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칼럼니스트가 본 <우동>
지난 3월 초, 다카마쓰행 항공권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거기서 쾌속선으로 25분이면 닿는 예술의 섬, 나오시마 같은 데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우동, 그 탄탄한 근육질의 면이 오로지 관심사였다.
다카마쓰는 일본 열도의 가장 작은 섬 시코쿠, 중에서도 가가와현에 속해 있다. 가가와현의 옛 이름이 ‘사누키 우동’할 때의 그 ‘사누키’이며, 가가와현을 어떤 사람들은 숫제 ‘우동현’이라 부르기도 한다. 100만 명이 거주하는 작은 지역에 우동집이 800여 곳. 다카마쓰는 우동 여행의 시작점이 된다.
<우동 Udon>(모토히로 가쓰유키, 2006)은 사누키를 배경으로 우동을 위해, 우동에 의해 동작하는 영화다. 영화는 우동 제면소 아들 마쓰이 고스케가 ‘꿈은 없고 우동이 있을 뿐인’ 고향을 떠나 뉴욕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하지만 실패했다는 평범한 비극으로 시작된다. 다소 엉성한 과정을 거쳐(굳이 등장하는 곰, 굳이 일어난 사고와 당연한 기적) 주인공인 마쓰이 고스케와 고니시 미나미는 지역 정보지에서 함께 일하게 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우동 기사를 기획해 그 파급력이 전국적인 우동 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려진다. 단지 지역민들의 솔(soul)푸드로 하찮게 허비되던 우동이 매체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고 전국적인 관광 상품이 되는 경쾌하고 코믹한 호흡이다. 적당히 웃기고, 아무튼 즐겁다.
동화적 희망을 현실에 풀어놓는 이런 식의 일본영화는 언제나 환영인데, 이 영화 <우동>은 우동 붐의 축제적 특이점을 지나자마자 진지한 드라마로 표정을 싹 바꾸고 마치 두 편의 영화인 것처럼 2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별종이다. 러닝타임 90분짜리 흥겨운 영화로 끝날 뻔하다가 134분짜리 늘어지는 영화로 끝을 맺는다. 고스케가 아버지와 진정으로 화해하는 성장 드라마에 장인적인 집요함으로 아버지의 우동을 복원하는 과정이 더해지고, 물론 결말은 행복하다. 로맨스도 빼놓지 않는다. 이야기 면으로 특별할 게 없달까. 오히려 어설픈 면이 많아 영화적 가치로는 물음표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동이, 기가 막힌다. 감독에게는 폭력적인 감상이 되겠으나 이 영화의 영화적 가치는 단연 ‘우동 포르노’에 있다. 시시때때 숨 막히는 클로즈업으로 화면을 채우는 우동 면발을 보는 동안 밀가루의 마력에 점점 빠져든다. 영화 속 우동 취재팀인 ‘면통단(麵通團)’은 시골 한가운데 우동집, 간판 없는 우동집까지 탐사해내며 사누키 ‘우동여지도’를 그린다. 우동 포르노의 스토리텔링이다.
잘 만든 우동은 대번에 알 수 있다. 반듯하게 살아있는 칼자국, 켜켜이 반죽 층이 쌓여 있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이고, 10~15분 삶아 찬 물에 헹궈낸 면이 탄력을 간직한 채 부풀어 올라 있는 상태. <우동> 속 우동이 그렇다. 정말 맛있게 생겼다. 입안에 넣으면 틀림없이 딱 기분 좋은 정도의 탄력으로 씹히며 강건하게 목울대를 훑으며 식도로 내려갈 것이다. 짭짤하면서도 달달하고, 감칠맛이 퍼질 것이다.
밀가루가 사실 굉장히 재미있는 식재료다. 동시에 다루기 어렵기도 하다. 물을 섞어 치대고 숙성시켜 누르고 자르는 것만으로 면이 되긴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엔 화학?물리적 변성이 있고 숙성의 작용이 있다. 우동을 잘 만드는 것은 단순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어렵다. 쌀보다 밀 농사가 잘 되는 사누키에서 우동의 기술은 미식적 여가활동보다 생존을 위한 섭식의 의무에 가깝다.
중국에서는 밀가루 속 글루텐을 ‘면근(麵筋)’, 즉 면의 근육이라 한다. 용수철 모양의 단백질인데, 그냥 두면 멋대로 뻗쳐 있다. 이것을 수분과 압력을 통해 결합하고 일정하게 정돈하는 것이 반죽이다. 영화에서는 우동 면을 반죽하는 과정을 신성하게 보여준다. 밀가루 근육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근육이다. 오직 반죽을 위해 발달했고, 평생 그렇게 다져진 장인의 근육. 그 자체가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데, 고스케의 성장 역시 그 아버지의 반죽 근육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동>에 등장한 우동을 찾아가는 것만으로 온전히 여행이 된다. 우동은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지역 밀착적으로 꽤 잘 개발된 관광 상품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우동 택시’도 실제로 존재하고, 영화엔 나오지 않지만 우동집을 순례하는 ‘우동 버스’도 항시 운행되고 있다. 슬슬 다카마쓰행 항공권을 다시 검색해봐야겠다. 그 탄탄한 근육의 마력이 사누키로 나를 부른다.
by.이혜림(푸드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