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영화를 소재로 한 영상을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50만 구독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드림텔러’를 필두로 벌써 20여 개의 영화 전문 채널이 10만 구독자를 넘어섰다. 현재 영화를 소재로 영상을 만드는 국내 유튜브 채널은 138개로 이들의 전체 구독자 규모는 580만 명, 누적 조회 수는 16억 5000만 뷰에 달한다(2018년 4월 17일 기준). 놀라운 사실은 이런 영화 유튜브 채널이 생겨나고 지금의 규모로 성장한 것이 단 3년 만의 일이라는 것. 활자 매체를 떠나 영상 플랫폼으로 옮겨간 영화 담론, 유튜브 영화 채널을 짚어본다.
슈퍼히어로 장르라는 도화선
한국에서 영화 유튜브 채널이 등장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마블을 중심으로 한 슈퍼히어로 장르의 성장이다. ‘공유된 세계관(Shared Universe)’이라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특성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지난 작품들, 나아가 이들이 바탕을 두고 있는 코믹스 원작에 대한 정보를 영화 감상의 필수 요소로 바꾸어놓았다. 슈퍼히어로 장르가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영미권 관객과는 달리 한국 영화팬들은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창구가 극히 한정적이었다. 설령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코믹스의 세계관을 정리한다 하더라도 그 분량이 상상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이를 일목요연하게, 동시에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런 니즈에 가장 확실히 부합한 것이 바로 유튜브라는 영상 플랫폼이다.
국내 영화 유튜브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발없는새’ ‘빨강도깨비’ ‘드림텔러’ 등의 채널이 2015년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Avengers: Age of Ultron>(조스 웨던, 2015) 이후 두각을 나타냈고, ‘삐맨’ ‘고몽’ ‘리뷰엉이’ 같은 후발주자들이 그 다음 해인 2016년 <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 Captain America: Civil War>(안소니 루소, 조 루소, 2016)를 계기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후 100여 개로 늘어난 영화 전문 채널은 슈퍼히어로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점차 다양성을 더해가고 있다.
유튜브에서 영화 전문 채널이 급성장한 이유는 10대를 위시로 하는 젊은 세대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음악도, 방송도, 유튜브 영상으로 먼저 검색해보는 요즘 세대에게 영상 콘텐츠는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화된 정보의 원천이다. 이런 ‘영상 친화적’ 경향을 더욱 부추기는 건 ‘쉽고 편한’ 정보의 전달 방식이다. 유튜브에서 영화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대부분은 영화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다. 기존 미디어가 딱딱한 전문가 위주였다면, 젊은 세대에게 유튜브는 ‘영화 좀 아는 동네 형(누나)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가깝고 편하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좀 아는 동네 형들의 놀이터
유튜브 플랫폼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콘텐츠의 파급력과 그 도달 범위다. 10억 명이 넘는 사용자를 보유한 유튜브는 더 많은 사용자가 선택하고 더 많은 시청 시간을 확보한 영상을 우선적으로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으로 ‘관심받는 콘텐츠가 더욱 확산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특히 사용자의 시청 패턴에 따라 즉각적으로 변화하는 추천 방식은 유튜브에서 한 번이라도 영화 정보를 접한 사용자라면 비슷한 채널, 비슷한 영상으로 재유입될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높여준다.
다수의 사용자에게 확산되는 유튜브의 특성은 단순한 정보도 담론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게시하고 서로 토론하고(때로는 싸우며), 자신의 SNS를 통해 이를 공유하면서 단순한 정보조차 담론의 범위로 자발적인 확장을 해나간다. 일례로 모 채널에서 올린 영상에는 시청자들이 ‘최강의 어벤져스’를 직접 뽑을 수 있는 설문조사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데, 7만 5천여 명이 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에 대한 공방 댓글이 4천여 개에 달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영상의 조합도 담론이 생산되는 새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장문의 텍스트를 태그하기엔 부담스럽고(페이스북), 한 장의 사진으로는 부족한(인스타그램) SNS 사용자에게 유튜브 영상은 자신을 대변해주는 가장 편하고 효율적인 레퍼런스가 된다. 유튜브 영상으로 생산된 정보는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각자의 SNS에서 저마다의 의견과 반론이 추가된 새로운 담론으로 재생산된다. 사용자 스스로 확산하고 재생산하는 ‘공유된 놀이터’. 이것이 바로 유튜브가 만들어놓은 영화 담론의 새로운 장이 아닐까.