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극장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크게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40년도 지난 그 시절, 극장과 얽힌 스펙터클(!)한 에피소드가 몇 가지 생각났기 때문이다.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녹음된 것처럼 튀어나오는 단어들. ‘해군기지, 군항제, 방사선 도로, 대통령 별장’. 그렇다. 내 고향은 경남 진해다. 일본인 혹은 해군의 덕을 본 것일까. 그 작은 지방 도시에 극장이 무려 3개였다. 이번 기회에 검색을 해보니 진해 극장 중 양대 산맥으로 불린 ‘해양극장’은 1,000석이 넘었고(일본인 건물주가 전통 공연장으로 만든 것이라는데), ‘중앙극장’은 500석이 넘었다고 한다. 내 기억엔 그저 시골 동네의 작은 극장일 뿐이었는데.
어린 시절 극장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영화가 아니다. 6~7세 때쯤으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사막과 낙타가 나온 걸로 봐서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쯤 되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던 것 같다. 나보다 몇 살 많던 동네 오빠의 인솔하에 여동생과 내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신나게 영화를 보던 중 옆에 있던 동생이 갑자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당시 네 살 정도 되던 동생은 어디든 나를 따라다니고 싶어 하는 아주 귀찮은 존재였고 당연히 영화에 집중하지 못할 터라서 나는 내 몫의 알사탕까지 쥐여주며 조용히 앉아 있으라고 다그쳤다. 그런데 어린아이 욕심에 사탕 여러 알을 한입에 집어넣다 한 개가 목에 걸린 모양이었다. 동네 오빠의 손을 잡아끌었으나 영화에 빠져 내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던 그 나쁜 새끼, 아니 오빠. 다행히 우리를 본 여성 관객이 동생을 복도로 급히 안고 나가 명치 부위를 끌어안고 들었다 놓기를 수십 번. 결국 사탕은 튀어나왔고 동생과 나는 그제야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1970년대 당시 하임리히 응급처치법을 알고 계셨던 그분, 지금도 건강히 살아계시면 좋겠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극장 근처만 가도 잡아가겠다는 선도부의 엄포를 들어야 했다. 이유인즉슨 해군의 도시 진해에서는 사창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그들 대부분이 극장 근처에서 영업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날따라 야간 자율학습이 싫어진 나는 친구와 함께 학교 담을 넘었다. 옆의 중학교 건물과 맞닿아 있던 담벼락 중 가장 낮은 곳을 공략해 손쉽게 탈출했다. 그렇게 짜릿한 해방감을 맛보며 극장으로 달려가 본 영화는 강시(홍콩 귀신) 잡는 퇴마사가 나오는 <
강시선생2-영환도사 靈幻道士>(1987)였다. 공부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뭐든 괜찮았다. 당시 일탈에 함께한 친구는 현재 영화 PD가 되었고 지금도 우리는 가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바라본, 별이 가득한 밤하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장면이 얼마나 웃겼는지, 내내 웃음을 멈출 수 없던 그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