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필름을 구하는 방법
영상을 저장, 활용할 수 있는 간편한 디지털 매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이지만,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영상의 영구 보존은 문제가 조금 다르다. 누구나 디지털 파일을 단 한 번의 실수로,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잃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디지털 자료는 바로 이 보존의 불안전성을 내포하고 있고, 이 때문에 필름 매체를 통한 영화 보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에 영상자료원에서는 필름 보수, 항온?항습, 인화?현상 시설을 갖추고 필름 자료의 영구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코너에서는 보다 안정적인 필름 보존 및 활용을 위한 필름 보수 작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리지널 네거티브의 중요성
필름을 활용한 영화 제작 시 촬영, 편집을 마친 후 첫 번째로 생성되는 필름이 오리지널 네거티브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는 음화(네거티브) 필름으로, 이것을 양화 필름으로 제작해야만(인화·현상) 실제 상영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인화, 현상은 오리지널 네거티브에 물질적 손상을 가져오고, 이 과정이 반복돼 오리지널 네거티브를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해당 작품은 영화사에서 영영 사라지게 된다. 복사된 상영용 필름이 온전히 남아있다면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겠지만 색보정, 음향 복원 등 심화 복원 단계를 고려했을 때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 한결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배출할 수 있다.
오리지널 네거티브의 중요성이 상당한 만큼 이것의 온전한 보존을 위해 별도의 양화 필름(마스터 프린트)과 듀프 네거티브(음화)를, 그리고 상영용 필름(양화)을 제작한다. 유일 원본인 오리지널 네거티브의 직접 활용과, 그로 인한 필름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영상자료원은 현재까지 수집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대상으로 마스터 프린트 제작을 실시하고 있다. 보유한 필름의 양이 상당한 관계로, 초산화 현상 등 물리적 변형이 일어나고 있는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는 유일본 상영용 필름 등을 대상으로 우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급한 보존 작업이 필요한 필름 목록이 추려지면 이를 보존고에서 반출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보존고는 영상 5℃, 습도 30%의 일정한 온?습도를 유지하는 공간으로, 자료 반출 시 15℃의 적온실에서 24시간 동안의 적온 기간을 가진 후 반출되며 이후 필름 검색실로 옮겨져 필름 롤 수, 길이, 재질, 그리고 필름 손상 정도를 파악하는 작업을 거친다.
필름의 전반적인 상태를 확인하면서 보수가 필요한 부분이 발견되면 해당 부분의 가장자리에 은박 테이프를 붙여 표시해둔다. 오래된 필름일수록 퍼포레이션(필름이 카메라, 영사 기계 등과 맞물릴 수 있도록 구성된 필름 가장자리의 구멍) 부위의 손상, 부분적으로 필름이 찢어진 경우, 그리고 필름 간 이음매 부분이 헐겁게 접착된 경우 등이 다수 발견된다. 우선 퍼포레이션이 손상된 경우 손상 범위가 좁다면 은박 보강 테이프를, 더 넓은 영역에 대해서는 필름 퍼포레이션과 동일한 모양, 간격으로 구멍이 뚫린 퍼포레이션 테이프를 활용한다. 혹 필름이 수축되어 퍼포레이션 간 간격이 좁아졌다면 동일 정도로 수축된 타 필름을 잘라 이식하는 브리지 방법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로 다른 두 필름이 각기 다른 정도로 수축됐을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가급적 이 방식은 기피하고 있다. 필름이 찢어지거나 갈라졌다면 액상 형식의 접착제인 시멘트 스플라이서나 셀로판 테이프와 비슷한 형태인 스플라이싱 테이프를 이용해 접합 보수를 실시한다. 편집점의 접합 부분이 헐거워 쉽게 떼어지는 경우에도 위와 동일한 접착제를 활용하되 기본적으로 원래의 접착 방식을 따르며, 상황에 따라 두 방식을 병행하기도 한다.
이렇게 필름 보수 작업을 마치고 나면 PTR(Particle Transfer Roller) 기기를 활용한 필름 세척(먼지 등 가벼운 이물질 제거)을 거친 후 색보정, 일부 분량 인화?현상을 통한 점검, 전체 분량 인화의 순으로 후속 작업이 진행된다. 만약 점검을 통해 이상 부위가 발견된다면 추가 보수를 실시하기도 한다.
900여 벌의 필름 보수 작업 진행
1990년대에 생성된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의 경우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편이라 편당 3~4일가량이면 보수 작업이 마무리되지만, 1950~60년대 작품들, 특히 흑백에서 컬러 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은 당시의 컬러 필름 현상법이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탓에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때에 따라 최장 한 달까지 작업 기간을 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영상자료원은 지난 18년 동안 900여 벌의 필름 보수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중에는 디지털화 및 심화 복원을 거친 후 자체 상영 프로그램, 국내외 영화제 등을 통해 일반에 선보이거나 DVD, 블루레이로 출시되어 보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로 재탄생된 작품들도 있다. 영상자료원 보존고 내에는 이처럼 관객과 다시 마주하기 위해 2,300여 벌의 작품이 세심한 보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연간 보수 작업량만으로 단순 계산했을 때 60여 년의 시간이 흘러야만 소화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실로 아득한 숫자이지만, 그 방대한 자료 속에서 또 다른 걸작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한 걸음씩 천천히 발을 떼고 있다.
by.김영미(한국영상자료원 영상복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