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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화 팟캐스트 ‘배드 테이스트’: 영화 팟캐스트가 살아남는 법
대한민국에는 1만 2천 개가 넘는 팟캐스트가 존재한다. 상위권 팟캐스트는 에피소드당 청취 수가 300만 건을 넘는다. 대안 미디어라는 수식어가 미안할 정도다. 정치?시사 분야 팟캐스트가 여전히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지만 후발주자라 할 수 있는 코미디 팟캐스트와 도서 팟캐스트에는 이미 기존 매체들을 섭렵한 전문가들이 포진해 나름의 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영화 관련 팟캐스트도 300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여전히 업로드가 진행 중인 팟캐스트는 80여 개에 못 미친다.
B급 영화에 열광하는 소수 마니아를 위해
팟캐스트 ‘배드 테이스트’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15년 8월이다. 여전히 정치?시사 팟캐스트가 주를 이뤘고, 몇몇 영화 팟캐스트가 분전하면서 간간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현실 정치와 무관한, 혹은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시사 팟캐스트를 하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이 바닥에도 소비의 룰이 엄격하다. 소비자의 니즈가 무엇보다 절대적이다. 결국 해답은 영화였다. 현실 정치를 이야기하고 논평할 재능은 없지만 영화라면 달랐다. PC통신 영화 세대를 거치면서 수천 편의 영화를 보았고, 인생의 첫 직업 역시 영화 프로듀서였다. PC통신 시절의 영화 동아리 멤버들을 수소문했고, 방송에 참여할 멤버들이 모였다. 극장 개봉 신작 위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기존 영화 저널이나 포털이 충분히 하고 있으니까. 그들과 경쟁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B급 장르영화였다. 대한민국의 영화 저널 시장은 이미 몰락했고, 그 누구도 철 지난 B급 영화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참고할 자료도 없다. 이제부터 우리가 말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앞으로 B급 영화에 열광하는 소수 마니아의 참고서가 될 것이다. 거창하지만 목표는 명확했다.
그렇게 시작한 배드 테이스트는 8월이면 방송 만 3년차가 된다. 지금까지 400개 넘는 에피소드가 업로드됐고, 영화 카테고리에서 5위권, 전체 카테고리에서 5~80위권의 순위를 유지한다. 매주 3~4편의 에피소드가 업로드되는데, 개봉작 소개와 할리우드 최신 장르영화 뉴스까지, 코너도 다양해졌고 한국 독립영화인들도 심심치 않게 출연한다. 배드 테이스트는 기존 저널리즘이 주목하는 지점과 다르다.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의 의미를 찾기보다 <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안소니 루소, 조 루소, 2018)가 어떻게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과 연결되는지를 말한다. <
텍사스 전기톱 학살 The Texas Chain Saw Massacre
>(토브 후퍼, 1974)의 레더페이스가 해고 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1980년대 슬래셔 영화들이 범람한 이유를 레이건 정부 당시 미국 정치사회적 맥락과 연결하기도 한다. 그렇게 3년간 샘 페킨파,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마, 다리오 아르젠토, 존 카펜터, 토브 후퍼, 루치오 부르치 등 A급과 B급을 오가는 수많은 장르 영화감독의 작품 세계를 소개했다.
수십 만의 청취자 확보, 문제는 지속성
대학교 영화과 입시 면접에서 배드 테이스트에서 청취한 내용을 이야기해 심사위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고등학생의 후기도 있었다. 시시껄렁한 B급 장르영화에서 다양성 영화,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에 이르기까지 배드 테이스트가 생산한 영화 담론을 듣기 위해 적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 명에 이르는 시네필이 매일 배드 테이스트의 채널을 찾는다. 이 정도면 공중파 방송이 부럽지 않다. 이제 영화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신이시여, 시네필에게 더 많은 마이크와 녹음 장비를 내리소서. 게다가 이 모든 청취가 대부분 무료랍니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300개가 넘는 영화 팟캐스트 가운데 상당수가 방송을 중단한 것은 상위권 정치?시사 팟캐스트에 편향된 수익 구조 때문이다. 기존 저널리즘의 주역이던 몇몇 전문가도 영화 팟캐스트 시장을 노크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광고를 수주하지 못한 수많은 영화 팟캐스트가 방송을 중단하거나 유튜브로의 전환을 시도한다. 하지만 팟캐스트와 유튜브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유튜브는 예능의 영역에 더 가깝다. 그러한 영화 유튜브가 더 많은 구독자와 광고 수익을 얻는다. 기존 영화 저널리즘이 몰락한 상황에서 영화 업계 역시 영화 팟캐스트 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이전에 가장 각광받던 1인 미디어이던 블로그가 기업들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왕좌를 내줬듯 업계가 팟캐스트를 활용할 방법이 아닌 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영화가 여전히 산업과 예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현재 상황에서 어쩌면 영화 담론은 이제 고스란히 술자리 농담의 영역에 편입될지도 모른다.
by.
이성원(팟캐스트 '배트 테이스트'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