었다. 친구와 둘이 땡땡이 치며 보던 영화는 지금 우리 직업의 밑거름이 된걸까. 그러고 보니, 나에게 동네 극장이란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동네 극장에 대한 추억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때까지 7년 동안 두 도시에 걸쳐 이어진다. 한 곳은 이제 창원으로 통합되어 사라진 도시, 진해. 군항제로 유명한 그 도시에는 두 개의 극장이 있었다. 중앙극장과 해양극장. 중앙극장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흔한 이름이고, 해양극장은 진해가 군항제와 해군도시로 유명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바야흐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지던 봄날. 진해의 한 극장에 대한 추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
    강시선생 Mr. Vampire>(류관위, 1985)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시드니 폴락, 1985)에 매혹되는 쪽이었다. 야간자율학습에 이어 수학여행까지 땡땡이친 우리는, 여행을 가지 않은 학생은 도서관에서 자율학습을 해야 한다는 교칙을 알고 나서 다시 땡땡이 대열에 나섰다. 그때 본 영화가 중앙극장에서 상영된 <아웃 오브 아프리카>다. 성인물은 아니었으나 고등학생인 우리가 보기엔 가슴이 두근두근할 만큼 야했다. 머리를 감겨주는 신이 왜 그렇게 에로틱했을까.

    진해에서 본 영화의 추억을 떠올리면, 저절로 고등학교 때의 그 밤하늘이 생각난다. 주로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 집까지 제법 먼 길을 걸어갈 때의 밤하늘은 영화만큼이나 무척 아름다웠다. 당시 진해는 미세먼지도, 도심의 밝은 불빛도 없는, 그야말로 가로등에 비친 벚꽃과 쏟아질 듯 아찔해서 저절로 눈이 감기던 별빛을 품은 도시였다. 거기에, 방금 극장에서 보고 나온 영화의 흥취는 두 여고생에게 달뜬 기분을 안겨줬다. 벚꽃과 별을 품은 밤하늘, 그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넓은 대지와 메릴 스트립의 흐트러진 은빛 머리카락. 까칠하기만 하던 나에게도, 추억은 이렇게 꽤 낭만적인 얼굴로 남아 있다.

    또 다른 도시는 서울, 그중에서도 화양극장이다. 그 많은 서울의 극장들은 다 잊어버렸지만, 화양극장에서 동시상영으로 관람한 영화들은 이상하게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대학 때, 학교는 달랐으나 여전히 붙어 다니던 우리는 서로 며칠씩 자기 학교를 땡땡이(역시 영화는 땡땡이 후 관람이 제맛)치면서 남의 과에서 어울려 놀았다. 당시 친구네 학교 근처에 화양극장이 있었고, 우리는 다섯 시간씩 영화를 함께 봤다.

    남들은 시네마테크나 문화학교서울을 찾아 다니며 시네마키드다운 영화를 찾아봤겠지만, 우리는 주로 할리우드 영화나 당시 유행하던 홍콩영화를 보러 다녔다. 기억이 왜곡된 건지 모르겠으나, 그때를 떠올리면 왠지 다리 하나를 앞 좌석에 쭉 펴고 영화를 보는 그림이 떠오른다. 시끄러운 화양동 거리에 붙어 있던 깜깜한 극장. 우리는 낮에 들어가 밤에 그 극장을 나서곤 했다. 지금의 멀티플렉스처럼 깨끗하지 않았던 건 당연하다. 쾨쾨한 담배 냄새와 더러운 의자, 동네 아저씨들이 숨어서 시간을 보내던 곳. 야한 영화를 상영하면 대흥행을 하던 동시상영관에서 우리는 <마이걸 My Girl>(하워드 지에프, 1991), <천장지구 Days of Tomorrow>(유우명, 1993), <볼륨을 높여라 Pump Up the Volume>(알란 모일, 1990) 등을 함께 봤고, <마이걸>의 예쁜 화면, <천장지구>의 오천련, 이젠 늙어버린 크리스천 슬레이터의 그 앳된 얼굴에 매혹되어 극장을 나서곤 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말도 안되게 즐겁고, 수다스럽고, 나른하고 또 피곤했다. 오늘 하루만 놀자던 우리는 동시상영이 끝나면, 못내 아쉬워하는 연인처럼, 친구의 자취방으로 걸음을 옮겼고, 밤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또다시 수업에 들어가지 않거나, 남의 학교 강의실에서 자연스럽게 친구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봤다. 어쩌면, 밤하늘이 아름답고 고요하던 소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온 우리는 너무 외로워서 그토록 서로를 찾고 영화를 함께 보러 다닌 게 아닐까.

    시끄럽고 거대한 도시에서 나라는 존재가 먼지처럼 사라져간다고 느껴질 때, 나는 말없이 친구의 자취방을 찾고 더럽고 아늑했던 동시상영관으로 숨어들었던 게 아닐까. 물론 그때는 그 극장들이 이렇게 추억이 될 줄 정말 몰랐다.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예쁘고 가여운 청춘의 한 페이지. 10대와 20대, 어리석고 예쁘던 나와 내 친구의 모습이 시네마천국의 잘린 필름을 돌리는 것처럼 아련하게 떠올랐다 사라진다. 동네 극장이라는 추억의 이름으로.

    p.s 1. 너무 아름답게 각색되었다고 욕하지 마라, 친구야. 원래 추억이란 그런 거다.
         2. 지난 호 삽화에 우리는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교복 및 두발 자율화 세대였음을 밝힌다.  

    손민정 일러스트레이터

      by.권정인(영화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