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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피라이터가 본 <사랑은 비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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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진 켈리/스탠리 도넌, 1952)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나의 직업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일이므로, 아이디어로 가득한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1952년작이지만 배경은 1927년 언저리다. 이것은 영화에 대한 영화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컬러영화지만 영화 속 영화는 흑백이며, 무성영화다. 정확히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갈 무렵을 다루고 있다. 그냥 사랑 이야기로만 봐도, 멋진 춤과 노래가 가득한 뮤지컬영화로만 즐겨도 재미있지만 이 영화를 더욱 더 즐길 수 있게 하는 키워드는 ‘기술’이다.

    사진이라는 마법과 같은 기술이 개발된 후, 그것으로 연속된 움직임을 담아내는 동영상 기술이 개발되자 사람들은 그것을 이리저리 이어 붙이면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의 탄생이다. 촬영과 편집 기술이 점점 나아지며 영화는 최고의 대중 엔터테인먼트로 자리 잡는다. 붉은 양탄자가 깔리고 기다란 커튼이 드리운 거대한 극장에 옷을 차려입고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라. 화면에는 근사한 배우들이 나오고, 그들이 하는 대사는 장식적인 서체로 쓰여 배치된다. 그동안 화면 바로 밑에선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의 손놀림에 맞춰 라이브 음악을 연주한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영화는 우아하고 예술적인 감상거리였을 테고, 그런 형식은 금세 관습으로 자리 잡는다. 그런데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영상과 음성을 싱크하는 ‘토키’라는 신기술이 등장한다. <사랑은 비를 타고> 속에는 마치 스티브 잡스나 레이쥔이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을 발표하듯, 신기술 ‘토키’의 등장을 프레젠테이션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는 지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입술과 목소리는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이 새로운 영상을 보고 사람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천박하군요.”
    “이걸로 뭘 하겠나.”

    그러자 영화 속 주인공 중 하나인 코스모 브라운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게 바로 말 없는 마차(Horseless Carriage)를 두고 사람들이 하던 말이죠.” 말 없는 마차는 자동차를 의미한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존 관습과 부딪치게 마련이다. 부자들이 대화가에게 초상화를 의뢰하곤 하던 ‘우아한’ 시절에 탄생한 사진술 또한 틀림없이 처음엔 ‘천박하다’ ‘이걸로 뭘 하겠나’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하루에도 수백 장씩 사진을 찍어대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거기에 숨은 가능성이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비교적 최근 등장한 3D 영상 기술도 처음에는 ‘애들이나 보는 것’ 정도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3D로 보는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이안, 2012)의 경이로움은 결코 2D로 치환될 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처음엔 관습과 부딪치지만 그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들에 의해 점차 발전하고, 새로운 세상을 가져온다. 그래서 우리는 말똥 없는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게 된 것이다. 티켓을 끊고 어두컴컴한 극장에 들어가 거대한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여럿이 같이 보는 관습은 새로운 물결 앞에 일단 문을 걸어 잠그려 한다.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로 배급되는 영화는 영화가 아닐까? 봉준호 감독의 <옥자>(2017)가 칸영화제에서 일으킨 논란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다시 <사랑은 비를 타고>로 돌아가자면, 예측 가능하듯이 영화 속 영화는 시행착오 끝에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흥행에 성공하고 주인공인 두 남녀는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전혀 예측 가능하지 않다.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신 중 하나인 진 켈리가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춤추는 장면을 찬찬히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면, 우산을 이용해 춤출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다 동원한다는 게 정말 창의적이고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우산을 접고, 펴고, 돌리고, 짚고, 기타처럼 치고, 울타리를 긁고, 앞으로 편 채 춤 상대 삼아 빙글빙글 돌고… 영화의 다른 장면에도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특히 ‘브로드웨이 멜로디’ 신 중 진 켈리와 시드 채리스가 상상 속에서 춤추는 장면은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의 놀라운 공간감 속에 강풍기로 만든 바람과 흩날리는 옷자락만으로 잊을 수 없는 안무를 선보인다. CG나 애니메이션이 없던 시절 만든 이 놀랍도록 테크니컬하고, 무척이나 아름다우며, 신선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영화를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by.김하나(작가,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