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내 은좌극장: 영화를 보는 대신 상상하는 버릇이 시작된 곳
손민정 일러스트레이터
30년 전 가좌역 건너편, 모래내 시장 입구에 있던 은좌극장의 영화 간판이 바뀔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갑으로 향하는 내 손길은 조급해졌다. 처음부터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철 지난 외투 주머니를 뒤져 동전 몇 개를 찾아내거나 심부름을 하면서 잔돈을 챙기거나 간혹 찾아오는 친지들을 향해 뜻 모를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받은(그것도 로또 당첨 확률과 비슷한) 용돈으로, 때로는 학용품 산다고 거짓말을 해서 받은 몇 푼의 돈으로는 은좌극장의 간판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결국 부모님의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바꾼 표를 들고 어두운 극장에 앉아 있으면 영화 속 이야기보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감당해야 할 내 몫의 벌이 스토리처럼 펼쳐졌다. 어두운 극장에 앉아, 나는 영화는 보지 못하고, 죄책감과 싸웠다. 부모님의 지갑에서 돈을 훔쳐 영화를 볼 수 없다면 나는 대체 어디서 돈을 구한단 말인가.
고민은 뜻밖의 상상으로 이어지곤 했다. 나는 절도범이 됐고 강도가 됐으며 희대의 사기꾼이 됐다. 나는 경찰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붙잡혀 수갑을 차고 취조를 받았고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실밥이 묻은 옷을 입은 채 재봉틀 기름이 묻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오열하셨고,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이 소주병을 손에 들고 산동네 지저분한 좁은 골목을 비틀거렸다. 죗값을 달게 받고 출소한 나는 신앙으로 거듭나 목사가 되거나 신부가 되거나 스님이 됐다. 하지만 다시 극장에 가고 싶은 나는 헌금이나 시주금을 훔친다. (솔직히 그 무렵 헌금통에 헌금을 넣는 척하고 훔친 적도 몇 번 있다.) 그렇게 상상 속의 그 장면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극장의 불이 켜졌다.
나는 그 시절 극장에서 본 영화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조숙했다. 가난한 동네에 딱 어울릴 정도로 가난하게 사는 부모님에게 ‘영화 보러 극장에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지 알 만큼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조숙함이 내게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대범하지도 못했던 나는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어느 누구한테 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씻었다.
그래도 나는 극장에 갔다. 은좌극장을 시작으로 신촌 로터리에 있던 신영극장과 2호선 이대역 앞에 있던 이화극장을 지나 종로 2가 코아아트홀, 종로 3가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그리고 얼마쯤 걸어서 을지로 3가의 명보극장과 스카라 극장을 지나 충무로 대한극장으로. 영화관 로비를 서성이며 영화 전단지를 모았고 짧은 영화 소개 글과 줄거리를 읽으며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관람객 포즈를 취하다가 영화가 시작될 무렵이면 도망치듯 극장을 나섰다. 대수롭지 않게 표를 보여주고 어두운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나에게 전혀 대수롭지 않은 모습이 아니었다. 나도 저들처럼 대수롭지 않은 표정과 포즈를 취할 수 있을까. 지금도 극장에 들어갈 때면 조금 초조하고 긴장된다. 입국 심사장 앞에 서 있는 여행객의 기분이랄까. 입국 거절처럼 입장 거절을 두려워하는 마음.
오래 모은 영화 전단지는 몇 해가 지난 어느 여름, 비가 유난히도 많이 내리던 어느 날, 가족이 살던 반지하방을 무릎까지 가득 채운 물 위로 둥둥 떠올라 온 집안을 영화 천국으로 만들었다. 물에 젖은 영화 전단지를 주워 비닐봉지에 담으며 현실이 더 영화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도 감독 같은, 뭐 그런 게 되고 싶다는, 작고도 이상한 씨앗 같은, 뭐 그런 것이 싹튼 건 아닐까.
by.김종현(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